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사장 비판 의견만 쏙 빠진 2023 KBS 경영평가보고서
KBS가 공개한 ‘2023년도 KBS 경영평가보고서’에 박민 사장 취임 이후 보도·시사부문 공정성에 대한 경영평가위원의 비판적 의견이 대부분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성향 KBS 이사 5명은 “반쪽짜리 보고서”라며 KBS 이사회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고 재의결할 것을 촉구했다.
KBS 이사회는 5월29일 야권 이사 5명이 퇴장한 가운데 여권 성향 이사 6명의 표결을 통해 ‘2023년도 KBS 경영평가 보고서’를 공표하기로 의결했다. 이날 표결에 앞서 야권 이사들은 제정임 평가위원(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의 기술 내용을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삭제할 권한이 없고, 평가위원에게 내용 삭제에 대한 의견을 듣지 않은 등의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반발하며 퇴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KBS 야권 이사 5명(김찬태·류일형·이상요·정재권·조숙현)이 3일 낸 입장문에 따르면 이번 경영평가보고서에 삭제된 내용은 모두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일어난 사안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부분이다.
제정임 위원은 경영평가보고서 최종수정안에서 KBS ‘뉴스9’ 이소정 앵커 교체, 박장범 앵커의 ‘4대 불공정 보도’ 사과, ‘이선균 마약 혐의 관련 보도’ 명예·사생활 침해 문제, ‘더 라이브’ 프로그램 일방적 폐지, 대통령 해외순방을 긍정 평가 일색으로 다룬 ‘시사기획 창’의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편 등의 사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제 평가위원은 “시청자와 내부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다른 절차와 방식은 없었는지 성찰이 요구된다”며 “또 과거 정권 홍보 방송으로 비판받았던 기억이 소환되지 않도록, KBS 뉴스와 시사 콘텐츠에서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데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KBS 여권 이사들은 제 평가위원이 밝힌 평가 의견 가운데 언론 보도 각주가 달린 단락을 문제 삼아 ‘언론 보도는 경영평가지침상 평가의 근거로 제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삭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제 위원은 언론 보도를 평가의 근거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경위 설명을 위해 인용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결국 해당 부분은 삭제됐다.
KBS 야권 이사들은 입장문에서 “언론 보도를 경위 설명을 위한 각주로도 쓸 수 없다고 판단할 근거는 경영평가지침 어디에도 없다. 또 삭제 의결을 하기 전 제 평가위원에게 이런 방침에 대한 안내나 수정 요구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정임 위원의 평가 의견 중 현 집행부에 해당하는 부분은 거의 다 삭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2023년도 KBS 경영평가보고서는 박민 현 집행부와 관련된 공정성 평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전임 김의철 집행부에 대한 평가만 담긴 매우 불균형한 보고서가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제정임 위원도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앞서 5월8일 보고서 초안을 두고 경영평가위원들이 참석한 이사회에서도 다수 이사(여권 이사)들이 경영평가지침에 어긋난 인용들이 보인다는 얘기 있었다. 당시에도 이사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해명이나 반론을 하려 했으나 그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이 발언을 누가 했다는 건지 불투명하다’ 등의 지적을 최대한 반영해 각주를 단 최종수정안을 올렸으나 평가 의견 자체를 통으로 덜어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KBS 경영평가보고서 최종안 확정 단계에서 내용 일부가 이사들의 논의를 거쳐 삭제된 전례는 있지만, 평가위원의 의견 대부분이 삭제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2022년 경영평가보고서 초안에서 김백 당시 평가위원은 공정언론시민연대의 모니터링 보고서를 실었고 당시 KBS 이사회는 ‘해당 단체는 경영평가 지침 상 책임 있는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종안에서 해당 자료만 삭제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제 위원은 이어 “결과적으로 ‘경영평가 지침에 어긋났다’ 정도만 전달됐고, 어떤 논의를 거쳐 어떤 논리로 내용이 빠졌는지는 사전·사후 아무런 설명이 없다”며 “2022년 경영평가보고서엔 그래도 김백 당시 평가위원의 의견은 그대로 실렸다. 이번엔 각주를 달았다는 이유로 평가위원의 의견 전체를 덜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KBS 야권 이사들은 또 다른 경영평가위원인 김덕기 위원(전 KBS 대구방송총국장)이 쓴 김의철 전 KBS 사장 시절 보도 비판 내용 중 반론 부분도 아무런 설명 없이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김의철 전 집행부 시절의 보도를 비판한 내용은 출처 불분명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살려두고, 최소한의 균형을 위한 반론 소개는 전체 삭제했다”며 “반론을 어떤 기준에서 왜 삭제했는지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결국 김 위원의 보도 공정성 평가에는 김의철 집행부 시절의 보도·시사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만 남았다. 박민 현 집행부 사례는 여론의 비판에 맞서 옹호하는 목적일 때만 언급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사회의 다수이사(여권 이사)들이 ‘공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사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는 방송법의 취지를 망각하고 현 경영진 감싸기에만 급급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사회가 경영평가보고서의 문제점을 다시 논의해 재의결을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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