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대학’ 더블 캐스트 송승환·서현철 “웃음으로 인간성 회복” [인터뷰]

2024. 6. 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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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웃음의 대학’ 9년 만의 재공연
검열관으로 캐스팅 된 두 중년 배우
“웃을 일 없는 시대에 웃음의 의미 전해”
연극 ‘웃음의 대학’ 송승환 [연극열전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40년, 비극을 끌어안은 시대. 나라에선 ‘전시상황이라는 이토록 ‘엄혹한 시대’에 어떻게 웃을 수 있냐’며 무대 위 대본을 검열한다. 글쟁이들의 솟구치는 열정을 뿌리째 도려내려는 얼토당토 않은 제안도 한다.

“대본에 천황 폐하 만세를 넣도록 하게.” (검열관)

이에 재기발랄한 코미디극 작가는 억지스러운 대사를 풍자로 승화한다. 세 단어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세 마리의 말 이름이 된다.

“천황, 폐하, 만세야~ 어디 가니?” (작가)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연극 ‘웃음의 대학’(6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이 9년 만에 돌아왔다. 대본을 검열한 7일 동안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무대의 두 주인공은 배우 송승환(67)과 서현철(59). 두 사람은 ‘희극 말살’을 목표로 삼은 검열관 역할을 맡았다.

연극에 한창인 두 배우는 “이 작품은 대본 자체가 가진 웃음 코드가 확실한 작품”(서현철)이라며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 웃음의 의미를 상기시켜주는 작품”(송승환)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세종문화회관과 대학로에서 송승환, 서현철을 각각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연극 ‘웃음의 대학’ 서현철 [연극열전 제공]
인간성을 회복하는 연극…“귀로 외는 대사, 압도적 분량 고충”

연극에선 두 세대가 정면으로 부딪힌다. 혹독한 검열 안에서도 ‘웃음을 지키려는’ 젊은 작가와 ‘권력의 가장 끝자락’에서 최고 권력의 결정을 수행하는 검열관. 두 사람 모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직업인이다.

송승환은 “작품의 주제가 2030 세대가 보는 것과 6070 세대가 보는 것이 다르다”며 “젊은 세대는 작가의 입장에서 권력에 맞서는 어려움을 보고, 저희 세대는 검열관의 시선에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웃음의 대학’은 웃음과 자유를 거세당한 특정 시대, 진중한 상황에서 웃음을 흩뿌린다. 9년 만에 다시 이 작품에 출연하는 서현철은 “무대에 서며 다시 한 번 웃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며 “9년 전엔 웃음을 검열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코미디적인 대사로 들렸지만 지금은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웃음이 아니라도 일상이나 사회엔 우리가 지어놓은 도덕적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때가 있잖아요. 때로는 사회 전체에서, 때로는 스스로를 검열하기에 다른 시대, 특정 환경의 이야기를 다뤄도 절실함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요.”

작품의 재미는 검열관의 변화에서 나온다. 송승환은 “공권력을 휘두르는 검열관이 인간 본성을 찾아가는 주제를 안은 작품”이라며 “제도권 안에 있던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이 재미를 만드는 지점이다. 연극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둘이 합쳐 연기 경력 87년(송승환 1965년 아역 데뷔, 서현철 1996년 데뷔)의 베테랑 두 배우도 검열관은 만만치 않은 역할이었다.

서현철에겐 ‘압도적인 대사량’이 고충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떨리는 원인 중 하나는 대사를 틀릴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라며 “대사량이 워낙 많으니 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무슨 짓을 해도 입에서 술술 나오도록 하지 않으면 연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 ‘웃음의 대학’ 송승환 [연극열전 제공]

대사 암기는 송승환에게도 어려운 문제다. 그는 “제 나이 또래의 배우 중엔 대사를 못 외워 연기를 못하겠다는 배우도 있다”며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고, 외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했다.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2019년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이후 그의 시야는 30㎝ 정도로 좁아졌다. 옆자리 사람들은 형체 정도로만 구분할 수 있다. 스스로는 “짙은 안개가 가득 찬 날씨”같다고 했다.

그는 60년 가까이 눈으로 읽던 대본을 귀로 듣기 시작했다. 수십 번 귀로 들은 뒤 대본을 왼다. 송승환은 “연기는 표정을 봐야하는데 시야가 흐려져 어려움이 있다”며 “때론 연습을 중단하고 상대 배우들의 연기하는 표정을 기억해둔 뒤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대 위 각종 대도구, 소도구의 위치도 머릿 속에 그림으로 저장한 뒤 연기한다.

송승환의 연습 과정을 지켜본 서현철은 “송승환 선배의 연기를 보면 눈 상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송승환은) 펜 하나를 잡으려 해도 위치를 기억해야 하기에 선배는 지팡이를 짚고 무대 곳곳을 몸으로 확인한 뒤, 다섯 발자국 움직여 잡는다고 입력한다. 배우로도 한 사람으로도 모든 면에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배우, 프로듀서, 예술감독 등 다방면에서 여전히 폭넒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송승환에게 가장 ‘재밌는 일’은 연기다. 그는 “뭐든지 막이 오르기 전까지가 가장 재밌다. 처음 사람들을 만나 이 작품을 해보자 할 때 너무 신이 난다”며 “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하면 고통”이라며 웃엇다.

“1시간 30여분 동안 퇴장하지 않고 무대에서 대기하며 긴장감을 가지고 가야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캐릭터 몰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서 배우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돼요.” (송승환)

연극 ‘웃음의 대학’ 송승환 [연극열전 제공]
“우리 귀엽지 않나요?”…‘희극지왕’ 서현철 vs ‘엄근진’ 송승환

배우 서현철의 별명은 대학로 ‘희극지왕’, 반면 송승환은 대체로 진중하고 깊이 있는 인물을 그려왔다. 공연계에선 희대의 히트작인 ‘난타’를 만든 냉철한 프로듀서로 정평이 나있다. 이들을 따라오는 수사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검열관’이 예상되나, 두 사람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는 “대본을 바탕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서현철은 배우가 되기 전 평범한 직장이었다. 국내 대표 구두 회사에 다니던 그는 사회생활 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 서른 한 살에 무대에 올랐다.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간간이 해왔지만, 차마 용기 내지 못하다 국립극장의 문화학교에서 일반인 연기 수업을 받으며 잠들었던 꿈에 불을 붙였다. 무대와 매체를 넘나드는 서현철은 코믹 연기의 대가다. 그는 “사실 엄청 내성적인 성격이고 연기를 하게 되면 진지한 것을 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코미디 캐릭터가 온다”며 웃었다.

“정극과 코미디가 다르진 않지만, 사실 코미디는 어려워요. 에너지를 쏟고 감정을 섬세하게 살리기 보다는 배우들이 더 편안해져야 코미디가 살아요. 여기에 0.5초의 타이밍을 맞춰 던지는 대사나 표정이 코믹 연기의 핵심이죠. 관건은 타이밍인데, 관객의 반응도 시시각각 달라 내가 실수했나 싶을 때도 있어요.” (서현철)

연극 ‘웃음의 대학’ 서현철 [연극열전 제공]

생애 첫 ‘더블 캐스트’로 서현철과 한 무대에 선 송승환은 그에게 ‘코미디 연기’를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송승환은 “대사를 변형해 본질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보여주는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다”며 “연습 과정이 후배에게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물론 송승환도 코미디 연기가 처음은 아니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에서 양희경의 남편 역할, 연극 ‘아트’(2006)에서도 코믹 연기를 했다. 그는 “이 작품(‘웃음의 대학’)은 굳이 코믹한 연기를 하겠다고 노력하지 않아도 천진난만한 본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코믹한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서현철도 “대본에서 상황마다 웃음을 주기에 점잖게 해도 웃음은 충분히 나오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귀여운 검열관의 모습이 나온다”고 둘은 입을 모은다.

무대 초반 ‘깐깐하고 근엄했던’ 검열관이 쓰레기통에 처박은 꾸깃꾸깃한 대본을 다시 꺼내 훔쳐보는 장면부터 웃음은 시작되고 관객의 마음엔 온기가 스민다. 대본은 코미디 요소가 있지만 과장된 연출도 연기도 없다. 억지스러운 웃음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본을 검열하다 두 사람이 함께 대본을 다듬으며 아이디어를 내는 상황이 따뜻하다. 대본의 진실성을 담아내는 것, 두 배우의 연기 철학이 무대 위에 스며있어 더 그렇다.

“대본이 쓴 인물에 딱 맞는 연기를 하는 것이 진실성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면 진실성이 없는 거다. 자기 주장으로 만들어 거짓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을 온전히 찾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진실성에 가까워지는 길인 것 같아요.” (서현철)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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