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생명 무시 ‘망군적 귀신’…귀신 잡는 해병대 예비역들 [왜냐면]

한겨레 2024. 6. 3. 16: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최근 해병대 채 상병의 순직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적 실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국민의 분노와 실망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미봉책으로 덮어버리려는 건지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격노하면 안 되나? 격노한 게 죄냐"는 정치인이 나타나는가 하면, 고령의 예비역 중에는 "군대에서 임무 수행 중 안전사고로 사망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걸 가지고서 처벌한다 하면, 전투를 할 수 있겠는가?" 등 말장난의 변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채상병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가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지난 5월25일 오후 박정훈 대령 예비역 동기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표명렬 | 전 육군 정훈감·예비역 준장, 전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최근 해병대 채 상병의 순직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적 실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국민의 분노와 실망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미봉책으로 덮어버리려는 건지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격노하면 안 되나? 격노한 게 죄냐”는 정치인이 나타나는가 하면, 고령의 예비역 중에는 “군대에서 임무 수행 중 안전사고로 사망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걸 가지고서 처벌한다 하면, 전투를 할 수 있겠는가?” 등 말장난의 변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는 대통령의 격노가 분명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줄 뿐, 문제의 핵심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다. 왜 그토록 분노했느냐? 그 내용이 무엇이냐가 핵심의 본질이다.

물론 누구든 얼마든지 격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인이 아닌 대통령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격노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국민적 관심사인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서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그가 왜 그토록 격노했느냐 하는 내용은 당연히 국민이 알고 싶어 할, 알아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격노했던 언어의 중심 내용에 그가 병사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느냐의 속마음이 생생히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일부 언론의 도움을 받아 적당히 얼버무림으로써 시간이 지나면 비켜 도망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은 정치적 진영 문제와 아무 상관 없는 전 국민적 관심사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대한민국 군대에 관련한 문제다.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국민은 대통령이 과연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인간 존엄, 인간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갖추고나 있는 것인지, 끊임없는 독서와 자기성찰을 통한 인류애적인 기본 소양을 바탕으로 전쟁을 지도할 수 있는 혜안이 있는 것인지 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듯하다.

장군의 권위와 체면은 그렇게도 중요시 챙기면서, 계급 낮은 병사에 대해서는 생명까지도 지극히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격노의 언사 때문에 국민은 크게 실망·분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래 희망을 좀먹고 있는 조직 내에서의 ‘갑질 문화’들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의 군대문화로부터 연유·형성해왔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전면적인 군대문화 개혁에 착수할 것을 당부한다. 그 핵심은 바로 ‘장군 단’을 비롯한 간부급의 문화와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세계 제일의 선진국으로 발전해갈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인은 유사시 전장에 나가 생명까지 바친다. 결코 장군들이나 최고 통수권자를 위해서 목숨 바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 군대는 일제에 야합해 일신의 영달만을 꾀해온 친일 세력들이 오랜 세월 석권해 전체주의적 독재국가의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부하 인권·인격 무시가 일상화되어 ‘망군적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군대가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도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이 분연히 일어나 ‘망군적 귀신’을 잡아 없애기 위해 용전분투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가! 이제는 육해공군을 망라한 전 예비역들이 혼연일체 일어서 이 중대한 국가적 과제를 기필코 관철해 나가리라 믿는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로 우리 군을 거듭나게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