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경제 원리 안 따르는…최저임금제의 민낯

장규호 2024. 6. 3. 15: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Cover Story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지난달 21일 최저임금위원회 1차 회의가 열리며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물가가 급등해 심의 과정이 더욱 험난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최저임금은 아르바이트 시급에 직결되는 만큼 청소년 여러분도 관심이 많죠? 그런데 최저임금은 매년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나요? 최저임금 결정 시 물가상승률을 우선 감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이나 경제 여건, 기업의 지급 능력 등 최저임금 결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무리한 인상을 요구하거나 근로자 소득 배분을 늘려야 한다는 이념적 주장을 펼치는 것은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직전 정부 5년간 최저임금을 41.6%나 올리는 바람에 노동시장에 부작용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무인화·자동화 기기를 도입하고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었습니다. 최저임금 급등이 역으로 일자리를 앗아간 거죠. 마지못해 최저임금 이하로 봉급을 받는 근로자도 전체의 13.7%(약 301만 명)나 됩니다. 또 업종별 생산성에 맞게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바람에 농촌의 외국인근로자 임금이 일본보다 최대 3배 높습니다. 경제 원리를 무시한 최저임금제의 민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란 제도가 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최저임금제 운영이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최소한의 인간적 삶 보장하는 정책으로 출발
새 근로 형태, 외국인 적용은 아직도 논란 중

연합뉴스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근로자는 의식주, 수면 및 휴식, 건강, 안전, 자아실현 등 인간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고 사고·판단력, 감정과 정서의 개발 등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노동을 계속 제공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이를 위한 필수 재화와 서비스 구매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달리 표현하면 존엄한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인데요, 이런 목표를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만 맡겨둘 수 있을까요? 18~19세기 서구에선 저임금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삶이 본격적으로 조명되면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마련됩니다. 이것이 시장을 통하지 않고, 시장 밖에서 임금의 최저선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제가 나타난 배경입니다.

국민경제 발전이 최종 목표

최저임금제는 노사 간 자율적 임금 결정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자, 즉 기업 경영자에게 특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라고 법으로 강제합니다. 우리나라도 1987년 헌법 개정 때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제32조 1항)고 못박았습니다. 관련 최저임금법은 1986년에 제정해 1988년 1월부터 시행했습니다.

최저임금법은 제도의 목적(제1조)에 대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엔 나와 있지 않지만, 근로자의 임금 격차를 완화해 소득분배 상황을 개선하려는 경제적 목표도 있지요.

민간기업 부담만 늘려선 안 돼

근로자의 최저 생계 보장은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통해서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제와 사회보장제도는 상호보완재라 볼 수 있는 거죠. 사회보장제는 다만, 여러 생활필수재를 근로자 개인이 아닌 사회구성원 공동으로 확보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각자의 소득과 자산 규모에 맞게 갹출해 재원을 마련하는 거죠. 일각에선 선진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최저임금제도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회보장제도의 미비점을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최저임금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가 돼 정당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최저임금제도와 경제성장의 관계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즉 노동소득분배율이 63.2%(문 정부 출범 전인 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3번째로 낮다고 봤습니다. 세계노동기구(ILO)는 임금을 높여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임금 주도 성장론을 폈는데요, 문 정부는 이를 ‘소득 주도 성장’이란 비슷한 말로 치환하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추진합니다. 저소득층 소득 증가→소비 증가→생산 및 투자 증가→고용 확대→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전통적으로 그리고 계량적·경험적으로 경제성장이 먼저 이뤄지고 그 성장의 과실이 분배되는 과정에서 임금과 소득이 높아지는 게 순서입니다. 거꾸로 최저임금이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고 하니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이란 비판이 많았던 겁니다.

플랫폼 종사자에도 최저임금 보장?

최저임금제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택배기사·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기반 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계에서 나오는 게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각각이 독립적인 개인사업자인데 근로자와 같은 대우를 해주는 게 맞을까요? 보험설계사·골프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특고) 종사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 적용 대상은 아니었는데요, 이들도 최저임금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밖에 노동시장의 국경 장벽이 낮아지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고, 웬만한 선진국에선 내국인 근로자와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국내 근로자와 똑같이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숙련도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인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최저임금제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공부해보자.

2. 최저임금제는 민간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제도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3.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 약자’라고 해서 최저임금을 줘야 할까?

일자리 줄이고 범법자 만드는 최저임금제
획일적 운영의 문제부터 개선해나가야죠

연합뉴스

소득과 비교한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지 않습니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은 고소득자부터 저소득자까지 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가장 가운데 값을 뜻하는 중위소득의 62.2%로, OECD 국가 중 8번째로 높았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우리와 경쟁하는 미국(28.0%), 일본(46.2%), 독일(54.2%)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자동·무인화 불러

여기엔 과거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을 급속히 끌어올린 영향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이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하는 효과를 낳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역설적 상황이 나타납니다. 올라만 가는 최저임금 때문에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홀로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어요. 숙박업소와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가운데 이른바 ‘나 홀로 사장’ 비중이 2018년엔 46.3%였으나, 지난해 50.6%까지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 거죠. 서빙 로봇이나 테이블 오더 같은 자동화·무인화 기기 사용이 늘면서 저숙련 근로자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월급 120만원 주던 직원 한 명을 월 임차료 60만원짜리 서빙 로봇으로 대체하는 식이죠. 아무리 선의(善意)를 담은 사회정책적 목표에 따라 최저임금을 정해도 노동시장 자율에 맡겨둘 경우에 비해 과도하게 최저임금이 높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에선 최저임금 이하로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례, 즉 범법자들이 양산되는 문제도 빚어집니다. 작년 최저임금 이하로 봉급을 받은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13.7%인 301만 명에 달했습니다.

‘고용 줄이는 최저임금’ 연구 많아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이 고용수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내립니다. 한때는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가 뉴저지주 패스트푸드점의 최저임금을 연구한 후 임금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고용을 늘린다는 논문(1994년)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뉴마크와 윌리엄 워셔는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중남미·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를 추정한 100여 편의 논문을 종합한 결과, 이들 가운데 3분의 2는 최저임금이 고용을 줄였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2008년 지적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최저임금 논쟁입니다. 미국에선 최저임금이 100 오를 경우 10대 청소년 일자리가 8~25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됩니다. 국내에선 남성일 서강대 명예교수가 최저임금의 직접 대상이 되는 아파트 경비 근로자의 고용을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이 10% 높아지면 고용이 3% 감소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법에선 ‘차등 적용’ 가능한데…

최저임금제는 실용적 정책 수단입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근로 형태 등이 변화하면 그에 맞춰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시대적 생각에 갇혀 획일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면 부작용이 커질 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한국 최저임금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은 1986년 제정 이후 15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큰 변화 없이 원래 뼈대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2018년 개정 때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임금의 범위를 규정하는 등 의미 있는 제도 변화가 있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1986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835달러였는데요, 작년엔 3만3127달러로 그간 약 12배가 늘었습니다. 국민 경제생활이 양적·질적으로 발전하고 노동시장과 근로 형태 및 관행이 크게 바뀌었음에도 최저임금제는 ‘근로자 최저 생계 보장’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법률에선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제4조)고 해놓고선 현실에선 모든 사업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일본의 경우 산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하고 차등 적용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좀 더 유연한 제도 운영이 최저임금제에서 필요한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획일적인 최저임금 적용이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정리해보자.

2. 자신의 주변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인 사례를 찾아보자.

3. 업종별 차등적용을 포함해 선진국의 최저임금제 특징을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