“늦어서 죄송합니다” 안성녀 독립운동가 묘 8년 만에 정비

박수빈 기자 2024. 6. 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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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안성녀 여사의 묘역이 8년 만에 재단장됐다.

부산 남구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고 안성녀 여사의 묘소 재정비 사업을 마무리했다고 3일 밝혔다.

오은택 남구청장은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해, 지자체 예산으로 묘역 정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번 정비를 통해 앞으로 구가 안 여사의 묘역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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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인 안중근 의사 도왔지만 공적자료 부족해 서훈 못 받아

- 부산 남구, 정비 필요성에 보수
- 동국씨엠 부산공장 기부로 보태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안성녀 여사의 묘역이 8년 만에 재단장됐다. 공적 자료가 없어 독립운동자 서훈을 받지 못한 ‘비운의 독립운동가’의 묘역이어서 관할 지자체의 예산이 아닌 민간 기업의 지원을 받아 관련 정비를 마쳤다.

부산 남구에 있는 안성녀 여사의 묘역이 최근 재정비됐다. 아래 사진은 정비되기 전 황폐한 묘역 모습. 부산 남구 제공


부산 남구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고 안성녀 여사의 묘소 재정비 사업을 마무리했다고 3일 밝혔다. 고인은 1881년 태어나 1910년부터 광복 때까지 만주 등에서 활동하며 군복을 제작·수선하고, 군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온 뒤 1954년 부산 영도구에서 삶을 마감했다. 고인은 영도구에 안장됐다가 1974년 지금의 남구 천주교 묘역으로 이장됐다. 안 여사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고문을 받았지만 활동 무대가 중국(만주)이었던 탓에 국내에 공적 자료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안 여사의 묘역은 2005년 국제신문의 기획시리즈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용호동 남구국민체육센터 1관 뒤편 소규모 주차장 인근 ‘보성사’ 입구에서 ‘안성녀(루시아) 여사의 묘’라고 적힌 표지판이 안내하는 길로 약 300m 걸어가면 묘역을 찾을 수 있다.

남구는 2016년 안 여사의 묘역을 한 차례 정비했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해 봉분과 석대가 무너지는 등 사실상 황폐한 수준이었다. 이에 구는 ▷석축시공 ▷봉분 둘레석 조성 ▷잔디 식재 ▷일대 토양 평탄화 통한 참배 공간 정비 등을 진행했다. 사업비(562만 원) 전액은 ㈜동국씨엠 부산공장(옛 동국제강 감만동 공장)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고인의 친손자인 권혁우 씨는 “묘소 정비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준 ㈜동국씨엠과 남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오은택 남구청장은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해, 지자체 예산으로 묘역 정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번 정비를 통해 앞으로 구가 안 여사의 묘역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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