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 | 해외 선주 신뢰 높은 韓 조선, 생태계 경쟁력 제고 고민할 때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 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 2024. 6. 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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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클락슨이 발표한 세계 신조선 계약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1분기 세계 신조선 발주량이 감소했음에도 한국의 수주량은 크게 증가했다. 1분기 중 세계 발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한 1034만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고려해 환산한 톤(t) 수)에 그쳤지만 한국은 이 중 43.4%인 449만CGT를 수주해 전년 동기 대비 32.9% 증가한 실적을 보였다. 같은 기간 중국과 일본의 수주 규모는 각각 0.7%, 89.7% 감소했다. 1분기 수주량은 중국에 약간 미치지 못했지만, 수주액은 중국보다 약 10억달러(약 1조3803억원) 더 많은136억달러(약 18조7721억원)를 기록했다.

이러한 실적에 고무된 일각에서는 한국이 다시 시장 1위를 탈환했고 이를 계속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조선업의 특성과 산업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양적 1위는 큰 의미가 없다. 현재 한국에서 중형급 이상 9개 조선소가 운영되고 있는 반면, 중국에선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조선소만도 70여 개에 이른다. 한국이 중국과 양적 1위를 위해 경쟁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1분기 한국이 1위 실적을 기록한 것은 카타르발 LNG선 발주량 전량 수주가 해당 기간에 몰렸기 때문에 벌어진 특이 상황이다. 이제 점차 한중 양국의 경쟁으로 좁혀지고 있는 글로벌 신(新)조선 시장에서 양국의 경쟁은 수주 1위가 아니라 산업과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新조선 산업 주도권 잡기 위한 경쟁

여전히 기술 경쟁력과 품질 면에서 한국은 중국을 능가하고 있으며 선주들의 신뢰도 또한 높다. 한국은 고기술과 고품질이 요구되는 LNG선 시장의 70~80%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새로운 선종으로 떠오르는 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시장에서도 2023년 이후 발주된 45척 중 싱가포르 선주 물량 6척을 제외한 전량을 국내 조선소가 수주했다. 아직 기술적 불확실성이 높은 선종은 여전히 전 세계 선주가 한국 조선소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생산원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수준의 경쟁력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향후 한국의 산업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탈탄소화와 스마트화로 어느 때보다 시장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으나 국내 연구개발(R&D) 인력은 조선업을 기피해 R&D 능력도 저하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 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서울대 조선공학 석사, 서울대 기술경영전공 박사, 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중국은 2015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발표한 이후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조선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이러한 물량이 대부분 자국 조선소에 발주되며 이들에 경험 축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조선소들은 예전에 한국 조선소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고부가 및 대형선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일례로 LNG 연료 추진 1만2000TEU(표준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20ft 컨테이너 하나를 1TEU라고 함) 이상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전세계 수주량을 살펴보면 2021년까지도 한국이 약 70% 가까운 점유율을 보였으나 2023년 한국 26%, 중국 74%로 역전된 바 있다.

중국 조선 업계는 현재 암모니아 연료 추진선 개발에 매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핀란드의 세계적인 엔진 업체 바르질라(Wartsila)의 특정 지역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빈터투어가스앤드디젤(WinGD)은 100% 중국 지분으로 구성돼 세계적인 엔진 기업들과 나란히 암모니아 내연기관을 개발 중이다. 또 어느 나라보다도 재생에너지 투자에 적극적이고 그린 암모니아, 그린 메탄올 등 청정 연료 제조 설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자국의 청정 연료 공급 능력을 기반으로 선주들과 연료 공급 및 선박 건조 계약을 연계한 협력을 진행한다면, 조선업 경쟁력 측면에서 새로운 도약이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반면 우리나라 조선업의 기술 개발은 주로 대형 3사의 R&D 능력에 의존한다. 이들 3사는 이제 막 영업 적자에서 벗어나고 있어 그간 R&D에 투자할 재무적 여력이 크지 않았다. 또 3사가 동일한 기술에 각각 투자하기 때문에 중국에 비해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HD한국조선해양의 LNG 운반선. 사진 HD한국조선해양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기술 기반 경쟁력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한 특단의 전략은 ‘협력’ 이다. 바로 세계 최정상급의 국내 대형 3사 간, 기자재 업계와 조선 업계 간 협력이다. 이는 영업상의 이익을 추구해 수요자에게 불이익을 안기는 담합과는 다르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3사가 협력해 시너지를 일으키며, 최고의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은 해상 탈탄소를 통한 지구 환경 개선에 기여할 것이고, 거대 정부가 지원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3사가 공동으로 투자한 기술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공통 필요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차별화 기술을 각 사가 비밀리에 개발하는 모습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형태로도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기술 개발 주체가 설립된다면 공공 부문에서 중소기업 정책 자금이나 탈탄소 정책 자금을 지원하며 새로운 기자재를 개발해 기자재 업계와 동반 발전하는 선순환도 가능해질 것이다. 기자재 산업의 뒷받침 없이 대규모 조선업이 성공할 수 없음은 이미 수비크 조선소의 실패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은 바 있다.

국내 생산 인력 양성, 정부 정책 개선도 필요

기술 경쟁력만큼 시급한 일은 또 있다. 국내 생산 인력 양성이다. 현재 같은 높은 외국인 생산 인력 의존도로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 경쟁력이 있다 해도 장기적인 생산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은 국내에서 경력이 쌓인 후 숙련도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자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내 조선소는 숙련도 축적에 문제가 생기고 생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일본 조선업의 최근 몰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생산 현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많은 작업을 자동화하더라도 사람 손이 필요한 곳에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인력이 숙련도를 축적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분위기로는 요원해 보이지만 지속적인 논의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숙제다.

중장기적인 K조선의 성공을 위해 정부의 산업 정책 역시 전략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조선 산업은 기간산업을 넘어 국가의 필수 산업이다. 국내 또는 인근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작게는 공급망 혼란 등이 발생할 때 국제 화물선이 우리 해역에 접근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접근 거부는 국제법 체계상 합법적이며 해당 화물선에 금융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이나 보험사가 위험 해역 접근을 금지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자원과 물자가 절대 부족한 우리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때를 대비해 국적 선대(船隊)가 필요하지만, 많은 선박이 파괴되거나 발이 묶일 경우, 대규모 조선 능력은 국가를 살릴 절대 중요 자산이다. 건조 중인 선박을 징발하고 신속하게 대규모 생산이 이뤄지도록 하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서구 선진국은 이미 이러한 개념이 정책에 도입돼 있으며 미국의 존스 액트(Jones Act) 역시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조선업의 유지는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이며 국제 통상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 이는 미국 정부의 논리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개념이다.

조선 산업은 부침이 심하다. 전방 산업인 해운업의 투기 성향 때문이다. 20년 또는 30년에 한 번은 반드시 위기에 직면하게 돼 있다. 이때 국가 결정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또한 K조선의 장기적 지속을 위해 조선이 필수 산업이라는 인식이 근본이 돼야 하며 이러한 근본 위에 산업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이미 중국은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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