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K농업] 韓 농업기술로 식량난 지원…캄보디아·라오스에 노하우 전수

윤희훈 조선비즈 기자 2024. 6. 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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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란을 겪은 한국은 전후 20여 년간 유엔(UN)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원조를 받았다. 국민은 배고픔을 이겨내고 산업화를 일궈 한국을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원조받던 나라가 공여국으로 바뀐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기아·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식량 지원부터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인프라·기술 지원까지, 한국의 농업 외교 현장을 담았다.

4월 17일 전북 군산항에서 트럭에 실린 쌀을 배로 옮기는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베트남 국적 벌크선 ‘민쟝호’에 선적된 한국산 쌀. 민쟝호는 쌀 1만5000t을 방글라데시에 전달했다. 사진 윤희훈 기자

사람을 살리는 ‘쌀’ 10만t 공여

4월 17일(이하 현지시각) 전북 군산항에선 베트남 국적 벌크선 ‘민쟝호’에 태극기가 그려진 쌀 포대를 싣고 있었다. 민쟝호는 군산항에서 우리 쌀 1만5000t을 싣고 방글라데시로 출항했다. 5월 3일 군산항을 떠난 민쟝호는 12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5월 15일 방글라데시 ‘치타공항(Port of Chittagong)’에 도착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 전달된 쌀은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넘어간 로힝야 난민의 식량 지원에 쓰인다. 현재 방글라데시 미얀마 접경 지역에는 집단 학살을 피해 들어온 로힝야족 120만 명가량이 체류 중이다. 정부는 올해 방글라데시 외에도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2400t)·마다가스카르(1만t)·모리타니(6720t)·모잠비크(3000t)·시에라리온(2400t)·우간다(3000t)·에티오피아(13600t)· 케냐(2만1000t),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4900t)·예멘(1만8000t) 등 총 11개국에 쌀 10만t을 지원할 예정이다. 쌀 10만t은 3개월간 약 260만 명을 지원할 수 있다. 한국이 WFP 식량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2018년부터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5만t을 기부해 온 한국은 올해부터 공여량을 두 배인 10만t으로 늘렸다. 한국의 식량 원조 규모는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프랑스, 일본, 호주에 이어 세계 7위에 해당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군산항에서 열린 쌀 출항식에서 “식량을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며 “식량 원조를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쌀의 품질이 좋아, 수혜국에서 반응이 좋다”면서 “도움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위상이 달라진 한국의 스토리가 개발도상국에 주는 울림도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라니아 다가시-카마라 WFP 사무차장보는 “전 세계 3억3300만 명이 극심한 식량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원 확대를 환영하고, 감사를 전한다”며 “WFP가 한국에서 식량을 지원하고 개발 사업을 도운 지 60년, 한국이 WFP의 지원을 졸업한 지 40년이 된 올해,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공적개발원조로 건립된 라오스 비엔티안 농업서비스센터ADC에 비치된 농기계를 인근 지역 농민이 소개하고 있다. 농업서비스센터 인근 농가들은 농기계를 이용해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사진 윤희훈 기자

캄보디아에서 자라는 K농산물

한국 정부는 쌀 지원 외에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돕고 있다. 농기계나 쌀 가공 시설 지원에 집중됐던 농업 ODA 사업은 기술 지원 모델로 전환 중이다. 캄보디아 몬둘키리주(州)에서 진행 중인 ‘고부가가치 채소 생산 및 가치 사슬 개선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현지에 채소 연구소를 건립하고, 지역 농민에게 영농 기술을 전수하며 국내 개발 종자와 비료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한국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캄보디아 몬둘키리주에 건립 중인 채소연구소. 사진 윤희훈 기자

몬둘키리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동쪽으로 370㎞ 떨어진 위치에 있다. 자동차를 타고 7시간을 달려야 나온다. 베트남 국경과 맞댄 이 지역은 해발고도 600m로, 강원도와 닮았다. 고도가 높은 몬둘키리는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다. 선선한 날씨에서 자란 ‘몬둘키리산(産) 채소’는 캄보디아에서 고품질 채소의 대명사로 통한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을 몬둘키리 농가에서 심기 시작하면서 농산물 품질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2019년부터 몬둘키리에서 농사지어온 쿨 랜(22)은 국산 배추 품종인 ‘오대’와 ‘썸머짱’을 심었던 자리를 가리키며 “몬둘키리 날씨와 잘 맞는 품종이다. 품질이 좋아 현지에서도 인기가 많다” 며 “‘플러그 육묘 재배’ 등 한국 농법을 활용하니 생산량이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준공 예정인 채소연구소는 씨감자를 비롯해 채소 육묘를 현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 시설과 기숙사도 마련해 농업 공무원이나 영농인에 대한 연수도 진행한다. 경운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를 현지 농가에 빌려주는 기능도 한다.

현지에 파견된 전문가들은 농가에 대한 영농 기술 교육을 진행 중이다. 몬둘키리 현지에서 채소연구소 공사와 영농 교육을 맡고 있는 김일섭 전 강원대 교수는 “캄보디아의 토양은 물 빠짐이 좋지 않아 병충해가 많이 발생한다”면서 “특히 우기에 전염병이 많이 퍼진다. 선도 농가들에 토양 소독 등에 대해 교육하면서 병충해 발생률이 현격히 개선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몬둘키리주에서 2019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쿨 랜이 현재 재배 중인 양배추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윤희훈 기자

물 위기 라오스에 治水 노하우 전수

메콩강 중류에 있는 라오스에서는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7명이 농업에 종사한다. 나라 경제에서 농업 비중이 크지만, ‘치수(治水)’ 역량이 부족해 매년 가뭄과 홍수 피해를 본다. 라오스 농림부에 따르면, 라오스 농경지 중 관개시설을 갖춘 농지는 20%도 안 된다. 물만 확보된다면 태국처럼 1년 2~3모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대목이다. 문제는 재정이다. 라오스는 2022년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내몰렸을 정도로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 캄파찬 봉사나 라오스 농림부 관개국장은 “건기 메콩강 수위가 낮아지면 농업용수 확보에 어려움이 생긴다”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면 관개시설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국가 재정 여건상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진 시엥쿠앙주에 44억원을 투입해 댐과 관개수로 건설을 지원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진 51억원을 투입해 쌍통군에 관개용 댐과 수로를 지어줬다. 4월 25일에는 관개 교육 시설인 ‘관개기술교육센터(ITTC)’ 를 지어 라오스 정부에 이양했다. ITTC는 라오스 기술직 공무원의 농업용수 관리 기술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관개 기술 교육 시설과 토질·수질 시험 시설로 활용된다. 최근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라오스의 수자원 관리는 안보 이슈가 되고 있다. 중국이 메콩강 상류 지역에 댐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기 물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하는 상황이다.

통팟 봉마니 라오스 농림부 차관은 “물 부족 문제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메콩강 유역 국가 간에는 수자원 관리를 위한 협약이 체결돼 있는데, 중국은 빠져있다 보니 댐 건설 등 구체적인 정보를 인근 국가에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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