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과 일부일처제 [유레카]

황보연 기자 2024. 6. 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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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시대의 광무제는 어느 날 송홍이라는 신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꾸는 것이 인지상정이냐"고.

정식으로 예를 갖추어 맞은 아내를 가리키는 적처(본처)를 동시에 두명 둘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근대로 와서 축첩제도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재판에서 이혼 사유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23년 법률혼주의가 시행된 지 한참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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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화백

중국 후한시대의 광무제는 어느 날 송홍이라는 신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꾸는 것이 인지상정이냐”고. 그러자 송홍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된다“고 답했다. ‘조강지처’(糟糠之妻)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존재했던 일부다처제는 조선시대에 와서 차츰 사라졌다. 중혼 금지가 법령으로 확립된 것은 조선 태종 때인 1413년의 일이다. 정식으로 예를 갖추어 맞은 아내를 가리키는 적처(본처)를 동시에 두명 둘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적처가 아닌 서처는 첩의 신분으로 구분했다. 첩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적자와 다르게 서얼(양인 첩은 서자, 천민 첩은 얼자)이라고 부르며 엄격한 차별을 뒀다.

일부일처제에서도 남성들이 첩을 두는 것에는 매우 관대했다. 양반가에서 첩 자손의 비중이 25~30%에 달했다. 근대로 와서 축첩제도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재판에서 이혼 사유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23년 법률혼주의가 시행된 지 한참 뒤의 일이다. 1953년 형법 제정 이전까지, 남성의 간통은 처벌하지도 않았다. 기혼 여성의 간통과 그 상대 남성만 처벌 대상이었다.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간통죄가 폐지됐지만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민법상 책임은 유지되고 있다. 민법 810조는 중혼을 금지하고 있으며, 840조는 이혼 청구 사유 중 하나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명시하고 있다. 최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판결에서 20억원이라는 역대급 위자료 액수가 나왔다. 이혼 위자료는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는 성격을 지닌다. 통상 20년 정도 혼인 생활을 유지한 부부의 경우, 3천만원 안팎의 위자료가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나온 위자료 1억원이 너무 적다고 봤다. “(최 회장이) 우리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일부일처제도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다. 2015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혼외자가 있어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점과 김 이사장이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것처럼 관계를 공식화한 점 등이 고의적 유책 행위로 지목됐다. 노 관장이 유방암 판정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최 회장이 부정행위를 하고 혼외자까지 낳았고 이후 경제적 지원을 중단한 행위 등도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준 것으로 인정됐다. 게다가 최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대신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을 노 관장에게 돌리려 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한다는 헌법 36조가 소환된 이유다. 유책 배우자가 정신적 고통을 준 데 대한 일종의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다른 이혼 소송에 미칠 파장도 주목된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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