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기의 HR 이야기] 퇴직 면담의 정석… “히딩크처럼 보내고, 박지성처럼 떠나라”
내가 첫 직장 H그룹을 떠나던 마지막 날. 평소에 나름대로 친분 있었던 200여 명의 직원에게 진솔한 이메일로 작별 인사를 전했다. 지나간 배움과 성장의 시간을 회고하고, 그간의 도움에 감사를 전했다. ‘보내기’ 버튼을 클릭한 지 얼마가 됐을까. 적막했던 사무실은 매우 낯선 광경으로 급변했다.
휴대전화가 일상화하지 않았던 그 시절, 늦은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전화벨이 연신 울리기 시작했고, 이메일 회신이 계속되고, 어떤 이는 직접 사무실로 한걸음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내게 “무슨 일이냐고, 왜 갑작스레 떠나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어쩌다 한 번 겪게 되는 인간적이고 정겨운 모습이 요즘 세상에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하지만, 이미 추억의 책가방 속으로 들어간 지가 오래됐다.
우리는 퇴직이 지극히 일상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온보딩(on-boarding·조직에 안착하는 것) 못지않게 오프보딩(off-boarding· 조직을 떠나는 것)이 중요해진 세상이다. 퇴직 환송회나 이별 방식 등 퇴직에 얽힌 문화도 세대에 맞게 참 많이 변했건만,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퇴직 면담’ 그 자체에서는 좀처럼 체계적이고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형식적인 퇴직 면담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퇴직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이 면담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일부 조직 내 ‘꼰대’ 같은 선배나 상사들은 이런 면담 자리를 훈계의 장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아마 그래서일까. 대부분 기업의 퇴직 면담 자리에서 진실한 말이 오가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최고 팀으로 박지성 보내준 히딩크
몇 년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 국가대표 축구팀 주장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 장면을 봤다.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서 세계 최고 명문 구단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당시 소속팀 감독 거스 히딩크와 나눈 대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저마다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박지성 선수는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스승인 히딩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고, 히딩크 감독은 팀의 주축 선수이자 동시에 사랑하는 제자를 보내야만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박지성은 “꼭 가야겠다”고 했고, 히딩크는 진심으로 “잘 가라”고 격려한다. 히딩크 입장에서는 정말 아끼는 선수가 초기 유럽 무대에서의 부진을 잘 극복하고 이제는 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간판선수로 성장했기에 전력 손실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무엇보다 완전히 레벨이 다른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애제자가 행여 고전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 선수로서 평생 꿈꾸고 도전하고 싶었던 팀의 러브 콜을 받아 “포기할 수 없다”는 박지성의 말을 듣고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빌어주면서 보내준 것이다.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이직을 통해 늘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고 관리해 온 터라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선수 간의 이런 대화가 전혀 낯설지 않다. 필자 역시 이직할 때마다 함께 일했던 최고경영자(CEO)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이직 의사를 표명할 때면, 우선 이 조직에서 정말 계속 함께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더 뛰어난 통찰력으로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주고 새로운 성공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구조조정이나 성과 문제 등으로 인한 유감스러운 퇴직도 있지만, 참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직원이 새로운 커리어를 추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우리는 왜 이런 부분에 여전히 미숙할까. 심하면 떠나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도 있다. 축하나 격려 메시지도 없고, 근본적으로 파악해야 할 ‘떠나는 진짜 이유’도 모른다. 이 때문에 비슷한 사건(퇴사)이 또 재발할 수도 있다. 이전에 몸담았던 한 조직과 자문을 해준 몇몇 회사에선 떠나는 모든 구성원이 야반도주하듯이 조용히 사라지곤 했던 씁쓸한 모습도 많이 봤다.
직원과 잘 이별하는 몇 가지 팁
리더를 위한 간단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팁을 전해주고 싶다.
첫째, 꼰대 짓은 하지 말자. 바깥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설프게 잡으려 한다든지, 선배라고 한 수 가르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당신보다 나이가 어릴지라도 시장 판도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당신이 한 직장에서 지금껏 위를 바라보고 안정된 노선만을 추구했다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구성원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저 진심으로 경청하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차라리 질문하면서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그래야 향후에 비슷한 잠재적 인력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건설적 대책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의미를 부여하고 격려해 주자. 절대로 떠나는 사람을 배신자나 죄인으로 만들지 말자. 그들은 이미 성인으로 자기 커리어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요, 어쩌면 상당 시간 시장을 조사하고 다양한 조언을 들으면서 전략적으로 이직을 고민했을 확률이 높다. 간혹 ‘오판’을 해 잘못된 옵션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부분도 그리 개의치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구성원이 개인의 미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직속 상사나 사내의 리더들과 진솔하고 건설적으로 나누지 못했다면, 그런 기업 문화와 리더십을 반성하고 개선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들의 새로운 도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자. 피차 흉하지 않은 모습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것이 순리다.
셋째, 작더라도 진심이 깃든 정성스러운 환송회 정도는 해주자. 지나간 커리어를 돌이켜 봤을 때, 늘 감사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는 항상 보스와 직원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이직했다는 것이다. 조촐하지만 정성스러운 저녁 식사, 취미나 개인의 기호를 배려한 선물 그리고 한 줄 한 줄 꾹꾹 눌러쓴 카드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고 때론 울컥하게 하는 롤링 페이퍼, 심지어 지나간 몇 년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앨범으로 만들어주는 정성까지! 오히려 떠나는 사람이 아쉬움을 느낄 정도의 환송회였다. 그동안 정말 좋은 직장에서 진짜 괜찮은 동료와 함께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작은 세리머니(ceremony)를 해주면 좋다. 이러한 것들이 떠나는 자나 남은 자 모두를 위해서도 좋다.
다시 박지성과 히딩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박지성은 그 뒤 계속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히딩크는 전설의 명장으로 박지성을 비롯한 여러 선수의 멘토로 남아있다. 이 두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연락을 취하고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있다. 지금도 서로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을 떠난 후에도 ‘이권’을 떠나서 서로가 계속 연락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역시 주변에 있다. 우리라고 히딩크처럼 보내고, 박지성처럼 떠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대기업 인력의 70% 이상이 경력직의 수시 채용으로 전환되는 세상이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신규 포지션 창출과 맞물린 인재 전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의미 있는 퇴직 면담의 메시지로 발전의 스토리와 건강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주는 지혜로운 리더가 더 많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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