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걸리던 항암제 주사, 5분으로 단축…세계암학회 달군 항암 신약들
폐암 치료제 피하주사로 개발, 5분 안에 주사
유한양행 항암제와 병용, 생존율 65%까지 높여
화이자는 희소 폐암 치료제로 10억달러 매출 기대
항암제 주사 시간이 5시간에서 5분으로 단축되고, 가망이 없던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이 5년 이상 늘었다.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미국 시카고 매코믹플레이스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4)는 이처럼 획기적인 항암 신약 연구 결과를 대거 공개했다.
ASCO는 미국 암학회(AACR), 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세계 3대 암학회로 꼽힌다. 특히 전 세계 제약사들이 항암 신약의 마지막 임상 3상 시험 연구를 공개하는 자리로 유명하다.
이번 학회에서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항암제를 혈관에 투여하는 정맥주사(IV) 대신 근육에 바로 찔러 넣는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꿔 투약 시간을 5시간에서 5분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 주사제를 유한양행의 항암제와 같은 쓴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경쟁자인 화이자는 폐암의 4%를 차지하는 희소 폐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5년 이상으로 늘린 항암제를 공개했다.
◇정맥주사보다 약효 좋은 피하주사 항암제
이날 유한양행의 ‘렉라자(레이저티닙)’와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를 병용한 임상 후속 연구가 이목을 끌었다. 이 연구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에 변이가 생긴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두 약을 쓰는 병용 요법과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단독 요법의 효능을 직접 비교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지난해 10월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전체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1차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결과는 그중 뇌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말기 폐암 환자에게 병용 투약한 결과였다. 임상시험 대상자 1074명 가운데 41%가 뇌에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임상시험 결과 병용 요법의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18.3개월로 타그리소 단독 요법(13.0개월)과 비교해 5개월 넘게 늘었다. 간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환자의 무진행 생존기간은 18.2개월로 타그리소의 11개월과 비교해 7개월 넘게 늘었다.
올해 가장 주목 받은 결과는 정맥주사(IV) 제형인 리브리반트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변경한 임상시험이었다. 먹는 약인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정맥주사를 함께 쓰면 생존율이 51%였는데,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피하주사를 쓰면 65%까지 올라갔다. 항암제 투약 시간은 5시간에서 5분으로 줄었다.
부작용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피하주사 제형에서 부작용이 나타난 비율은 13%로 정맥주사 제형(66%)의 5분의 1에 그쳤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최고 발표(Best of ASCO)’로 선정됐다. 앞으로 항암제도 병원에서 오랜 기간 맞는 정맥주사가 아니라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직접 주사하는 방식의 피하주사가 대세가 될 것이란 말이 나왔다. 존슨앤드존슨은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유럽의약국(EMA)에 1차 치료제로 허가를 신청했고, 미국에도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뇌 장벽 뚫어 폐암 뇌전이 94% 막아
화이자는 이번에 희소 비소세포폐암 항암제인 ‘로비큐아(롤라티닙)’의 5년 생존 결과를 공개했다.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에 따라 소세포폐암과 비(非)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70~80%를 차지한다. 로비큐아는 그중 ‘역형성 림프종 인산화효소(ALK)’ 유전자에서 변이가 생긴 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에 쓰이는 약이다.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4% 정도를 차지하는 희소암으로, 미국에서 1만 4000명 정도가 걸린다.
ALK 변이를 표적하는 항암제는 1세대 ‘잴코리(성분명 크리조티닙)’와 2세대 ‘알레센자(성분명 알렉타닙)’, 3세대 로비큐아로 발전했다. 로비큐아는 앞서 나타난 내성 유발 변이를 억제하고, 혈뇌장벽(BBB)을 통과해 뇌까지 전이된 암세포도 공격하도록 개발됐다.
화이자는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296명을 대상으로 로비큐아와 1세대 잴코리의 효과를 비교하는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로비큐아 투약 환자의 뇌 전이는 잴코리와 비교해 94% 적었다. 로비큐아를 복용한 환자는 잴코리와 비교해 암이 진행되거나 사망할 위험도 5년 동안 81% 줄었다.
로비큐아를 복용한 환자는 암이 진행되지 않은 채 5년이 경과한 비율이 60%에 달했다. 로비큐아를 투여한 환자 10명 중 6명은 5년 이상 암이 진행되지 않은 채 살아있다는 뜻이다. 화이자는 이번 임상 결과에 따라 로비큐아가 연 10억달러(약 1조 3700억원)의 매출을 내는 블록버스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로비큐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5억 3900만달러(약 7400억 원)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21년 로비큐어를 최종 승인했다.
◇FDA, 중국서 임상시험한 항암제 승인 거절
이번 학회에서 미국 MSD의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를 압도한 중국산 항암제도 눈길 끌었다. 미국 신약 개발 기업인 서밋 테라퓨틱스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중국에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작사 항암제가 키트루다보다 약효가 우월함을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서밋은 중국 신약 개발 기업인 아케소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해 중국에서 신약 개발을 모두 마쳤다. 이날 미국 증시에서 서밋의 주가는 3달러에서 11달러까지 272% 급등했고, MSD의 주가는 소폭 빠졌다. 그런데 이튿날 미국 FDA의 종양학 책임자인 리차드 파즈두르 박사가 “다지역 임상을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중국이 아닌 신뢰할 만한 국가에서도 임상시험을 해야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파즈두르 박사는 미국 의학 전문지 STAT에서 실시한 행사에서 “어떤 국가에 맞서자는 게 아니다”면서도 “(임상 대상자가) 90%가 한 국가에서 오고 나머지 10%는 지도에서 확인할 수 없는 국가에서 나온 가짜 다지역 시험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즈두르의 말은 중국에서 실시한 항암제 임상 데이터는 FDA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서밋의 주가는 11달러에서 8달러로 27%쯤 빠졌다. 서밋은 서구권에서도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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