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증원, 1990년대 실패 되풀이 않으려면…
1994년 5월 필자는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로 선임됐다. 연세대 의대 교무부학장 임기가 끝나기 3개월 전이었고, 이사 중 제일 젊었다. 예방의학 전공 학자는 보건복지부와 가깝다는 느낌이 있어 의료계에서 꺼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필자가 처음 상임이사가 됐다. 이후에는 여럿이 상임이사가 되었다.
1990년대 의과대학이 이전 32개에서 41개로 대폭 증가했는데, 신설 의대의 교육 수준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가천대 의대, 강원대 의대, 대구가톨릭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을지대 의대, 제주대 의대, 차의대, 서남대 의대(2018년 폐교), 건양대 의대의 9곳이 새로 생긴 것. 대부분 정원이 40~50명인 미니 의대였고 일부는 교수도, 시설도 부족했다.
1995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의대 증원을 반대했는데, 학술이사로서 추진해야 할 역할이 의료의 질 향상이라고 판단해 유성희 의협회장과 꾸준하게 이 문제에 대해 대화했다. 필자는 의과대학과 병원의 질을 평가하자는 원고를 집필하였는데, 당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카버스토리로 실렸다.
1996년 4월 의협, 병원협회, 의학회, 의학교육학회, 의사국가시험원, 의과대학장협의회 등 관련 단체를 모아 '의학교육협의회'를 설립했고, 학술이사인 필자가 간사위원이 됐다.
협의회에서 의과대학 인정평가사업을 추진했는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의견이 상당했지만 의료계에서 앞장서서 의과대학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여 적극 추진했다.
협의회는 꾸준하게 의대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제안했다. 위원들이 1999년에 서남대를 방문하여 의대를 둘러보았는데, 도저히 의과대학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해부학실습실에 인체모형만 있을 뿐이었고, 교수 자격이 없는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의학교육협의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3년 11월 의학교육평가원이 창립됐다. 의학교육평가원은 대학 운영체계,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을 평가하고, 교수의 자격을 검토하면서 의과대학 교육 시설, 장비를 검토했다.
1995년 12월에 연세대 행정학과 안병영 교수가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1996년 초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의과대학 신설 반대 의견과 관련, 솔직하게 의대 교육 수준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전문과별 주임교수는 전문의 수련과정을 마친 뒤 최소한 5년을 교수직으로 근무한 경력자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교부로부터 연구지원을 받아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 학장을 지낸 이순형, 김일순 교수와 함께 "의대 설립의 합리적 결정을 위한 준칙주의 도입 방안(문교부·1997)"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선 일부 의대의 교육 여건이 열악해서 수도권으로 원정 실습을 받는 것을 비롯해서 교수진, 실습상태 등의 현황이 담겼다. 또 의대가 설립 운영될 때 필요한 기본 시설과 실습 장비의 기준과 교수 임명의 기본 수준을 제시했다. 기초의학은 박사, 임상의학은 전문의가 된 뒤 최소한 5년을 교수직으로 근무한 경력자를 학과 주임교수로 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교육평가원은 설립 이후 꾸준히 의과대학들을 평가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의대 정원 1509명 증원 확정을 강조하고 있는데, 의학교육평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받은 의대에 한해 증원을 승인하는 게 순리라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일 것이다.
의대생 증원을 기획할 때엔 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를 선행하고, 의과대학 교수 양성방안을 확보하는 게 마땅하다. 특히 의대생 증원 시 교수 확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의대 증원 관련하여, 교수 확보를 위한 계획에 대해 정부가 어떤 공론의 장을 만들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졸속 의대 증가의 피해를 목격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현장에서 뛰었던 학자로서 지금 비정상적 업무 추진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승흠 교수 (yoush@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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