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망언의 트라이앵글’ 완성한 진실화해위원장 김광동
‘폭력·살인 옹호’하며 위원장직 수행
진화위 안팎 침묵…반복에 무감해졌나

“어떻게 ‘망언’이라는 말을….”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한겨레와 만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던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18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장에서였다. 평소 김 위원장은 한겨레 기자의 전화를 전혀 받지 않는다. 본인의 발언에 관해 확인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에도 일절 응답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날 토론회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10월10일 김 위원장이 영천 유족회장에게 한 “전시에는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즉결처분 가능하다)”는 발언의 파문이 커지던 때였다.
사실 ‘즉결처분’ 관련한 한겨레 기사에는 ‘망언’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다른 언론이 보도하며 ‘망언’이라고 했다. 그보다 4개월 전인 6월9일 김 위원장이 영락교회 강연에서 한 발언을 보도할 때는 ‘망언’이라는 단어가 한겨레 종이신문과 디지털에 제목으로 담겼다.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 (희생자) 1인당 1억3200만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심각한 부정의다”라는 내용을 가리킨 표현이었다. 김 위원장은 ‘망언’이라는 표현이 심하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망언보다 점잖은 단어를 떠올려본다. 막말, 궤변, 극언…. 김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노근리 사건은 불법 희생이 아니다. 부수적 피해다”라고 말했다. 1950년 7월 미군이 충북 영동에서 5일간 피난민 250여명을 무차별 폭격과 기관단총으로 살해한, 한국전쟁기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이자 국내에서 특별법까지 제정돼 진상규명이 진행된 사안에 대해 불법이 아니라면서 미국 국방부의 논리인 ‘전쟁 중 부수적 피해’를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한겨레는 이를 보도했다. 굳이 ‘망언’ 등의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어떤 단어가 가장 적확할까.

망언의 사전적 정의는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된 말”이다. ‘망령된’이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데가 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됐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폭력과 살인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일을 사소하게 치부하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을 살인자의 입장에서 정당화하거나, 오히려 희생자의 죄를 묻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망언이 궤변과 다른 것은 대상에게 모욕과 상처를 주는 악의성이다. 막말이나 극언의 수위가 용납할 수 없는 지경일 때 사람들은 ‘망언’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자면 김광동 위원장의 노근리 발언은 망언으로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동안 망언이라 할만한 김광동 위원장의 발언은 모두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과 관련돼 있다. 군경에 의해 일어난 국민보도연맹원 대량 학살이나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에 대한 학살을 문제없는 것처럼 여기는 말들이었다. 재판 없이 집행된 집단처형 사건의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을 책임지는 진실화해위의 수장이 한 말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단 한 번의 사례만으로 사임 논란이 불붙을 수 있었으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3월20일 대통령실에서 진실화해위의 소통 창구라 할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은 ‘언론인 테러 발언’으로 자진사퇴했다. 기자 앞에서 1988년 언론인 오홍근 식칼 테러가 재연될 것처럼 암시한 이 발언 역시 폭력 가해자에게 감정이입된 망언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황상무 수석은 그 말 한마디로 물러났다. 김광동 위원장은 총선과 무관한 존재였기 때문일까. “가히 망언의 트라이앵글(삼각형)을 완성하고도 꿋꿋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022년 12월 위원장 취임 이후 지난해 6월 영락교회 발언과 10월의 즉결처분 발언, 올해 5월 노근리까지 세 가지 중대 망언에도 별다른 제지가 없다. 반복되다 보니 듣는 사람들도 무감해지고 익숙해진 듯하다. 노근리 발언에 대한 한겨레 보도 뒤 조국혁신당만 짧은 비판 성명을 냈다.
망언은 진실규명 과정에도 고스란히 구현되고 있다. 경찰의 근거없는 사찰기록에 기대 13살·14살 소년에게 ‘암살대원’ 딱지를 붙여 진실규명 불능 의견을 낸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이 대표적 예다. 지난 3월28일 국회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민간인학살 과거사청산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2기 진실화해위 활동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표 참조) 결론은 “과거사 정리기관이 아니라 부역자 심사기관”이라는 점이다.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 기간은 1년 남았다. 지난달 27일 조사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김광동 위원장은 “사건처리율 60%를 이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31%뿐인 진실규명률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역자 심사’로 왜곡되는 진실규명 과정도 말하지 않았다. 남은 1년간 또 김 위원장은 어떤 말들을 쏟아낼까. 3대 망언은 5대 망언, 10대 망언으로 뻗어 나갈 것만 같다. 남들은 망언이라지만, 김 위원장 본인에겐 신념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화해위는 더욱 ‘만신창이’가 될지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진실화해위 안팎은 너무 조용하다. 기나긴 침묵이 망언의 당사자에게는 반가울 것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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