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칼럼] 이러고도 보수인가
특검법 부결시킨 단일대오 자랑 아냐
국가 지키고 법치 존중하는 게 보수
대통령 지키는 여당 부끄러운 줄 알라
국민의힘은 채수근 상병 특검법을 부결시킨 ‘단일대오’가 자랑스러운가. 성일종 사무총장이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나”라고 뻔뻔하게 밑자락을 깔더니 추경호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어긋남 없이 단일대오에 함께해 주셨다"고 표 단속 성공을 높이 평가했다. 단일한 대오로 여당이 추구한 건 해병의 죽음 규명을 방해하고 사단장 구하기 외압을 은폐하는 것이었다. 이게 왜 안보와 국방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이 할 일인지 납득할 수가 없다.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 지키자고 사병의 죽음을 모른 척하는 게 정녕 보수인가.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채 상병 사망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듯 형사 책임을 물으면 국방의 미래가 어둡다고 조선일보에 썼다. 지휘관 자질이 부족해도 문책을 피한 장교만 남을 것이고, 안전지상주의에 빠진 군은 나약한 군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법이 과실 없는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지 전제부터 무지한 왜곡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작전에 성공하는 걸 유능 아닌 무능으로 여기는 편견도 놀랍다. 천 전 수석에게는 규정을 무시하고 근육이 녹을 때까지 얼차려를 시킨 지휘관이 유능한가? 사병이 죽어나가도 훈련·작전을 밀어붙이는 군이 강한 군인가? 국방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건 기본권을 중시하는 것을 나약함으로 간주하는 사고, 법규를 무시한 상명하복을 군기로 착각하는 태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권남용 유죄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한 일을 규명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기는 불가능해졌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보직해임되고 국방부가 경찰에 이첩된 자료를 회수한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폰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외압의 초점이 됐다. 지난해 8월 국가안보실 개입 의혹을 “가짜뉴스”라 일축하고, 올해 3월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에 “출국금지를 몰랐다”던 대통령실은 이제 “이날 통화에서 채 상병 사건은 언급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종섭을 빼돌리고, 특검을 거부한 건 대통령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공수처 처장을 공석으로 방치하다가 후보 추천 82일 만인 5월 21일에야 임명한 것도 비정상적이다. 국민 눈에는 증거와 자백이 넘친다.
이런데도 여당 의원 워크숍에서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자는 대통령이나, “108이 굉장히 큰 숫자”라는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총선 패배 분석이나 국정 변화 논의가 없는 걸 보면 심판받은 일 자체를 잊자는 말인가 보다. “(당과) 한몸으로 뼈가 빠지게 뛰겠다"는 대통령에게 의원들은 “똘똘 뭉치자”로 화답했으니 22대 국회에서도 특검법 거부와 재의결 표 단속은 반복될 모양이다.
냉랭한 민심을 느끼기 바란다. 5월 31일 한국갤럽의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21%로 취임 후 최저로 떨어졌다. 30·40대 10~8%, 서울 17%에 불과하다. 총선 후에도 변한 게 없으니 그렇다. 대통령이 자기 혐의와 관련된 특검을 거부하며 공정과 법치를 내팽개치니 그런 것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끝장토론이라도 벌여 쇄신책을 강구해야 할 판에 “원칙적 국가운영 기조 때문”(성일종)이라 진단하고 조작 가능성(홍준표 대구시장)을 제기하니 한심하다.
보수라 할 수 없는 보수가 너무 많다. 자유시장을 옹호한다면서 대기업 독점 규제를 반대하고, 선거 불신을 야기할 부정선거론을 확산하고, 국가 안보를 중시한다며 전우조차 지키지 않는 이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진짜 보수라면 “당신들 아들이 죽었다 해도 이렇게 하겠느냐”던 해병대 예비역의 분노에 응답해야 한다. 공정과 법치를 훼손하는 대통령을 견제해야 옳다. 국가를 지키지 않고 대통령을 지키는 국민의힘은 부끄러운 줄 알라. 사병의 억울한 죽음을 덮고서 보수를 참칭하지 마라.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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