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배회하는 '프리고진 망령'…국방부 물갈이 어디까지 하나?
새로 꾸려진 국방부는 경제·회계 관료에 중점
게라시모프, '프리고진 지목' 청산 대상 중 생존
[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러시아 국방부에 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1년 전 군 지도부 쇄신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킨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가 경질을 요구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지난달 자리에서 물러났다. 군 지도부의 잇따른 변동도 프리고진이 바라던 것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물갈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이목이 쏠린다.
러시아 국방부 인사 줄줄이 경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전쟁 총지휘자 격인 쇼이구를 국방장관에서 국가안보회의 서기로 보냈다. 13년 차 국방장관이던 쇼이구의 인사는 명목상 승진이지만 사실상 경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국방부 주요 인사는 줄줄이 숙청됐다. 티무르 이바노프 국방차관, 유리 사도벤코 국방차관을 비롯해 바딤 샤마린 참모차장 겸 통신총국장, 유리 쿠즈네초프 인사국장 등이 공식적으로 제거됐다. 이들은 대부분 뇌물 수수 등 반(反)부패 혐의로 사법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최고위급 지휘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푸틴 대통령이 쇼이구 측근을 국방부에서 뽑아내려고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성과 부진, 지난해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반란, 만연한 부패가 대대적 개편에 영향을 미쳤다는 세평이 나왔다.
CNN은 2일 "오랜 국방장관을 해임하는 것은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 아래 러시아에서 고위 참모 5명을 체포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서 "문제는 현재 전쟁에서 승리할 책임을 맡은 부처를 왜 흔드는가"라고 해설했다.
미하일라 코미나 유럽외교협회(ECFR) 방문연구원은 "러시아 엘리트 중 쇼이구 그룹은 가장 큰 지대추구 그룹 중 하나"라면서 "가령 푸틴 대통령의 일부 측근보다도 수익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바통 넘겨받은 새 국방부는 경제통 중심
쇼이구 서기 자리에 들어선 것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이다. 그는 학계와 기술관료로 두루 활동한 '경제통'이다. 경제 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총리 외부 고문, 경제개발·무역부 차관, 총리실 재정·경제국장, 경제개발장관 등 경제관료로서 요직을 줄지어 맡아왔다.
국방차관 자리도 올레크 사벨리예프 전 경제개발차관이 차지했다. 경제개발부처를 비롯해 정부 최고위급 회계 공무도 맡은 경험이 있는 경제통을 신임 국방차관으로 낙점한 셈이다.
신임 국방부 최고위 인사가 모두 군 경력이 없는 민간인 출신이다. 푸틴 대통령이 경제전문가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데에는 '지속 가능한 전쟁'이 화두라는 평가가 주류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전쟁 수행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한 경제적 보급에 초점을 둔 인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국방비에 올해 예산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6%를 국방비에 지출하고 있다. 이는 현대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로 러시아가 전시경제로 완전히 전환됐음을 시사하는 단서다.
타티야나 스타노바야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수석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이바노프 차관, 샤마린 참모차장 등 교체를 단행하는 것은 상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를 국방부에 남겨놓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봤다.
코미나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국방 부문에서 존재하던 부패를 알고 회계 공무를 맡았던 사벨리예프 전 경제개발차관을 국방차관으로 낙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홀로 살아남은 프리고진 發 청산 대상…게라시모프 미래는?
프리고진은 지난해 6월 반란을 일으키면서 쇼이구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향한 욕설을 퍼부었다. 무능한 군 지도부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 거사를 일으킨 명목이었다. 반란은 일일천하로 끝났고 두 달 뒤 그는 1년이 지난 지금 게라시모프를 제외한 당시 거명 대상은 모두 사라졌다.
CNN은 "반란 뒤로 푸틴 대통령은 국방부의 무기 조달상 비효율성과 우크라이나 침공·부패 혐의를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반란 뒤에도 무조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다"라며 "그렇게 하면 러시아 국민이 그의 권위와 강인함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푸틴 대통령이 군 수뇌부 교체를 고려했더라도 정치적 판단 아래 반란 당시에는 이를 묵인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공직자가 부패했다는 프리고진의 말이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러시아 정치에서는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이해관계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푸틴 대통령이 내부 단속보다 전황에 더 큰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곧 해임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너무 많다"면서도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살아나마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 시작할 창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코미나 연구원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운이 좋게도 쇼이구 서기처럼 명성을 완전히 훼손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물러날 자리가 없다"라면서 "새 사람을 찾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전임자의 자리를 찾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예측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ingdo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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