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현실과 동떨어진 헌재 종부세 결정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6. 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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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목적 내세워 합헌 결정
대상자·세율증가 피해 큰데
되레 "稅부담 안 지나쳐"
1주택자 부담완화 판단도
고통만 키운 종부세 폐지를

헌법재판소가 얼마 전 종합부동산세를 합헌으로 판단한 결정문을 주말에 꼼꼼히 읽어봤다. 이번 선고 대상인 2020·2021년 귀속분 종부세가 많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준 점을 감안하면 '문제없다'는 결론에 이른 과정은 좀 아쉽다. 헌재가 종부세 입법 목적의 정당성만을 강조한 채 문재인 정부 때 막대한 종부세 피해 상황을 심각하게 헤아렸는지 단서를 찾기 힘들다.

헌재는 종부세가 '일정 가액 이상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부동산 가격 안정 도모와 실수요자 보호'라는 정책 목적을 위해 정당하다고 봤다. 또 주택 수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 소재 여부에 따라 세율 등을 차등하는 것도 적합하다고 했다.

문제는 대상자의 세(稅) 부담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헌재는 그 근거로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5억원 추가 공제, 고령자·장기보유자 세액 공제 등을 들었다. 더 나아가 이런 특례들로 인해 '1주택자 종부세 부담을 완화시켰다'는 표현도 썼다.

하지만 1주택자 종부세 대상자는 2017년 3만6000명에서 2020년 12만5000명, 2021년 15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종부세율도 0.5~2.7%에서 2020년분부터 0.6~3.0%로 올라 2017년 151억원이던 1주택자 종부세액은 2020~2021년 1223억원에서 2341억원으로 두 배가량 커졌다. 그런데도 1주택자 종부세 부담이 완화됐다는 평가가 과연 온당한가.

헌재는 대상자 확대와 세율 인상에 따른 국민 체감 부담을 잘 살피지 않았다. 다주택자의 경우 거의 탈취 수준으로 종부세가 부과됐지만 1주택자와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헌재는 봤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3주택 이상자에 대해 최고 6%까지 세율을 높여도 과잉 금지 원칙과 조세평등주의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근거는 투기 수요와 주택 분양 과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다. 하지만 '세금 폭탄'을 맞은 다주택자는 왜 3~4%가 아닌 6%나 돼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헌재는 적정한 종부세율 기준에 대한 설명 없이 정책상 필요하니 정부가 재량껏 높여도 문제없다는 식이다.

무엇보다 과도한 종부세가 정부의 정책 폭거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을 헌재는 간과했다. 종부세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세율이 곱해져 산출되는데 이들 모두 상승했다. 정부가 공격적으로 올린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공시가를 시세에 맞춰 높였고, 공정시장가액비율도 계속 올려 2021년엔 95%까지 뛰었다.

또 2020년 7·10 부동산대책은 종부세는 물론, 취득세와 양도세도 인상했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3주택 이상자 종부세율은 2018년(0.6~3.2%), 2019년(0.8~4.0%)에 이어 7·10 대책에서 1.2~6.0%로 치솟았다. 다주택자 양도세는 20~30%가 가산돼 3주택 이상이면 지방세 포함 최고 82.5%나 됐다. 종부세를 피하려 집을 팔려고 해도 높은 양도세 부담에다 주택 수에 따라 중과된 취득세 때문에 거래 절벽이 됐다. 국가가 집 소유주를 상대로 '세금 폭력'을 가한 것이다.

2020년 주택분 종부세 총액은 1조4590억원에서 2021년 4조4085억원으로 3배가 넘었다. 2017년(3878억원)과 비교하면 4년간 11배나 급증했다. '징벌적 과세'란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종부세 취지를 수긍한다고 해도 많은 국민은 종부세 인상과 대상 확대에 큰 부담을 느낀다. 반면 헌재는 과잉 금지·조세 평등·신뢰 보호 원칙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다. 간극 차이가 상당한데 헌재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놓지 않았다.

부동산 세율 인상과 다주택자 엄벌 분위기에서 많은 국민은 똘똘한 한 채를 찾아다녔다. 강남과 수도권만 선호하는 통에 그곳 집값만 급등했다. 문재인 정부 때 종부세는 세입은 늘렸지만 부동산 안정이라는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다. 국민 부담만 키운 법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나마 정치권에서 종부세 폐지를 논의한다고 하니 제대로 한번 해보길 바란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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