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 성공 확률 20% 넘어라…전문가 3인의 진단
성공 가능성은 20~40%, 돌발 변수도 예상
심해 시추 가능해지며 동해 다시 주목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정브리핑을 열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1배럴은 원유 159L)에 달하는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물리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40억 배럴 매장량은 세계 최대 석유개발 프로젝트로 불리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날 발표는 앞으로 시추를 통해 실제 매장량을 확인해야 하지만, 가능성만으로도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다. 포항 앞바다에서 실제로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조선비즈는 전문가 3명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와 한국이 산유국이 될 가능성을 물었다.
◇가능성 20%의 확률을 뚫어라
이날 윤 대통령이 발표한 것은 물리탐사를 통해 석유 매장 가능성을 확인한 결과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심해 기술평가 전문기업인 액트지오(Act-Geo)는 지난해 2월까지 수집한 물리탐사 정보를 바탕으로 포항 일대 심해에서 석유와 가스의 부존 가능성을 확인했다. 기업 관계자뿐 아니라 국내외 전문가로 자문단을 구성해 신뢰성을 검증해 충분한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이날 발표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물리탐사는 해저 자원을 찾는 첫 단계이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 석유나 가스가 묻혀 있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저를 뚫는 시추를 해야 한다. 얼핏 보면 땅에 구멍을 뚫고 밑에 있는 석유와 가스를 확인만 하면 될 것처럼 보이지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화석연료 탐사는 우선 탐사지역의 형성 과정과 퇴적층 분포 등 지질학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퇴적분지 연구로 시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지질학적으로 연관된 구조를 찾는 플레이 연구, 화석연료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큰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유망구조 연구가 이어진다. 유망구조는 화석연료가 만들어지기 좋은 환경을 말한다. 그 뒤 탐사시추로 정확한 매장량을 확인하고 경제성이 충분한 경우 본격적인 상업 시추가 이뤄진다.
최종근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물리탐사로 화석 연료의 존재 가능성을 예상할 수는 있으나 실제 시추를 했을 때 자원이 없는 경우도 있다”며 “유망한 지역에서는 40%, 그보다 떨어지는 곳에서는 20% 정도의 성공률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동해 가스전을 개발할 때도 10전 11기 끝에 시추에 성공한 바 있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2004년 성공한) 동해 가스전은 11번의 시추를 해서 10번 실패하고 11번째에야 상업적인 생산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는 동해 가스전 때보다 깊은 해저에서 시추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난이도가 높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공사는 1공 시추에 드는 비용을 1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시추 성공 확률이 20%라고 보면, 산술적으로 시추에만 5000억원이 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광염 한국해양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탐사시추는 비용이 많이 들어 화석연료 매장 가능성이 높을 때만 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시추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전보다 자료 해석에 대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능성을 크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돌발 변수 예상되나 시추 주저 말아야
물리탐사에서 화석 연료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실제 시추에서는 예상보다 적은 양이 발견되거나 아예 없을 가능성도 있다. 지상에서는 비교적 높은 정확도로 화석연료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지만 바다 아래에서는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안전상의 문제도 있다. 2021년 한국석유공사는 동해 가스전에서 북동쪽으로 44㎞ 떨어진 ‘방어구조’에서 시추를 추진했으나 이상 고압대가 발견되면서 중단했다. 예상치를 넘어선 압력으로 시추 시설이 폭발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방어구조에는 약 7억 배럴의 가스가 묻혀 있던 것으로 추정됐다.
김광염 해양대 교수는 “시추 과정에서 내부에 있던 고압가스가 나오거나 시추공 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며 “땅속 조건을 잘 알면 대비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추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해서 시도를 주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자원 확보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외교, 국방 측면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종세 한국해양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시추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는 것은 맞지만 국내 자원 확보는 필수적”이라며 “적극적인 탐사와 시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근 서울대 교수도 “화석 연료가 국민 생활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크다”며 “시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추 기술 발달로 심해 탐사 가능
이번에 공개된 유망구조는 동해 8/6-1광구 북쪽에 위치해 있다. 윤 대통령이 영일만 인근이라고 발표했으나 사실은 심해에 가깝다. 국내 유일의 가스 시추 시설이었던 동해 가스전이 수심 60m에 있었다면 이 지역은 깊이가 1100~1200m에 달한다. 이전에는 수심 200m까지 평탄한 지형인 대륙붕이 상대적으로 탐사와 시추가 쉬워 활발하게 연구됐으나 최근에는 시추 기술이 발전하면서 심해 개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최종근 교수는 “석유 시추 기술은 과거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지금은 수심 3000m까지 무리 없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화석 연료의 존재 여부”라고 말했다. 김광염 교수도 “미국의 셰일 가스 기술 덕에 시추 산업과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한국석유공사도 해외 기업들과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해 협업을 많이 하고 있는 만큼 경험도 축적됐다”고 말했다.
동해는 과거 대륙붕 탐사 시절에도 활발한 연구가 이뤄졌으나 심해 탐사가 본격화되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기존에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면서도 실제 가스전이 개발된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는 덕이다. 임종세 교수는 “동해는 많은 연구와 탐사가 이뤄져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바다”라면서도 “서해나 남해에 화석 연료가 없는 것은 아니고 아직 탐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979년 한국석유공사를 설립한 이후 국내에서 이뤄진 시추 48회 중 절반이 넘는 27회가 동해에서 이뤄졌다. 서해는 6회, 남해 8회, 한일공동개발구역(JDZ) 7회 이뤄졌다. 최종근 교수는 “동해의 화석 연료가 서해나 남해에 비해 많다고 볼 근거는 없으나 동해에서 수집한 자료가 많다면 동해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시 소환된 ‘7광구’…이번 탐사지역서 멀어
윤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했다는 발표를 하자 온라인 상에서는 ‘7광구’가 다시 회자됐다. 7광구는 1970년대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가 매장됐을 수 있다며 한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개발에 나선 지역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탐사에 소극적인 탓에 처음 공동 개발을 발표한 지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다.
실제로 7광구는 제주도 남쪽인 동시에 일본 규슈 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번에 발표된 포항 영일만 앞바다와는 지리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전체 면적이 서울의 124배에 달한다.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발 협정이 끝나는 시점은 2028년 6월이다. 하지만 2025년 6월부터 어느 한쪽이 먼저 일방적으로 협정을 끝내자고 통보할 수 있어서 전문가들은 7광구에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이 2025년 6월 이후 7광구 공동개발 협정 종료를 통지한 뒤 7광구 경계를 한국을 배제하고 중국과 일본 간에 획정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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