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다’는 말 뒤에는

한겨레 2024. 6. 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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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더 나아가 자퇴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이를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드물다.

"학교 가기 싫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꼭 고려해야 할 것은, 청소년이 말하는 이유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에게 요즘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생활은 정말 괜찮은지 몇 번 부드럽게 돌려 물었더니 사실 대인 관계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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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학교 밖의 빛과 그림자

자녀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더 나아가 자퇴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이를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드물다. “학교 가기 싫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양육자로서 어떻게 답해야 하는 걸까? 위로나 훈육이 필요한 때인 걸까? 아니면 그 이유를 물어야 할까?

과거 한 청소년 기관 종사자로부터 비슷한 상담을 요청받은 적 있었다. 기관에 오는 한 청소년이 “학교에 다니는 게 너무 시간 낭비 같아서 학교 가기가 괴롭다”라며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몇 차례 이유를 물었지만, 대인 관계나 성적에는 문제가 없고 그저 시간이 아까울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단다.

“학교 가기 싫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꼭 고려해야 할 것은, 청소년이 말하는 이유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른에게 상황의 본질을 전달하기 꺼리는 청소년도 많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대인 관계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이를 숨길 수도 있고, 사실은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부모가 걱정할까 봐, 혹은 어른에게 알리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시간 낭비 같아서 학교 가기가 괴롭다”라는 말 속에도 사실은 정말 중요한 핵심이 숨어 있다. 보통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흔히 느끼는 감정은 허무함, 아쉬움, 초조함, 짜증 등이다. 그러나 괴롭다는 건 몸이나 마음이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학교 가는 게 ‘괴롭다’라고 표현했다면, 학교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사정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상담 요청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진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 주 뒤, 또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청소년에게 요즘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생활은 정말 괜찮은지 몇 번 부드럽게 돌려 물었더니 사실 대인 관계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에 따른 결과는 더 놀라웠다. 대인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몇 차례 주고받은 청소년이 먼저 “혼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노력해 보겠다”라며 자퇴 의사를 철회한 것이다.

혼자서 끙끙대며 지고 있던 짐을 나눠 드는 순간 어깨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더 이상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용기가 생긴다. 내가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이 모든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나와 함께해 줄 거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처럼 청소년이 꺼낸 ‘학교 가기 싫다’는 말 뒤에는 수십 가지 이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어떤 수준인지,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다독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진심으로 자퇴하고 싶은 것인지, 자퇴 후에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은 서로의 마음을 가라앉힌 이후에 하더라도 늦지 않다.

송혜교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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