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업주부’ 손에 놓인 1만 명의 생계
“주식회사의 의미는 한 사람만의 회사가 아니란 뜻입니다. 여러 주주의 이익을 위해, 사업적인 비전을 위해 함께 가는 조직이라는 의미입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지난달 31일 법원의 가처분 판결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던 많은 사람이 그저 흘려들었을 만큼 원론적인 말이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는 민 대표의 말과는 사뭇 다른 일이 벌어졌다.
민 대표 기자회견보다 두 시간 정도 앞서 서울 강서구 마곡 아워홈 본사 로비는 임시주주총회 결과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에 대한 재신임안이 부결된 상황에서 이날 주총 결의에 따라 경영진이 교체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전 11시 시작된 아워홈 주총은 한 시간을 넘겨서야 끝났다. 결과는 현 경영진의 퇴임이었다.
이날 주총의 ‘키’는 아워홈의 창업자 고(故) 구자학 회장의 장녀인 구미현씨가 쥐고 있었다. 아워홈이 구미현씨를 포섭하기 위해 준비한 자사주 매입안은 부결됐다. 반면 구미현씨와 함께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이 요구한 이사 선임안 일부는 가결됐다.
현장에서 주총 결과를 기다리던 기자 40여 명 가운데 일부는 ‘구지은이 물러난다’며 당황스러워했다.
아워홈이 구 부회장 체제에서 최대 실적을 경신해 오고 있던 사실도 당황스러움의 중요한 이유겠지만, 주총 결과에 따라 아워홈의 이사진에는 구미현씨와 구미현씨의 남편 이영렬 전 한양대 의대 교수, 구본성 전 부회장의 장남 구재모 이사만이 남게 된 탓이었다.
구미현씨 부부는 회사 경영에는 특별한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생인 구재모 이사는 약 3년 반 정도 아워홈에서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았다. 구 이사는 이사 재직 중 일부 기간을 아워홈에서 사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 모두 회사 경영에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구미현씨는 주총에 앞서 본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구미현씨는 전업주부로 그동안 아워홈의 배당금으로 생활하며 경영에도 큰 관심이 없던 인물로 전해졌다. 결국 지분과 경영권을 함께 매각하기 위해 현 경영진을 몰아내고 이사회를 장악한 셈이다.
이날 주총 결과에 대해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도 ‘정말 구미현씨가 대표를 맡게 되는 것이냐’는 말이 나왔다. 한 아워홈 직원은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아워홈 지분은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38.56%)과 세 딸(구미현·구명진·구지은 각 20%가량)이 나눠 갖고 있다. 이번 주총의 결과는 장남·장녀 연합의 결정이다. 주주로서 고유한 권리 행사로 봐야 한다.
하지만 아워홈에는 직원들과 그 가족, 협력 업체를 합하면 수만 명의 생계가 걸려있다. 그들의 생계가 모두 걸려있는 회사 경영이라는 문제를 경험이 없는 전업주부나 의사가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아워홈은 연 매출 2조원, 임직원이 1만여 명에 달하는 주식회사다. 그런 조직이 과반 주식을 보유한 이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비전도 없이 끌려가는 것이, 수만 명의 생계가 전업주부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과연 정당한 주주 권리 행사의 결과라서 괜찮을까.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아워홈의 매각 작업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수년간 대주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남매의 난’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어 이 문제가 일정 부분 정리돼 잠잠해지지 않으면 매수인 측에서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워홈 노조 역시 여러 차례 구본성·구미현 주주가 지분을 매각하고 대주주 자격을 내려놓으라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어도어 민 대표의 말처럼 여러 주주의 이익을 위하고, 모든 관계자를 포함해 사업적인 비전을 갖추고 있을 때 온전하게 기업의 가치가 평가될 수 있다.
아워홈은 올해 ‘뉴(NEW) 아워홈’을 목표로 해외 사업 확장, 인공지능(AI) 기술 적용 등 다양한 목표를 세웠다. 아워홈이 대주주 일가의 지분 매각이라는 진통을 넘어 목표였던 뉴아워홈 달성에 만전을 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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