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전문가, 오물풍선에 "저열·저급해, 남북 '삐라'심리전 역사적으로 우리 승리"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06월 03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 1950년 한반도 하늘에는 끊임없이 종이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소리 없는 총성 종이 폭탄으로 불렸던 일명 삐라. 6.25 전쟁 기간에 프랭크 페이스 당시 미국 육군장관은요, "적을 종이로 묻어버리라"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대남 전단 살포가 다시 등장했죠. 북한이 지난 한 5일 동안 대남 오물풍선을 살포해서요. 지난 주말만 한 600개 이상 전국 곳곳에 발견됐다고 하고요. 정부도 NSC도 열고 대책도 논의했습니다. 어젯밤에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는데 다만 북한으로 삐라 전단을 보내온다면 살포 행위를 재개하겠다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전문가와 함께 삐라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는데 그 역사가 참 오래됐다고 하거든요. 과거에 이른바 삐라 전시회를 열었던 분이에요. 진용선 정선 아리랑 연구소장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이하 진용선) : 예 안녕하세요.
◇ 박귀빈 : 예 과거에 우리가 삐라라고 하면 체제를 선전하거나 전투 의지를 떨어뜨리는 내용이 적힌 종이였거나 이런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살포된 것들을 보면 오물만 잔뜩 보이더라고요. 뭐 이런 일명 삐라, 이런 전단도 그동안에 있었습니까?
◆ 진용선 : 그동안에는 이런 게 없었습니다. 저도 처음이고요. 또 제가 살고 있는 곳에는 아직 오물풍선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뉴스를 통해서 영상으로 보면서 이게 또 이런 삐라도, 이런 소위 심리전도 하는구나 하는 것을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 박귀빈 : 예 지금 말씀하셨지만 통상 이 전단은 종이, 쪽지는 이 심리전 좀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사용해 왔던 걸로 알고는 있는데 이번 것도 그것의 한 하나의 종류라고 보세요? 심리전입니까 이번 것도?
◆ 진용선 : 그렇죠. 보통 군사학에서 또 일반적으로 국어사전을 보더라도 심리전이라고 하는 것을 적대행위가 없이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으로 자극이나 또 압력이나 압박을 주어서 자국에 유리하도록 하는 전투 행위라고 정의를 하거든요. 이 오물풍선도 어쩌면 심리전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보통 사상적으로 견고한데 그러한 곳을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 그런 비대칭 무기를 우리가 심리전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 심리전이라고 하지만 이 오물풍선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그다지 그렇게 동요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이라고 하는 곳에서 쓰레기를 날려버리는 것이 참 어쩌면 참 지저분한 국가다 이렇게 하기에 충분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부분만을 본다면 지극히 아주 배설 수준의 감정적인 형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여튼 뭐 이러한 것도 일종의 심리전이니까요.
◇ 박귀빈 : 그렇군요. 근데 원래는 이런 전단 같은 거는 막 이 정도로 무겁게 무게가 있는 것들을 좀 내려 보냈습니까? 이번에 보면 이 오물풍선으로 주차돼 있던 차량 앞 유리가 파손되기도 하고요. 꽤 무게가 나갔던 것 같더라고요.
◆ 진용선 : 그런데 이런 사실은 그 오물풍선 오물을 달아서 내보내서 접근을 동요하게 하는 그런 심리전의 행위는 지금까지 없었거든요. 보통 전단이라든지 또는 뭐 돈이라든지 또 이런 것을 살포해 가지고 그랬는데, 북한이 워낙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다 보니까 어쨌든 이러한 것에 담겨 있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또 걱정도 하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 이제 북한이 노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또 우리 정부에서도 이러한 오물 단순 오물이지만 나중에는 이 속에 또 어떠한 것이 담길지도 모르고 또 그러니까 충분히 대비를 해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박귀빈 : 네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 이번에도 하나하나 다 떨어진 거를 다 분석을 했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안에 오물 말고도 또 다른 위험한 것들이 있을까 봐 하나하나 수거를 다 했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근데 생각을 해보면 이 대남 전단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삐라라는 것이 이게 진짜 예전부터 있어왔고 예전에 어떤 내용들을 보면 이 대남 전단을 주워 본 경험 있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예전에 북한이 살포한 전단 주워가면 공책 같은 거 바꿔주기도 하고 그런 시절도 있었잖아요.
◆ 진용선 : 그렇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삐라를 많이 주웠거든요. 이제 보통 이제 동네 야산에서 삐라를 많이 줍게 되는데 그때 본 삐라들은 전부 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삐라가 많았죠. 그리고 또 그것을 주워서 파출소에 갖다 주면 그때 당시에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철방구리라고 하는 만화가 있었고요. 작은 만화책이죠. 그리고 또 자유의 벗이라는 책자도 있었고 또 어떨 때는 공책이라든지 책받침이라든지 연필이나 자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용품으로 상을 주곤 했는데 어쨌든 그 시절에는 경찰서나 또 학교나 관공서 곳곳에 삐라 수거함이 있었고 또 삐라를 발견하면 신고합시다 라고 하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들도 곳곳에 많이 있었는데 그만큼 그때는 삐라라고 하는 것이 소위 전단으로 많이 살포되었던 그런 시절이었죠.
◇ 박귀빈 : 소장님께서도 예전 말씀을 해 주시면서 공책도 바꾸기도 했고 뭐 삐라 수거함도 있다고 말씀하신 거 보니까 굉장히 많이 삐라를 살포했던 걸로 아는데 이게 심리전이라고 앞서 말씀하셨잖아요. 그럼 당시에 어떤 우리 국민의 심리에 영향을 준 게 맞습니까?
◆ 진용선 : 그렇죠. 그러니까 이 심리전은 사실은 오래전부터 되어왔거든요. 어느 특정 집단이 이걸 가지고 쓰고 끝난 것이 아니라 1차 대전 때부터 이 심리전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유용한 수단으로 또 전투적인 어떤 손실이 없이 이어져 온 거기 때문에 굉장히 유용하게 되어 왔습니다.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막강한 화력과 같은 물리력도 사실은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독려해서 수행 능력, 그러니까 전투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는 이 조직적인 신경전 또는 선전전이 이 심리전이거든요. 그래서 이 심리전이 특히 1차 대전 때부터 성공적이다 라고 하는 평가를 얻게 된 후부터 2차 대전 때는 아주 널리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겠죠. 총을 쏘지 않고도, 적의 사기와 전투력을 붕괴시킬 수 있는 아주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겁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근데 앞서도 말씀하셨듯이 이거를 주어서 가져가면 공책도 주고 뭐 이제 다른 또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그냥 그 용도로만 이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이제 의문점이 생기는 거죠. 사실 종이 한 장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전단 살포에는 도대체 어떤 힘이 있는 걸까요?
◆ 진용선 : 그러니까 우리 특히 심리전에서 가장 효과를 많이 본 전쟁이 6.25 전쟁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한국전쟁, 6.25 전쟁을 가리켜서 리플렛 워라고 해서 그러니까 이제 번역을 제대로 하면 삐라 전쟁이 되는 거죠.
◇ 박귀빈 : 네
◆ 진용선 : 6.25전쟁은 외국에서 지금까지도 종종 삐라 전쟁이라고 해서 심리전을 다룰 때 꼭 같이 나오는 국가가 바로 이제 한국의 6.25 전쟁입니다. 그때는 우리 측에서 유엔군에서 25억 장이라는 삐라를 뿌렸고 북한에서는 한 3억장 정도를 뿌렸는데 이 심리전 전단의 크기가 보통 대부분 엽서보다 조금 큰 36절지 형태죠. 그러니까 25억 장 정도를 뿌리면 한반도를 수십 번 뒤덮고도 남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삐라를 뿌렸고 또 이 효과가 굉장히 크게 나타났던 전쟁이 바로 6.25 전쟁입니다. 특히 6.25 전쟁 때에 많은 인민군들이 삐라를 주워들고 투항을 하는가 하면, 주워든 삐라를 주머니 속에 소지했다가 처벌받는 처벌받은 인민군수도 많다고 하는 것이 전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심리전에서 쓰이는 이 종이 한 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걸 하나씩 주워들고 자기가 자신의 삶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죠.
◇ 박귀빈 : 그렇군요. 그러니까 삐라라는 것이 지금은 북한에서 우리나라 쪽으로 지금 하나의 형태로 이제 오물풍선 형태로 살포를 하고 있지만 원래 삐라의 역사를 보면 전쟁을 하고 있는 양국이, 양측이 서로 심리전으로 굉장히 많이 활용을 했던 것이 이 전단, 삐라인 거군요.
◆ 진용선 : 네 그렇습니다.
◇ 박귀빈 : 그리고 6.25 전쟁 때 정말 많이 쓰였다. 그런데 당시 전단 안에는 종이를 가지고 오면 살려준다. 이제 포로를 회유하는 그런 전단지도 있었다는 말씀이신 거잖아요.
◆ 진용선 : 네 그렇습니다. 보통 이제 삐라라고 하는 거는 세 종류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게 일반적인 삐라고, 또 한 가지는 이제 우리 아군 측에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뉴스 형태의 삐라가 있어요. 그래서 일반 삐라가 있고 뉴스 형태의 삐라가 있고, 또 안전보장증이라고 해서 이걸 이제 영어로도 같이 써놓니다. 세이프 컨덕트 패스라고 해요. 이 안전보장증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이거는 뭐냐면 귀순하는 사람이 이 종이 삐라를 한 장 들고 오면 소위 말해서 살려준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삐라에는 항복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는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을 유엔군이나 또 한국군에서 보냈 었죠 6.25 전쟁 때. 그래서 이거를 들고 오면 유엔군 총사령관의 명의로 서명까지 삐라에 돼 있어요. 그래서 귀순하는 사람은 안전하게 대우하도록 지시하고 있고 또 이 삐라를 가져온 적군은 반드시 제대로 대우를 해주라라고 하는 그런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삐라 자체가 앞면이 지폐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지폐로 돼 있어서 떨어지면 이걸 줍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놓고 뒷면에는 살려 주겠다 라고 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죠.
◇ 박귀빈 : 앞면에는 북한 지폐 형태로 만들고 뒤에는 실제 무언가를 회유하는 내용이 적힌 전단, 진짜 여러 가지 전략적으로 이 전단을 만들었군요. 세계 주요 전쟁에 이런 전단을 이용한 심리전이 늘 있어왔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럼 시대별로도 그 내용이나 문구를 좀 구별할 수 있나요? 시대별로 정리가 가능합니까?
◆ 진용선 : 삐라는 계속 체제 경쟁을 강조하는 거니까 6.25 전쟁 끝난 이후에 1960년에서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대를 거쳐오면서 삐라를 계속 서로가 뿌려대고 했었죠. 그러니까 보통 간단하게 정리하면 휴전 이후에는 남한보다 오히려 북한이 훨씬 더 잘 살던 국민 총생산이나 소득에서 남한을 앞서던 시대에 우리나라를 앞서던 시기에 북한에서는 체제 경쟁에 대한 어떤 우월성을 굉장히 홍보를 했죠. 사회주의 낙원으로 오라 이런 확성기 방송도 했고 또 삐라도 그렇게 실제로 많이 보냈고요. 그런데 이제 1970년대 들어서는 우리나라가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성공하고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우리나라에서는 또 곡창지대에서 풍년을 맞아가지고 환하게 웃고 있는 농부의 모습이라든지 또 중화공업 발달로 삶의 질이 향상된 모습을 담아서 북한에 또 대거 살포를 했고 1980년대에는 좀 주춤했었어요. 서로가 남북 모두 내부 역량 강화에 집중한 시기다 보니까 뭐 그다지 그렇게 내용이 많지가 않았는데 그 틈에 어쨌든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을 했고 우리는 잘 사는, 자동차를 만드는 그런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을 계속 홍보를 하고 특히 대한민국이 5대 자동차 생산국이라고 해서 1990년대에 엄청나게 많은 삐라를 북으로 날려 보냈던 적도 있죠. 그런 식으로 이제 시대가 계속되면서도 체제 우위의 경쟁을 계속 홍보하는 내용이 들어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삐라 살포라고 하는 게 2천년 김대중 대통령하고 또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상호 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부터 이게 이제 거의 심리전은 사실은 중단되었다라고 볼 수가 있었죠.
◇ 박귀빈 : 그렇군요. 그러면 이게 역사적으로 쭉 짚어주셨는데 이런 전단 살포를 이용한 심리전, 이게 과연 이제 양측을 봤을 때 우리나라와 북한을 봤을 때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 이렇게 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어디가 더 유리합니까?
◆ 진용선 : 지금까지를 놓고 보면 우리가 많이 승리를 한 거죠. 그러니까 승패를 놓고 본다면 6.25 전쟁 때 당시에 삐라의 효용 가치는 물론이고 특히 지금까지 내려온 걸로 보면 북한의 경우가 바로 심리전에서 패한 사례라고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체제 경쟁에서 뒤진 북한이 삐라를 심리전 수단으로 효과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증명을 했잖아요. 특히 1990년대 들어서 북한에서는 심리전에서 한발 물러섰거든요. 이것은 왜 그러냐면 1990년대 중후반에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이 되고 또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자 경제적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었죠. 더군다나 그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었고 또 우리나라는 어쨌든 여러 가지 험난한 과정 속에서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북한은 곤두박질 쳤고 더군다나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낙원이라고 하는 것을 북한이 계속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계속 강조를 해왔는데 이 삐라 속에 사회주의 낙원이라고 하는 게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던 게 돼버리죠. 그러다 보니까 삐라의 양도 1990년대 후반 들어서 확 줄어들고 종이의 질도 또한 그때 형편없었죠. 그 당시에 뿌려진 삐라를 보면 우리가 소위 똥 종이라고 하는 그런 수준의 종이들이 살포될 정도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체제 경쟁에서 졌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심리전을 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도 일단은 조금 위축된 상태로 심리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에 북한이 제일 민감하게 반응했던 심리전 중에 하나가 대북 확성기 방송이었던 것 같거든요. 근데 그거는 왜 그렇습니까?
◆ 진용선 : 대북 확성기, 사실은 북한이 심리전 오물풍선을 보내는 것을 중단한 시점이 우리 정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다 라고 하는 시점 바로 다음 날이잖아요. 그리고 또 북한이 오물풍선을 중단하면서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북한 땅에 삐라가 뿌려지면 또 이걸 보내 겠다 라고 하는 얘기를 한 거죠. 이게 옛날부터 이건 이랬습니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북 심리전을 통해서 무력 충돌 일보 직전까지도 가면서 남북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이 된 적도 여러 번 있었잖아요. 특히 2014년에 우리 탈북자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를 하자 북한에서 고사포를 발사한 적도 있고 또 우리도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했던 적도 있는데 북한은 항상 이 삐라가 살포될 때마다 엄청나게 긴장을 하죠. 그리고 또 남북 대화 과정 속에서 항상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이 삐라였던 만큼, 삐라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으름장을 많이 놨던 거죠. 그러다가 이제 뭐 남북 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하면서 그랬는데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다시 삐라가 늘어났고 또 체제경쟁을 가지고 얘기하려니 이게 되지 않다 보니까 이렇게 저열한 방법의 수단을 통해서, 그런데 이 심리전은 이렇게 저급한 방법도 통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방식을 계속 고집하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아마 예의주시할 거라고 봅니다. 심리전은 이게 어떤 가치 체계가 쌓이고 하면 그것을 계속 활용하려고 하는 그런 습관이 있기 때문에 아마 한국 정부가 이걸 어떻게 반응할까를 유심히 살펴보리라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진용선 정선 아리랑 연구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진용선 : 예 감사합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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