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인생 망쳤어”···뮤지컬 슈퍼콤비 ‘윌휴’, 브로드웨이로 가다

백승찬 기자 2024. 6. 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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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광받는 뮤지컬 콤비 윌 애런슨·박천휴
‘어쩌면 해피엔딩’ 10월 브로드웨이 초연
6월 18일 다섯 번째 한국 시즌 개막
뮤지컬 작사가 박천휴(왼쪽)와 작곡가 윌 애런슨. CJ ENM 제공

뮤지컬 팬들 사이에 ‘윌휴’라 불리는 윌 애런슨(작곡)·박천휴(작사)는 지금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는 창작 콤비다.

윌휴 콤비는 <번지점프를 하다>(2012), <어쩌면 해피엔딩>(2016)에 이어 <일 테노레>(2023)까지 조금씩 보폭을 넓혀왔다. 최근 초연 막을 내린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를 산 조선 최초의 테너 이인선의 삶을 극화해 크게 호평받았다. 미국 뉴욕에 머물다 <어쩌면 해피엔딩> 다섯 번째 시즌 개막을 앞두고 귀국한 윌휴 콤비가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둘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에서 시각예술을 공부하던 박천휴는 같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애런슨을 만났다. 이후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작곡을 제의받은 애런슨은 함께 일하고 싶은 작사가로 박천휴를 떠올렸다. 박천휴는 “창작 콤비이기 전에 친한 친구였다. 당장 큰돈 벌기보단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비슷하고 존경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음악을 서로에게 추천하고, 가끔 싸우고, 다시 화해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음악 한 곡에서 시작한 뮤지컬이다. 당시 직장인이던 박천휴는 퇴근 후 카페에 앉아 있다가 그룹 블러 출신 데이먼 알반의 ‘Everyday Robots’를 우연히 들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귀가하는 사람들을 로봇에 비유한 노래였다. 박천휴는 “로봇을 주인공으로 해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생각했고, 바로 윌에게 e메일을 보내 아이디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21세기 후반 서울에서 인간을 돕다 은퇴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외로움을 벗어나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그린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작이었다.

이번 공연에선 정욱진·윤은오·신재범이 올리버, 홍지희·박진주·장민제가 클레어를 연기한다. 애런슨은 “더블 혹은 트리플 캐스팅은 미국에는 없는 한국 뮤지컬만의 특징이다. 한 시즌에 완전히 다른 색깔의 공연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천휴는 “초연 때만 해도 한국 뮤지컬계에는 남자 주인공들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이야기가 선호됐다”며 “남녀의 로맨틱한 이야기가 주류는 아니었는데, 다행히 많은 관객이 좋아해주셨다”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10월 브로드웨이 1000석 규모 대극장에서 미국 초연을 한다. 지난해 토니상에서 <퍼레이드>로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마이클 아덴이 연출하고 역시 토니상 수상자인 제프리 리처드가 제작한다. 연출과 배우만 바뀔 뿐 인물, 이야기, 한국 배경 등은 그대로다. 한국 창작진의 뮤지컬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박천휴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작품 규모가 크지 않으니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는데, 제프리가 ‘지금 미국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오프브로드웨이를 나누지 않는다. 가능하면 가장 큰 규모로 작품을 선보이는 게 좋다’고 했다”며 “작품의 정서, 이미지, 주제를 해치지 않는다는 약속도 받았다”고 말했다.

애런슨은 “작품마다 ‘유니크함’이 목표다. 관객이 뮤지컬을 보며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하고 싶다. 집에 갈 때 그 감정과 현실의 접점을 찾는 경험을 하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천휴는 “공연을 본다는 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리마인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미래의 한국이 배경인 <어쩌면 해피엔딩>, 일제강점기 경성 배경인 <일 테노레>, 그리고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해 올해 말 선보일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도 같은 의도를 품은 작품이다.

박천휴는 “혼자였다면 일기장에만 남았을 법한 가사, 공상에 그쳤을 아이디어가 윌 때문에 음악이 되고 대본이 됐다. 가끔 너무 힘들 때면 ‘너 때문에 인생 망쳤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애런슨도 “한국 뮤지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미국 관객은 나이가 많은데, 한국엔 젊은 관객이 많아서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둘은 계속 함께 작업할까. 애런슨은 주저없이 “그렇다”고 답했고, 박천휴는 “서로 영감을 주는 파트너인 한 계속하고 싶다. 윌에게도 ‘나보다 에너지 많이 주는 사람 있으면 하라’고 한다. 일단 몇 작품은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6월18일~9월8일 대학로 예스24 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작사가 박천휴(왼쪽)와 작곡가 윌 애런슨. CJ ENM 제공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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