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반도체 BTS` 키워야 韓 미래 있다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니어재단 주최로 열린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포럼에 다녀왔다. 행사에 앞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과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정 이사장은 "국력의 비대칭성과 빈틈을 외교로 메꿔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작년 8~11월 3개월간 미국에 다녀왔다. 직접 가서 보니 미국이 칼을 빼들었더라"며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칼을 빼들었는데, 우리는 미국과 중국에 끌려만 간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또 "재벌기업 특혜가 아닌 글로벌 강국의 백년 초석을 다지는 큰 그림에서 첨단산업,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인센티브와 각종 규제완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행정고시 10기로 IMF구제금융 협상 수석대표, 뉴욕 외채협상 수석대표, 제1대 재정경제부 차관, 제2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IMF 외환위기 시절 한국의 국제사회 위기를 직접 경험하고 이겨낸 주역 중 한 명이다. 그의 말에는 미·중 분쟁과 중국-대만간 갈등 속 한국의 위치, 그리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마디 한마디 힘이 담겨 있었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도 같은 날 "최근 태국 방콕을 다녀왔다. 세계경제와 국가별 전략, 특히 동남아 국가와 관련된 전략을 고민하는 자리였다"며 "중국은 중국대로 일대일 전략을 취했고, 미국은 미국대로 반도체 라인 전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전략 지도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첨단산업 전략 지도에서 한국은 마치 리던던트(redundant·불필요한)해 보였다"며 "'한국을 배척하는 것은 아닌데, 한국도 있으면 좋은데, 다만 한국과 꼭 같이해야 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반도체는 여전히 중심에 있다. 최근 AI반도체의 중심으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SK하이닉스의 선점, 삼성전자의 추격으로 여전히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시장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장기적으로 주도할 것인지의 싸움에서는 우리가 어느정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자신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까지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인센티브 지원에 나서며 국가 미래사업으로 키우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정치 이슈로 앞으로 나아가기가 여간 힘든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이 있다. 이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에 15~25%를 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로 올해 말 종료가 예고돼 있다. 이를 6년 연장하는 내용이 올 1월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한 채 지난달 28일 21대 국회의 본회의가 끝나면서 사장됐다.
기업들은 국가 미래 사업을 위한 결단을 내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임원 주6일 근무에 이어 지난달 DS(반도체)부문장 수장을 바꾸는 '원 포인트' 인사로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고, SK그룹은 '선택과 집중'에 나서며 계열사별 리밸런싱 작업에 들어갔다. 한 대기업 임원의 "국제사회에서 개별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인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조금만 더 뒷받침해 좋을 텐데"라는 하소연이 떠오른다.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다. 이번 니어재단 포럼에서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에도 반도체 BTS들이 많다"며 각종 세계 최초 기술의 주역이 한국인임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BTS의 의미를 'Born To Semi conductor'(반도체에서 태어난 사람)로 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가 민생'이라며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 방안을 공개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22대 국회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돼 지난 국회와 얼마나 달라질지는 사실 물음표다. 오늘의 정치 싸움으로 내일의 국가산업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jwj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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