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초당 양성자 1.2경개 조사… 우주방사선發 반도체 결함 포착
최대 빔 전류 20㎃ 양성자가속기
기업들, 소프트에러 검증 발길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내 양성자가속기동. 출입통제 구간을 지나자 노란색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문과 연결돼 있었다.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1m 두께의 철판을 가운데에 덧댄 2.5m 두께로, 양성자가속기 가동 중 나오는 방사선을 차폐하기 위해 설치됐다. 이날은 가속장치 정렬을 위한 유지보수 작업 중이어서 열려 있는 방사선 차폐벽을 지나 양성자가속기 터널로 진입할 수 있었다.
100m에 달하는 터널을 지나 양성자가속기가 구축된 가속기동으로 들어가자, 마침 정렬 작업을 위해 해체돼 있는 원통형 모양의 가속관 내부를 운 좋게 직접 볼 수 있었다. 가속관 내부는 전기장을 이용해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기 때문에 전기전도도가 뛰어난 탄소강에 동(銅) 도금으로 제작돼 옅은 불그스름한 색이었다. 내부는 원통 모양의 구조물을 기준으로 관과 배선이 상하좌우 일정한 간격으로 연결돼 있었다.
그 옆에는 양성자 생성을 위한 이온원과 11개의 가속관이 75m에 걸쳐 길게 뻗어 있고, 그 주변에 3∼4명의 엔지니어들이 안정적이고 균일한 양성자 빔을 생성할 수 있도록 가속관 정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세계 3번째 독자 기술로 완성…반도체, 의료 등 5개 빔라인 가동=
양성자가속기는 수소의 원자핵에서 양성자를 떼어낸 뒤 강력한 전기장을 이용해 빛의 속도로 가속한 후, 물질과 충돌시켜 구조와 특성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는 장비다.
양성자과학연구단은 2012년 대용량 선형 양성자가속기를 구축하고, 2013년부터 서비스에 들어갔다. 초당 1.2경개에 달하는 양성자를 조사할 수 있는 최대 빔 전류 20㎃급으로 지어졌다. 이들 양성자를 초당 13만㎞의 속도로 다른 물질의 원자핵과 충돌한다.
권혁준 양성자과학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양성자가속기는 미국,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독자 개발한 것으로, 최대 가속에너지가 100전자메가볼트(MeV)에 달한다"며 "양성자 빔이 가속기를 통과하면서 점점 빔 속도가 빨라지는데, 가속관 간격을 ㎝ 단위로 서로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균일한 빔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고난도 기술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100m 길이의 터널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가자 양성자가속기에서 생성된 빔을 연구와 산업에 실제 적용하는 빔라인 공간이 나왔다. 빔라인은 범용 빔라인과 동위원소 생산용 빔라인, 반도체·우주부품의 방사선 영향 평가를 위한 저선량 빔라인, 중성자 빔라인 등 총 5가지로 운영된다.
최근 들어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양성자가속기를 활용해 반도체 결함을 찾아내기 위한 방사선 영향평가 의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반도체가 초고집적화되면서 우주에서 유입된 대기·우주 방사선의 영향 때문에 반도체에 일시적 오류가 발생하거나,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이른바 '소프트 에러'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항공용 반도체 오작동 원인의 30% 가량은 우주 방사선이 반도체 소자에 충돌하며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한 도요타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우주방사선에 의한 반도체 오류 현상 때문으로 판명됐다. 반도체 운송 시 비행기가 북극항로 이용을 자제하는 것도 우주방사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인공위성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소자 등 우주 부품과 소재들은 방사선 영향 평가를 통해 사전에 해야 한다.
◇수요 급증에 우주방사선 영향 '소프트 에러' 24시간 검증= 반도체에서 주로 발생하는 소프트 에러를 막기 위해선 양성자가속기가 필수적이다.
양성자가속기를 활용하면 방사선으로 생기는 소프트 에러 발생율이 최대 10만 년에 1번꼴로 나올 정도로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방사선에 취약한 위치도 파악해 소프트 에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지상 12㎞ 상공에서 1시간당 1㎠의 면적에 6000개의 중성자가 쏟아져 나와 반도체와 센서에 영향을 주고, 지상에서도 1시간당 1㎠의 면적에 13개 대기 방사선이 도달해 지상에 있는 반도체에 영향을 준다.
이재상(사진)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2018년 이전만 해도 양성자가속기 사용 경쟁률이 1대 1에 머물렀으나, 지금은 평균 3대 1에 달할 정도로 실험 의뢰건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시설은 지난 2021년 국내 최초로 국제표준 시험시설로 등재됐다.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방사선 영향평가 수요가 급증해 전체 서비스 일수(120일) 중 40%를 반도체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다.
양성자과학단은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인공위성 등 우주장비나 부품 개발을 위한 '우주환경모사장치'도 구축했다. 태양이나 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양성자, 심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입자 등 다양한 우주방사선은 인공위성, 탐사선의 오작동을 일으킬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특히 양성자 방사선은 위성 궤도에서 우주방사선의 약 85%를 차지해, 양성자 빔 조사를 통해 우주·항공용 반도체를 사전 검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우주환경모사장치는 기존 진공, 극한 온도라는 우주 환경을 모사한 장치와 달리 우주방사선까지 더해 인공위성 등 우주에 사용될 각종 부품과 소재 개발을 위한 시험시설로 활용도가 높다.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반도체 수요 급증에 따른 방사선 영향평가 의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있어 오는 8월부터는 24시간 가동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200MeV(전자메가볼트)급으로 성능을 확장하고, 빔라인도 추가 설치해 반도체 뿐 아니라 6G 차세대 통신과 자율주행차 등에서도 해외에 의존하는 반도체 실증 시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주/글·사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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