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극장이 없다?…지하철에 남은 단 한 곳(영상)

이은재 인턴 기자 2024. 6. 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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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은재 인턴 정지원 영상인턴 기자 = 도심 지하철 역사 한 곳에 아늑하고 재밌는 아지트가 있다.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1번 개찰구 안에 마련된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이하 오재미동)이다.


오재미동은 다섯 가지의 재미를 주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아카이브, 갤러리, 극장, 교육실, 장비대여실로 구성돼 있다. 이는 오직 영화의 중심지 충무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재미'다.

‘영화=충무로’는 옛말?

충무로를 대표하는 극장이었던 ‘대한극장’이 오는 9월 개관 66년 만에 문을 닫는다. *재판매 및 DB 금지
충무로는 한국의 영화 산업이 탄생하고 성장해 온 역사적인 장소다. 이런 충무로를 대표하는 극장이었던 ‘대한극장’이 오는 9월 개관 66년 만에 문을 닫는다. 계속되는 적자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형 멀티플렉스를 제외하면 오재미동이 충무로에 남은 단 하나의 극장이 됐다.

이날 충무로역에서 만난 시민 A(20대·남)씨는 “옛날엔 충무로에 유명한 극장이나 제작사가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요즘엔 찾기 어렵다 보니 영화의 거리라는 이미지가 많이 옅어진 것 같다”며 “상징적인 공간들이 대기업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전공생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 변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제작업에 종사한다고 밝힌 시민 B(20대·남)씨는 “대한극장이 폐업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충무로는 여전히 한국 영화의 중심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공간의 가치를 알고 정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며 과거나 추억에 지나지 않고 발자취를 이어 나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하철 역사를 영화로 가득 채워

오재미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인 ‘아카이브’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DVD가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연세가 90세이신데 14년째 이용 중이세요”

오재미동 직원 정철현 주임은 ‘아카이브’(도서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한 이용객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오재미동 일평균 이용객 200명 중 절반가량이 이곳을 꾸준히 방문하는 단골 고객이다. 관계자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방문해 영화를 관람해 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재미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인 ‘아카이브’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DVD가 있다. 이 중 보고 싶은 작품을 골라 직원에게 건네면 아카이브 내부에 위치한 비디오방에서 이를 감상할 수 있다. 5대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고, 헤드폰을 통해 영상을 시청해 항상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또 아카이브에는 약 2,600권의 도서가 비치돼 있어 편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오재미동에는 작은 ‘극장’도 있다. 총 28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평소 쉽게 만나지 못하는 소규모 독립영화 위주로 상영을 진행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오재미동에는 작은 ‘극장’도 있다. 총 28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평소 쉽게 만나지 못하는 소규모 독립영화 위주로 상영을 진행한다. 지하철 역사 내부에 있는 유일한 극장으로 멀티플렉스 같은 웅장한 느낌은 없지만 아늑한 매력이 있다. 극장을 이용한 방문객들은 “덜컹거리는 지하철 진동이 느껴지는 게 오히려 영화 몰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영상문화 전반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는 ‘교육실’, 영화인들을 위한 ‘편집실’과 ‘장비대여실’도 마련돼 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단편 영화 제작 수업을 수강한 이민화 감독은 영화 ‘백차와 우롱차’를 제작해 서울독립영화제2023에서 올해의 화제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충무로 희망의 불씨 ‘오재미동’

정 주임은 오재미동이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편영화, 갤러리 감상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마련돼 있고, 지하철 이용 중에 누구든지 이를 무료로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주임은 “최근 유튜브나 OTT에 재밌는 콘텐츠가 많아서 도파민이 가득한 사회가 된 것 같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오재미동에 방문해 단편영화나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슴슴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재미동을 기점으로 충무로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며 “오재미동이 충무로 하면 떠오르는 '영화'라는 단어의 명맥을 이어가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충무로역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 놀이터. 오재미동이 충무로에 활력을 불어넣을 불씨가 될 수 있을까. ‘영화의 길’, ‘충무로의 샛별’ 같은 표현들이 그저 옛날의 향수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ejlee@newsis.com, alphagirl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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