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바짝 쫄게 만든 대북 확성기 위력 어떻길래…“귀 막을 수도 없고, 귀순자까지”
“재개 땐 접경지역 불안정성 증폭…협상 카드로 삼아야” 주장도
대통령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2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도발에 대응해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하겠다’며 단호히 밝히면서 그 대표적인 조치로 거론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위력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가 전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이 당일 밤 삐라(전단) 살포 금지 조건부로 ‘오물풍선 살포 잠정 중단’을 발표하며 한발 물러서며 치고 빠지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대북 확성기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확성기 방송은 전력망이 갖춰진 접경지역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시행할 수 있는 심리전 수단이다. 지상 고정 확성기 시설뿐 아니라 차량에 탑재된 이동식 확성기도 있어 접경지 이북의 목표지역을 골라 심리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확성기 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한 북한 병사 출신 귀순자가 생기기도 했다.
남북군사회담 경력이 풍부한 한 예비역 장성은 3일 "북한군 입장에서 보면 확성기는 목구멍에 박힌 가시와 같다"고 말했다. 남측 확성기 방송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귀를 막고 안 들을 수도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군은 확성기 철거를 군사회담 때마다 줄기차게 요구했다.
군은 이미 충분한 ‘확성기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 태영호 의원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은 160억원을 들여 최전방 일반전초( GOP)에 고정식(고정 확성기) 24세트, 이동식(기동 확성기)은 16대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가청범위는 기동 확성기 8~10㎞, 고정 확성기 12~15㎞로, 군사분계선(MDL)에서 개성공단까지 방송이 닿을 차량에 탑재된 이동식 확성기는 고정식보다 10km 이상 더 먼 거리까지 음향을 보낼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이는 개성지역을 비롯해 최전방에 배치된 북한군 부대 상당수가 확성기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성능이다.
밤이면 확성기 출력은 개성지역을 넘기도 한다. 고요한 밤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와 뉴스, 날씨와 같은 정보는 북한군 MZ(밀레니얼+Z)세대 병사들을 심리적으로 동요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이 예비역 장성은 전했다.
입대자 중 그나마 사상 무장이 됐다는 판단 아래 최전방에 배치된 병사들이 흔들린다면 북한군 지휘부 입장에서는 중대한 문제다. 북한군이 군사회담 때마다 확성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예비역 장성은 "남북군사회담 때 북한군 대표는 ‘전선 사령관과 전사들은 당장 때려 부수자고 한다. 저들이 들고일어나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그들을 억누르고 있지만, 마냥 그러지 못한다’는 식으로 철거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에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례가 몇 있다. 2004년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 사고 당시 남측은 확성기 방송으로 이 뉴스를 북쪽으로 전파했다. 이후 최전방에 근무한 북한군 병사들이 집에 안부 편지를 쓰면서 이 사고 소식을 편지에 담았고, 나중에 부대 검열에서 걸려 문제가 됐다고 한다.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북한군은 최전방 부대에 준전시 상황 근무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성사된 남북 고위급접촉을 통해 긴장 완화 조치가 합의되자, 우리 군은 확성기 방송을 통해 합의사항을 전달하면서 "이제, 준전시 상태도 해제된다"라고 알려 줬다고 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 콘텐츠 가운데 날씨 예보는 즉각 효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인민군 여러분, 내일 빨래하지 마세요", "오늘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래 걷으세요"라고 하면 실제로 북한군이 이런 예보에 맞춰 행동했다는 것.
확성기 방송이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주효함에도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확성기 방송 재개로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접경지 주민들의 불안감뿐 아니라 한반도 불안정성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회담 대표 경험이 있는 다른 예비역 장성은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쪽으로 인구 유입이 많은 상황"이라며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소음 및 개발 제한 피해 등도 우려가 되는데 이런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심리전 차원에서 매우 유용한 확성기 방송은 협상 카드로 삼아야 한다"며 "칼이 칼집에 들어 있을 때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듯이 유용한 협상 카드를 마구잡이 식으로 내던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 군은 1963년 5월 1일, 서해 쪽 MDL 일대에서 처음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했다. 1962년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 데 대한 대응 조치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된 바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천안함 피격 도발(2010년)과 지뢰 도발(2015년),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등의 대응 조치로 일시적으로 재개되기도 했다.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지역 10여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40여대가 있었지만,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확성기는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고 이동식 장비인 차량도 인근 부대에 주차돼 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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