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도요타연구소, 풍선 같은 인간형 로봇 개발] 로봇 품에 안겨볼까… 푹신한 휴머노이드, 인간과 안전한 교류
애니메이션 영화 ‘빅 히어로’의 주인공인 로봇 베이맥스(Baymax)는 제목과 달리 영웅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간호 로봇인 베이맥스는 매끈한 금속성 몸체 대신 미쉐린타이어 모델처럼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 같다.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이 됐다. 베이맥스처럼 온몸이 풍선처럼 부푼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이 등장했다. 휴머노이드는 손가락으로만 물건을 집었지만, 풍선 휴머노이드는 두 팔로 큰 짐을 안고 옮길 수 있다. 로봇이 사람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부드럽게 변신하고 있다.
금속 골격 위에 풍선 입힌 소프트 로봇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은 최근 “캘리포니아주 로스앨터스에 있는 도요타연구소(TRI)가 온몸이 풍선처럼 푹신한 휴머노이드인 푸뇨(Punyo)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휴머노이드는 반도체 웨이퍼를 옮기는 장비처럼 끝단인 손가락으로 사물을 조작한다. 그렇다면 식품이 가득 들어있는 종이봉투는 어떻게 옮길까. 손가락으로 집기엔 무겁고, 들어도 봉투가 찢어진다. 퓨뇨는 다르다. 사람처럼 두 팔로 종이봉투를 안고 옮길 수 있다. 연구소는 “푸뇨는 부드러운 몸체를 이용해 집게 같은 손가락보다 더 다양한 물체를 조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요타연구소는 처음에 로봇팔에 달린 집게인 그리퍼를 부드러운 소재로 만드는 연구를 했다. 금속 집게를 오므리고 펼치는 대신, 공기압을 넣었다 빼면서 형태를 바꾸는 그리퍼다. 그러다가 아예 휴머노이드인 T-HR3 전체를 부드러운 소재로 감싸는 연구로 발전했다. 푸뇨 기술 책임자인 알렉스 알스팍(Alex Alspach)은 스펙트럼에 “우리는 ‘풍선화(bubble-ize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며 “푸뇨를 통해 로봇이 전신을 최대한 활용해 물체를 조작하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푸뇨는 아직 온몸을 쓰지는 못한다. 가슴과 두 팔만 풍선화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 그래도 기존 휴머노이드가 조작하지 못하는 크고 부드러운 물체를 조작할 수 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물건이 가득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안고 옮기는 식이다.
알스팍은 “현재 로봇 기술은 집게 같은 ‘엔드 이펙터(end effector⋅말단 장치)’로 자동차 부품과 큰 공구를 움직이는 대형 산업용로봇에서 발전했다”며 “하지만 일상에서는 크고 무거운 물체가 있으면 두 팔로 감싸서 들어 올리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인간과 상호작용에 유리
푸뇨는 뼈대는 금속 재질이지만 외부는 풍선 같다는 점에서 재질이 부드러운 소프트(soft) 로봇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소프트 로봇은 주로 공기압으로 움직인다. 미국 하버드대는 2011년 공기압으로 불가사리 로봇의 몸체를 움직여 동물의 여러 동작을 흉내 냈다.
이듬해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대· 서울대 공동 연구팀은 로봇으로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의 움직임을 재현했다. 유럽연합(EU)과 이스라엘 연구진은 문어 로봇도 발표했다.
소프트 로봇은 금속 재질의 둔탁한 로봇보다는 몸이 물렁물렁해 힘이 약하다. 하지만 이 단점은 반대로 장점이 되기도 한다. 로봇이 사람과 같이 생활하려면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빅 히어로’의 베이맥스처럼 소프트 로봇이라면 악수하다가 뼈가 부러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푸뇨도 마찬가지다. 도요타연구소는 푸뇨는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데 유리하다고 밝혔다. 푸뇨 개발진인 앤드루 보리유(Andrew Beaulieu)는 “로봇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동한다면, 물리적으로 푹신푹신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부딪혀도 안전하면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 쉽다. 또 조작하는 물체의 형태에 따라 접촉 면적을 늘리고 힘을 분산해 더 견고하게 집을 수 있다.
인간과 로봇, 감정적 교류도 쉬워
소프트 로봇은 인간과 감정적 교류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시중에는 사람과 대화하며 감정을 나누는, 이른바 ‘소셜 로봇(social robot)’이 많다. 케이트 추이(Kate Tsui) 연구원은 “푸뇨는 소셜 로봇이 아니지만, 포옹을 통해 의외로 많은 감정을 줄 수 있다”며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한 친구가 꼭 껴안아 주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보스턴아동병원은 MIT 미디어랩과 공동으로 어린이 환자와 놀아주는 ‘허거블(Huggable·안고 싶어지는)’을 개발했다. 안은 딱딱한 로봇이지만 겉은 푹신한 천으로 감싼 곰 인형 모양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는 치매 환자 치료용으로 바다표범 로봇 ‘파로(Paro)’를 개발했다. 안으면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촉감을 줘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네덜란드 신경과학연구소의 프레데릭 미숑(Frédéric Michon) 박사는 “만질 수 있는 로봇이나 담요가 외로움뿐만 아니라 질환으로 인해 정신 건강이 나빠진 사람을 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숑 박사는 최근 서로 합의한 신체 접촉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덜란드 연구진은 사물과 접촉해도 같은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소프트 로봇은 몸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 이스라엘 과학자들은 바다표범 로봇을 어루만진 건강한 젊은 성인이 천문학자에 관한 기사를 읽은 사람보다 가벼운 열 자극에 통증을 덜 느꼈다고 밝혔다.
도요타연구소의 기술 책임자인 알스팍은 “부드러움은 특히 인간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두 발 휴머노이드에 필수 조건이 될 것” 이라며 “최근 연구실 밖에서 휴머노이드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전신을 사용해 물체를 조작하는 로봇이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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