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편향 외교는 영원히 아이로 살겠단 '애늙은이 외교'일 뿐"[인터뷰]

조태성 2024. 6. 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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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림자' 펴낸 계승범 서강대 교수
미중갈등 국면에서 부각된 명청교체기 연구
"'병자호란'의 정확한 표현은 '삼전도 항복'
이 충격이 조선을 폐쇄적 국가로 몰아넣어
오직 미국만 추종하는 한국이 되돌아볼 지점"
계승범 서강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 위치한 교수 연구실에서 명청 교체기 조선시대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최소한의 제 목소리도 못 내는 미국 위주의 편향 외교는 스스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애늙은이로 살겠다는 얘기입니다. 조선도 그랬죠. 성인이 된 뒤엔 효도를 하더라도 성인답게 자신의 고민과 선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지금 한국 외교 상황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최근 만난 계승범 사학과 교수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앞에는 지난달 30일 인쇄소에서 갓 나온 '아버지의 그림자'(사계절 발행)가 놓여 있었다.

21세기 중국의 굴기와 함께 미중 경쟁 관계가 본격화되면서 학계는 과거 기억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하버드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쓴 '예정된 전쟁'(세종서적 발행)이 서구 역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키워드를 뽑아냈다면, 한국의 키워드는 '명청 교체기'였다. 이는 중립외교를 했다는 광해군,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그리고 북벌론에 대한 평가 문제로 이어진다.

미중갈등에 대한 은유, '명청 교체기'

쉬운 비유는 아니다. 결과를 다 아는 지금에야 명청 교체기라 하면 '청이 명을 정복했다'라고 간단히 끝내지만, 실제론 거의 60여 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이었다. 의외로 많은 반란과 잦은 패배 때문에 청이 쩔쩔 매기도 했다. 당대 조선 지식인들이 '명이 이렇게 무너질 리 없으니 좀 더 지켜보자'라고 생각한 게 무리가 아니었다. 거기 비하자면 훨씬 더 강력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미국이 결국 중국을 물리칠 수도 있다. 설사 중국이 이긴다 해도 그 과정은 훨씬 더 복잡다단할 것이다.

-병자호란 연구서는 오랜만이다.

"임진왜란에 비해 확실히 연구가 적다. 오래 싸웠고, 결국 이긴 전쟁이라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병자호란은 석 달 정도에 불과한 데다 인조가 삼전도에 나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까지 하는 치욕적 패배를 했다. 연구가 적을 수밖에 없다."

홍타이지가 기획, 연출한 전쟁 병자호란은 조선을 내적 붕괴 상태로 몰아 넣었다. 유교적 세계관 아래서 이제 조선은 있을 수 없는 국가가 됐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책 부제가 '삼전도 항복과 조선의 국가정체성 문제'다. 병자호란이 아니라 삼전도 항복이다.

"그냥 '병자년에 오랑캐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하기엔 파급력이 너무 컸다. 광해군을 몰아내면서 인조는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다. 명과는 군부신자(君父臣子), 군신관계에 더해 부자관계라고 했다. 홍타이지가 조선을 침공할 때 혼자 온 게 아니다. 자신이 정복한 몽골과 중앙아시아 일대 부족장 10여 명을 함께 데리고 왔다. 인조는 그들 앞에서 홍타이지에게 절했다. 이게 무슨 의미였겠는가. 인조는 '아버지' 명을 죽이려는 '원수' 청에게 충성 맹세한 사람이 됐다. 유교적 세계관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과 지나친 밀착, 그게 조선의 발목을 잡았다

이 충격은 '병자호란'이란 말로 가릴 수 없었다. 이후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을, 러시아와 싸운 나선정벌에 대한 기억을 조작한다. 심지어 구한말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한 사람들조차 '홍타이지에 대한 복수' 운운했다. 계 교수의 문제 의식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았다 한들, 다 망해버린 명을 왜 그리 추종했을까. 부자관계라서다.

-'군부신자'라는 표현이 기록에 많이 등장하는가.

"많다. 기존 연구가 수사학적 표현 정도로 봤다면, 나는 그게 핵심이라 보는 쪽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결말이 뭐였는 줄 아는가. 고려가 거란에 사신을 보내서 충성을 맹세하는 거였다. 그렇게 싸워 이겨놓고 뭐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원래 동아시아 외교는 조공책봉, 군신관계다. 굴욕적인 것 같지만 왕이 왕 노릇 잘 못하면 반정, 혁명도 하는 것처럼 탄력적인 관계다. 하지만 명과는 부자관계가 됐다."

계승범 서강대학교 교수가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 위치한 교수 연구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5.30 신용주 인턴기자

-조선은 왜 그리 명이 좋았을까.

"실제 덕을 보긴 했다. 조선 중종 때 사신을 보냈는데, 명 황제가 40여 개국에서 온 사신 중 조선 사신만 특별히 찾아본 일이 있을 정도였다. 말하자면 '우리 세계에서 넘버 2는 조선이다'라고 선언한 거다. 지금으로 치자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을 불러다가 공개적으로 '미국 최고의 친구는 이 사람이다'라고 선언한 거다. 거기에다 임진왜란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에 너무 빠져들었다."

기득권층의 자기모순이 외교적 어려움을 낳는다

-책에는 송시열 얘기가 나온다.

"효종과 만난 송시열은 삼전도 항복을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치부해버리면 조선 자체가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양반 기득권과 왕조 존속을 위해서는 명에 더 매달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로 인해 조선은 세계로 향하는 마음의 창을 닫아버렸다. 겉으로는 청을 지극정성 모시고, 또 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승에 이득도 누리지만, 속으론 '우리 빼고 다 오랑캐니까 이제 중화는 우리다'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자기모순이 엄청난 폐쇄성으로 이어진 거다."

계승범 교수가 낸 아버지의 그림자.

-그걸 '조선중화(朝鮮中華)' '소중화(小中華)라 부르며 자율, 자주 쪽으로 해석하고들 했다.

"한때 주장이고 지금도 마니아들이 있지만 지금은 학계에선 소수다. 개인적으론 한족중화(漢族中華)란 표현을 쓴다. '현실의 명'이 사라지자 대신 '옛 역사적 관념 속의 한'을 추종한 거다."

-이 정도만 해도 오늘날 한국을 두고 음미해 볼 만한 비유가 많다.

"대한민국에 미국은 고마운 나라다. 덕분에 공산화도 막았고, 경제도 발전했고, 민주주의도 이만큼 왔다. 앞으로의 동맹 또한 중요할 거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스스로 판단해서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국 외교의 어려움은 무엇 때문인가, 고민해 볼 문제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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