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만명을 죽인 성실함으로...아우슈비츠 옆에서 그들은 귀족처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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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화면이 2분가량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서두를 장식한다.
영화는 상영시간 105분 대부분을 사택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한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 한 번도 직시하지 않는다.
검은 연기가 굴뚝에서 수시로 피어오르고, 간혹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화면에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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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한 소장 사택 생활 보여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가해자 모습“
검은 화면이 2분가량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서두를 장식한다. 둔중한 음악이 함께한다. 암흑의 시기를 되돌아본다는 의미 또는 조의를 표하는 듯하다. 화면이 열리면 여름 강가다. 사람들은 풀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다.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이는 풍경이다.
이어서 저택이 등장한다. 이층집 유리에는 얼룩 한 점 없다. 넓은 정원에는 달리아꽃이 흐드러져 있고, 빨랫줄에는 새하얀 빨래들이 걸려 있다. 맑은 하늘에는 비행기편대가 날아가나 죽음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렵다. 집 담장 한쪽은 높다. 가시철조망이 쳐져 있기도 하다. 시대는 1940년대 초반. 집주인은 나치 독일의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 중령. 직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다. 집 옆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원주택 같은 곳은 회스 중령의 사택이다.
수용소장 가족의 안락한 삶
영화는 상영시간 105분 대부분을 사택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한다. 회스는 아내 헤트비히(잔드라 휠러), 네 자녀와 생활한다. 집 안팎은 정갈하다. ‘유대인 시종’ 몇 명이 먼지 한 톨이라도 바닥에 떨어질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들은 헤트비히와 눈조차 맞추지 못한다. 헤트비히의 말 한마디면 “금세 재가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 한 번도 직시하지 않는다. 검은 연기가 굴뚝에서 수시로 피어오르고, 간혹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화면에 끼어든다. 지옥 옆 그들만의 천국을 집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더 소름을 자아낸다. 회스 집안을 통해 참혹한 역사를 돌아보는, 일종의 반어법인 셈이다.
헤트비히와 다과를 함께하던 한 독일 여인은 가정폭력에 대해 수군댄다. 사람들은 어떤 폭력에는 민감하고, 어떤 폭력에는 둔감하다. 폭력의 강도와는 상관없다. 회스와 헤트비히 등에게 유대인은 정원에서 제거해야 할 “이놈의 잡초들” 같은 존재다. 배제와 분리와 제거로 만들어진 천국은 과연 천국일까. 헤트비히는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며 온실 같은 곳에서 행복을 누리나 과연 오래 지속될 삶일까.
35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성실함
회스는 성실했다. 4년 동안 수용소와 사택을 ‘알뜰히’ 가꿨다. 가족에게는 제법 충실한 가장이었다. 그는 전출되고도 아내와 자녀를 위해 가족을 사택에 그대로 머물도록 조치했다. 회스가 정성을 다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학살로 유대인 350만 명이 사라졌다. 회스는 훗날 위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재판에서 항변했다. 성찰 없는 성실은 종종 큰 죄가 된다.
영국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의 네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전작 ‘언더 더 스킨’(2013)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글레이저는 이전 작품들처럼 정밀하게 구성된 화면으로 여러 감정을 빚어낸다.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회스 일행이 저녁놀이 지는 모습을 감상할 때 한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식이다. 글레이저 감독은 실제 회스 사택에서 촬영하려 했으나 원래 모습과 많이 달라져 근처 건물을 1940년대 사택 모습 그대로 개조해 썼다. 글레이저 감독은 “이 영화는 가해자들과 우리가 무엇이 비슷한지 돌아보게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2등 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3월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받았다. 글레이저 감독은 “유대인 정체성과 홀로코스트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데 이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며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비판하는 수상 소감을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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