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요청 접속차단, 결과는 김정은 찬양가 홍보?
국정원 등 요청으로 방심위 북한 관련 콘텐츠 연일 '접속차단'
무한한 정보의 바다…심의 개시 언론 보도에 오히려 관심 쏠려
국정원 요청 그대로 따르는 방심위 "자율적 판단 능력 사라져"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여권 다수로 구성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국가정보원 등 요청에 따라 북한 관련 온라인 게시물을 '접속차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주목도만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는 최근 김정은 찬양가 '친근한 어버이'(5월) 비롯해 북한 가요 '단숨에'(3월), 북한 유튜버 '유미'(2월), '북한 노동자단체 연대사'(12월) 등 북한 관련 온라인 콘텐츠에 연달아 '접속차단'을 의결했다. 민원을 제기한 주체는 국정원 혹은 경찰청이다.
[관련 기사 : 댓글 하나 없는 김정은 찬양뮤비 접속차단…오히려 홍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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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일 기준 여전히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방심위 '접속차단' 이후 관심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조회수가 34만 회에 달하는 한 '친근한 어버이' 영상엔 “누가 이런 거에 세뇌된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해당 댓글을 제외하면 대부분 외국인 댓글이었다.
북한 관련 영상 및 채널들의 '접속차단' 소식을 알리는 언론 보도에 영상 내용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는 역설적 상황도 발생했다. 국정원의 민원 제기와 방심위 '접속차단'이 결과적으로는 의결 취지와 상반된 결과를 이끈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30일 기사에서 “방심위가 북측의 체제 찬양 동영상을 잇따라 삭제했지만, 인터넷에선 해당 동영상이 '밈(meme)' 형태로 재생산되는 등 역효과를 낳고 있다”며 “유튜브 등에 삭제되지 않은 동영상에 좌표찍기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다.
방심위 '접속차단'은 유튜브 등 플랫폼에 URL을 특정해 요청하는 방식이다. 창작자가 URL을 바꿔 올리면 영상 시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플랫폼에서 차단된다 해도 다양한 플랫폼에 있는 관련 모든 영상을 삭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선 여전히 시청이 가능해 VPN(가상사설망) 등 접속 우회를 통하면 접속차단이 의미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심위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누리꾼들의 2차 창작이 활발하다는 점도 심의를 어렵게 한다.
영상은 아니지만 지난해 차단된 '북한 노동자단체 연대사'도 현재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여전히 볼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신청인(민주노총)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효력정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관련 기사 : 국정원 요청대로 인터넷 게시물 삭제하는 방심위의 위험성]
[관련 기사 : '북한 연대사 삭제' 국정원 요청에 의결 번복한 방심위, 법원이 제동 걸었다]
<8.15 전국노동자대회 연대사-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라는 제목으로 민주노총 문서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북한 노동자단체 연대사'는 3일 기준 2만4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민주노총 성명은 조회수가 수백회에 불과했다.
방심위 '접속차단'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단법인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지난달 27일 열린 '방심위 감사원 감사결과 규탄' 기자회견에서 “통신심의 자체가 다소 '기괴하다'고 평가되는 제도”라며 “불특정 다수가 수시로 표현물을 유통하고 실시간으로 유통 상황도 바뀐다. 무한한 공간에 무한한 양의 정보를 심의하도록 하는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근거도 모호하다. 손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은 위헌 소지가 다분해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을 축소 해석하고 있다”며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주는 명백한 위협이 있어야 하는데 (방심위가 차단한) 북한 관광지 사이트나 북한 연대사 등의 표현물이 그런 것에 해당된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는 국가보안법은 20년 넘게 유엔인권위원회 국가별정례인권검토(UPR)에서 수도 없이 폐지를 권고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방심위가 '받아쓰기 결정'을 한다고 하면 방심위의 자율적 판단 능력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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