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톤 유산균 폐기’ 미스터리, 4년차 검사가 밝힌 전모

방극렬 기자 2024. 6. 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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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청주지검 제천지청 전경./뉴스1

충북 제천의 한 유산균 공장에서 3억 6000만원어치 원료 8.3톤(t)이 폐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원료를 내다 버린 공장장만 잡고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 단순한 재물손괴죄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을 4년 차 검사가 꼼꼼히 재수사해 수억원의 뒷돈이 오간 배임 범죄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작년 초 건강기능식품업체 회사의 제천 공장에서 벌어졌다. 작년 1월부터 3월 사이 회사가 사들인 유산균 원료 8.3톤이 갑자기 폐기된 것이다. 상부의 승인 없이 원료를 폐기한 것은 공장장 A씨였다. 회사는 A씨를 고소했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씨에게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해 올해 초 검찰에 송치했다. 원료를 폐기한 이유, 범행 경위 등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건된 피의자는 A씨 한 명뿐이었다.

사건을 배당받은 청주지검 제천지청(지청장 최수봉) 유재덕 검사(변호사시험 9회)는 자료와 기록을 넘기다 의문스러운 부분을 발견했다. 당시 공장에 원료를 납품하던 10여 개 업체 가운데 A씨가 유독 B사에서 매입한 것만 골라 폐기한 것이다. 유 검사는 B사 대표를 불러 집중 추궁했다. 그 결과 B사 대표가 지인이었던 공장 본사 직원 C씨를 통해 A씨를 소개받고, 원료를 납품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유 검사는 A씨 등에 대한 직접 수사에 나섰다. 계좌 추적과 자택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증거 추출)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장 A씨 등이 B사의 로비를 받고 원료를 과다 주문한 뒤, 범행이 발각될 위기에 놓이자 원료를 무단으로 폐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범행 후 증거 인멸을 논의하는 녹취 파일도 확보했다. 공장장 A씨와 직원 C씨는 B사의 원료를 사들이는 대가로 외제차 등 고급 차량을 2대씩 제공받았다고 한다. 수천만원의 금품도 각각 별도로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B사로부터 총 3억원이 넘는 뒷돈을 받았다.

유 검사의 적극적인 수사 결과 검찰은 지난달 17일 A씨를 구속 기소하고, B사 대표와 C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출신 한 법조인은 “일선 평검사들은 매달 100여 건씩 새 사건을 배당받고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사 여력이 많지 않다”며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발로 뛰며 재수사해 숨겨진 범죄를 적발한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유 검사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함께한 동료 검사들과 수사관들 덕분에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제9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유 검사는 검찰에서 4년째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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