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자동차 산업,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의 통상마찰이 일파만파 번지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말이 회자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하자 국내 산업계는 불똥이 우리에게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불을 붙인 미·중 마찰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 철강과 반도체 등 주력산업과 첨단산업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과거 미·일 통상마찰을 다시 보는 듯하다. 당시 미국은 전가의 보도라 할수 있는 '슈퍼 301조'를 동원해 일본의 주요 대미 수출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질적 제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대미 주요 수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미중 패권 경쟁은 주요국 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책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자동차 산업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데이터·지식·기술과 소프트웨어(SW) 등 질적인 면에서 앞서고 있지만, 생산과 판매량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파산과 매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전기동력차의 전환과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를 주도해왔지만, 중국의 추격이 만만찮다. 미국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중국을 앞섰지만 정부 보조금은 중국이 미국보다 많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미국 기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법안과 프로그램을 제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내수가 둔화하자 연말까지 소비자가 노후 차량을 전기동력차(NEV)와 저연비 자동차로 교체할때 최대 1만위안(19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완성차 업체들은 5000위안(95만원)~6만5000위안(1235만원)을 깎아 주고 있다. NEV 모델 가운데 93%가 지원 대상으로 평가된다.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NDRC)는 이 같은 지원이 자동차 수요를 600만~700만대 촉진하고 1조위안(190조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4월 중국의 자동차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9.3% 증가한 236만대, NEV 수요는 33.5% 증가한 85만대를 기록, 신차 판매의 36%를 차지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비교 우위와 세계 수요 관점에서 볼때 자국 산업의 공급과잉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자동차 산업 생산능력이 4000만대를 넘었고, 중국 정부의 전기차와 관련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확대, 미국 정부로서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려는 배경에는 그동안 석유수출기구(OPEC)가 카르텔을 형성해 원유 공급과 가격을 조정해 미국을 곤란에 빠뜨렸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완성차 5사와 CATL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는데 8억3000만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선진국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이 비교우위를 확보한 리튬인산철배터리(LFP)를 개발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고분자와 황화물을 포함한 7개 분야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경쟁이 격화하면서 배터리 업체간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CATL과 경쟁 중인 고션첨단기술(Gotion High-tech)는 10분 내 충전 가능한 배터리를 개발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중 통상압력이 강해질수록 중국 정부와 자동차사는 신흥국 시장 진출 확대와 자동차산업 경쟁 전략과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세계 전기차 산업을 장악한 중국 업체는 운전자와 탑승자 편의와 안전을 제고하는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선진 자동차사와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바이두가 공급한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자율주행 SW를 탑재한 테슬라 차량의 운행을 허용했다. 토요타는 소셜 미디어 업체인 텐센트와 전기차의 인공지능(AI) 통합과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협력키로 했다.
중국 자동차업체는 동남아·인도를 포함한 서남아·호주가 속한 대양주, 멕시코·브라질·콜롬비아 중심의 중남미·중동·동유럽·이집트를 비롯해 아프리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자동차사는 수출뿐 아니라 소규모 해외 공장도 건설하고 있다. 이에 국내 자동차사는 신흥국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500만원대 초저가 전기차부터 수억원의 고급차까지 다양한 모델을 세계 시장에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중국 업체는 미국과 EU의 저가 공세 저지 움직임에 대응해 판매 가격을 인상해 수익을 제고하고 있다. 또 중국 자동차업체는 향후 5년간 20개 넘는 공장을 유럽에 건설할 계획이다.
올해 중국 시장에서 새로 출시할 전기차 모델은 110종 넘을 예상으로 대부분 중국 업체들이 개발한 모델이다. 선진국 자동차 업계는 중국의 초속도 경영을 주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2100km 주행 가능한 5세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2개 모델을 중국 시장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두 모델의 가격은 1만3755~1만9296달러로 저렴하며 연비는 리터당 34.5km다. BYD는 3년 만에 연비를 24% 제고했다. 이 같이 중국발 전기차 가격 파괴와 성능 향상 경쟁이 확산하고 있다. 테슬라가 중국에서 조립한 전기차 수출을 증대하는 가운데 스텔란티스는 조만간 2만5000달러의 지프 전기차를 미국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전기차 평균 판매 가격은 5만3000달러이며 피아트 500 전기차 모델 가격이 3만2500달러인 점에서 파격적인 가격이다.
EU 자동차사는 저가 모델을 개발해도 정부의 구매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텔란티스 회장은 2만3000유로 해치백 전기차 모델이 동급 내연차보다 8000유로가 비싸다고 평가, 유럽 주요국이 구매 보조금을 중단한 데 아쉬움을 표현했다. 폭스바겐은 중국산 저가 모델 진입에 대응해 유럽산 부품을 사용해 제작한 2만5000유로 미만 전기차 모델을 내년 말 출시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2개의 승용 모델과 2개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을 스페인에서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폭스바겐과 스텔란티스는 유럽에서 경차 생산 경험을 통해 저가 전기차 모델을 개발·생산할 예정이다. 선진국 완성차업체들은 2026년까지 저가 모델을 양산할 계획이며, 2027년 이후 기존 내연차와 전기차간 가격 동등성이 나타나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봤다. 다만 전기차를 포함해 미래차 개발과 양산을 위해선 고수익이 필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공급자 시장에서 거뒀던 고수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원가 절감이 중요 과제로 부상했다. 저가 전기차 모델 개발은 공급사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완성차사에 비해 납품가격 인상이나 원가 절감이 용이하지 않아서다.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과거 미국과 일본간, 미국과 EU간 통상마찰도 결국 원만한 수준에서 타협을 이뤘다. 하지만 미·중 마찰과 EU·중국간 마찰은 결이 다르다. 누가 하나 양보하거나 타협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 정부가 100% 관세를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해도 다수의 저가 전기차가 가격 경쟁력을 갖고 미국 시장에 들어올수 있음을 상기시켜 중국산 수입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환경론자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저비용, 저공해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기술 도입을 억제하는 건 중국의 불법적이며 불공정한 무역행위에 대한 조치로, 미국 고용 안정과 국가 안보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전기차와 함께 중국산 스마트카 미국 진입을 불허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인의 위치를 추적해 관련 정보를 중국으로 보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행한 수출금지와 유사한 중국 정부가 미래차 핵심부품 공급 등을 전략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미국과 EU도 동상이몽이다. 미국은 전기차 공급망 전체를 자국으로 가져오려는 게 아니라 우방국 정부나 기업이 중국에 첨단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친환경 기술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을 견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속앓이는 미국 기업보다 유럽 기업이 더하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자동차사는 1970년대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입지를 강화해왔다. 유럽 자동차 시장이 성숙 단계에 진입했고 중국 자동차 시장 성장 잠재력이 막대한 점을 고려할 때 유럽 기업에 중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이러한 가운데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을 이달 9일 의회 선거 이후로 연기했다.
테슬라가 원만한 해결을 주장하는 가운데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중국 시장 점유율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 수출 비중도 감소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 행정부와 공화당 모두 중국에 대해 친환경 기술·제품의 독점을 우려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 패권 경쟁은 단기간 끝나지 않을 수 있다. 1990년대 중국 시장이 본격 열리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했던 '결국 중국은 다국적 기업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유비무환 정신 무장만이 미·중 패권 경쟁 속 우리 자동차 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lyg8779@hanmail.net
〈필자〉이항구 원장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다가 올해 2월 제9대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에 임명됐다. 친환경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 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 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아프리카 10개국 정상회담...“韓과 협력을”
- 기아 첫 중국산 전기차 'EV5', 이달부터 수출길 오른다
- 22대 국회·경제계 첫 소통 나서…“민생·경제 애로 시원하게 날려달라”
- 폭염 속 카트 정리한 90세 노인… 3억 기부금 모였다
- 지중해식 식단 먹으면 질병 사망률 23% 감소한다
- 틱톡 금지한 트럼프, 틱톡 가입… 하루 만에 팔로워 300만 훌쩍
- “또 결혼”…93세 언론재벌 머독, 26살 연하와 5번째 결혼
- K-시큐리티 얼라이언스 '통합 보안 플랫폼 개발' 닻 올렸다
- [정보통신 미래모임]“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문화·보상체계 준비해야”
- 기아, 유럽서 8년 만에 '범유럽 딜러대회' 개최…“전기차 대중화 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