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대만, 1등끼리 동맹…설계·파운드리·패키징 뒤진 한국 '패싱'
엔비디아·TSMC 등 분업 구조로
고객 특화 맞춤형 반도체 설계
美 마이크론도 HBM 납품 성사
韓도 '턴키 서비스' 시작했지만
대형 고객 확보에 어려움 겪어
반도체 생태계 키워 협업 늘려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리사 수 AMD CEO….
2022년 12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연 신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현지에선 “미국 정계, 산업계의 슈퍼파워가 총집결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1년6개월 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열린 보조금 지급 행사 분위기는 좀 달랐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했고, 미국 기업 CEO들은 현장에 오는 대신 ‘축하 메시지’로 갈음했다. 반도체업계에선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엇갈린 대만과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얘기가 나왔다.
‘끼리끼리 동맹’에 한국 소외
한국 일본 대만 등 미국의 ‘칩4 동맹’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고객사별 AI 서비스를 위해 맞춤형 반도체 설계·제작·후공정이 중요해지면서 이 분야에 약한 한국을 ‘패싱’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어서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AI 서비스에 최적화된 반도체 패키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대만 TSMC가 생산한다. 이 칩을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성능 D램과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최첨단 패키징’도 TSMC가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소재와 장비는 대부분 일본 기업이 공급한다.
한국 몫은 SK하이닉스가 납품하는 HBM뿐이다. 그나마도 변수가 생겼다. 존재감 없던 마이크론이 ‘전력 소모 30% 감소’ 등을 내세워 엔비디아 납품을 성사시켜서다.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출시할 예정인 블랙웰 AI 가속기엔 마이크론의 5세대 HBM인 ‘HBM3E’가 SK하이닉스 제품과 함께 장착된다.
‘턴키 서비스’ 강화에도 역부족
미국, 대만, 일본의 3각 동맹은 각 분야 ‘1등 기업’끼리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동맹에 속하지 못하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구조다. 이런 동맹은 갈수록 강화되는 분위기다.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막하는 ‘컴퓨텍스 2024’에 엔비디아, AMD, 퀄컴,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CEO가 총집결하는 것도 그런 예 중 하나다. 3일 컴퓨텍스 기조연설을 한 리사 수 CEO는 “TSMC와의 동맹은 무척 공고하다”며 끈끈한 동반자 의식을 공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설계, 생산, 최첨단 패키징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종합 반도체기업’의 이점을 발휘, AI 반도체 ‘턴키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대형 수주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한 반도체 전문 대학 교수는 “턴키 전략은 각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삼성은 설계, 파운드리, 패키징 분야 1위가 아니기 때문에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 강화 필요
AI 반도체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고객 맞춤형’ 영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주요 반도체 고객사가 특화된 자사 AI 서비스에 최적화한 반도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성능 좋은 범용 제품을 먼저 개발하고 고객사를 줄 세워 공급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1등이란 환상에서 벗어나야 AI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기업 간 협업 사례를 늘려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TSMC가 미디어텍 노바텍 등 대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를 적극 지원해 대형 고객사로 키운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미국, 일본, 중국, 대만과 달리 보조금 등 직접적인 지원에 소극적인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대만 정부는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의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에 투자액(약 1조원)의 28%를 지원할 정도로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한국 정부는 ‘대기업 특혜’를 이유로 세제 혜택을 통한 지원만 고수하고 있다.
황정수/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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