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50% 공천 의무화’ 멕시코, 200년 만에 첫 여성 대통령

박병수 기자 2024. 6. 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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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 후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이 확실시 되는 집권여당 국가재건운동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후보가 3일(현지시각)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멕시코 대선에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멕시코 연방정부 헌법 제정 이후 200년 만의 일이다.

멕시코 대통령 선거 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열린 대선에서 집권 여당 국가재건운동의 대선 후보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이 야당 연합의 소치틀 갈베스(61·국민행동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는 신속 표본 집계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멕시코 대선 선거관리위는 셰인바움 후보가 58.3~60.7%를 득표한 것으로 보이고 갈베스 후보는 26.6~28.6% 득표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신속 표본 집계로 최종 결과는 아니지만 차이가 커서 결과가 뒤집히기는 어렵다.

멕시코 대선 선거관리위 발표가 나온 뒤 셰인바움 후보는 “나는 멕시코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승리 선언을 했다. “나 혼자 해낸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조국을 물려준 여성 영웅들, 어머니들과 딸들 그리고 손녀들과 모두 함께 이뤄낸 일이다”라고 말했다. 갈베스 후보도 3일 패배를 인정했다.

셰인바움의 대선 승리는 멕시코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된다. 멕시코는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가톨릭의 영향이 크며 남성중심 문화인 ‘마초 문화’로도 유명하지만, 정치권에선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진 나라다. 여성 후보를 50% 공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에 힘입어 하원의원 500명 중 여성이 절반인 250명이며, 상원은 127명 중 64명으로 50.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이후 여성 대통령 당선은 이번이 처음이다. 셰인바움 후보의 지지자인 87살 여성 에델미라 몬티엘은 “여성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리투아니아·불가리아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셰인바움은 진보적인 과학자 부모의 영향으로 학창 시절부터 사회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15살 때엔 독재정권에 의해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부모들의 모임에 자원봉사를 하는 등 인권운동에도 참여했다.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그는 1995년 멕시코 국립자치대(UNAM·우남)에서 에너지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 활동에 종사하다 2000년 수도 멕시코시티 환경부 장관에 임명되며 정계에 발을 디뎠다. 그를 임명한 건 당시 시장이었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0) 현 대통령이다.

그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2011년 국가재건운동을 창당할 때도 창당 멤버로 함께했다. 2018년엔 첫 여성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되면서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그는 온건한 이민정책,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 공기업 강화 등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책을 대부분 계승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렇지만 그의 앞길에는 많은 과제가 쌓여 있다. 무엇보다 치안 문제 해결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멕시코는 의원,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함께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만 각급 공직에 출마한 후보 38명이 숨지는 최악의 폭력 선거를 겪었다. 투표 당일인 이날도 곳곳에서 폭력 사태로 두명이 숨지고 투표가 방해받고 지연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번에 물러나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재임한 6년 동안 살해된 사람만 18만5천명에 이른다. 셰인바움은 유세 기간 기회 있을 때마다 치안 개선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진 않았다.

셰인바움은 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도 공약했다. 그러나 이를 얼마나 지킬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멕시코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안고 있으며, 경기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은 내년 멕시코 경제성장률이 1.5%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셰인바움은 세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묘책을 짜내야 할 판이다.

이밖에 미국과의 국경 협상도 부담스러운 과제이다. 미국은 멕시코가 불법 이민과 마약 유통의 창구가 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 또 멕시코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생산기지가 되고 있다는 미국의 불만도 풀어내야 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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