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한국인 여성 최초 美 공대 학장 된 박아형 UCLA 교수] “기후변화 연구는 세상 살리는 일, 그래서 행복… 소통은 나의 힘”
모든 물질에는 에너지가 고여 있다. 지구가 고열에 시달리지 않도록 수소는 잘 빼내고 탄소는 잘 묻는 것이 환경공학자들의 일이다. 인생도 그렇다. 의미 있는 시간을 살기 위해 꿈의 불씨는 키우고 스트레스는 잘 묻는 것이 모든 개인의 바람이다. 결국은 에너지 싸움이다. 인생도 경제도.
지치지 않고 오래 이어지는 삶, 지속 가능성에 특별한 해법이 있을까. 작년 9월 한국인 여성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공과대학 학장으로 부임한 화학공학자 박아형은 최적의 에너지 효율을 ‘소통’에서 찾았다.
“혼자 연구하면 작은 질문에만 답할 수 있었다. 질문이 커질수록 더 많은 전문가, 더 다양한 글로벌 기업과 연합할 수 있었다. 연합할수록 더 나은 해결책이 나왔다”고 그는 말한다.
‘문송(문과라서 죄송의 줄임말)’ 기자가 공대 학장을 만났다. ‘탄소는 죄가 없다. 단지 모여있는 장소가 문제 될 뿐’이라며 “앞으로 정유 회사는 화석연료 아닌 것에서 탄소를 빼내 에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친절한 과학자. 박아형은 탄소 포집과 저장, 활용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영어를 못해서 한국 입시에 낙방했던 그는 캐나다로 떠나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밟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화학·생체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구환경공학과의 유일한 여성 교수로 컬럼비아대에서 16년간 가르치는 동안, 기후 위기와 저탄소 분야 최전선의 연구자로 우뚝 섰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인 여성 최초 UCLA 공대 학장으로 취임한 지 8개월 정도가 지났다. UCLA 공대는 반도체 부문에 핵심 역향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반색하며)그렇다. 그래서 한국 방문 전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 기업인 대만의 TSMC에 다녀왔다. 우리 학교에서 TSMC의 자문과 교육을 맡고 있는데, 지금 규모가 계속 커져서 매년 1만 명씩 뽑아야 한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에도 반도체학과가있지만 규모가 작다고 들었다. 인공지능(AI)은 AI 칩이 필요하고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만 갈 것이다. TSMC는 삼성전자, 인텔과 반도체 주도권 경쟁을 벌이며 치고 나가고 있다.”
AI 반도체와 저탄소 공법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기술 산업인데, UCLA 공대가 그 두 분야에서 치고 나가는 것 같다.
“올해 1월에 UCLA는 엄청난 규모의 쇼핑몰을 사서 리서치 센터로 만들었다. 정부 자금도 많이 유치했다. 공학자에게는 연구가 산업이 되고 그 산업이 학생들의 직장이 된다. 그걸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전공이 화학공학인가. 미국 공대에서 화학공학은 어떤 포지션인가.
“공대는 물리학과 수학이 기본이다. 기계공학이나 로봇 산업도 다 물리학, 수학이 기본이다. 화학공학은 다르다. 물리학, 수학에 화학이 결합해 있다. 그래서 화학이 거점이 되면 공대 안에 환경공학이나 생명공학도 자리 잡을 수 있다.”
UCLA에 오기 전에 컬럼비아대에 있었는데 두 학교는 기반이 많이 다른가.
“다르다. 컬럼비아대는 뉴욕에 있는 아이비리그 사립학교다. 유엔(UN) 가까이 있어서 생각의 스케일 자체가 크다. 기후변화, 저탄소 문제도 공대 혼자 고민하지 않고 처음부터 상대, 정경대 등이 함께 공동 연구한다. 그래서 작년 1월에 (공립학교인) UCLA 공대 학장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사립에서 공립으로, 동부에서 서부로, 너무 큰 변화니까 말이다. 두 학교는 규모 차이도 크다. 컬럼비아대는 공대 교수가 250명인데 UCLA 공대는 195명이다. 대신 (UCLA 공대가) 학생 수가 많다. 학부생만 4000명, 대학원생도 2500명 정도다. 교수 숫자를 더 늘리면 얼마나 더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거기서 내가 꿀수 있는 꿈들이 보였다.”
저탄소 분야에서의 꿈인가.
“그렇다. 처음에는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사회에 어떤 의미지? 지구에 어떤 의미지?’라는 질문이 커졌다. 그런 큰 질문은 혼자 해결을 못 한다. 다른 학자에게 손을 내밀면서 계속 연합해야 한다. 195명의 교수와 앞으로 얼마나 큰 꿈을 꾸고, 큰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한국과도 공동 연구를 했다고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로 건축자재를 만든다고.
“그 연구는 엄마 때문에 시작했다. ‘저 집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데, 이 집 남편은 나 몰라라 해서 아파트에서 부부 싸움이나. 네가 여러 가족 살리는 셈 치고 음식물 쓰레기 좀 어떻게 해봐라.’ 어느 날 엄마가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걸로 부부가 맨날 부부 싸움을 한다고 이같이 말했다. 그 고민을 내가 10년을 했다. 음식물 찌꺼기로 뭘 할 수 있을까. 찌꺼기로 수소를 만들 수는 있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내려가는 걸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럼, 전자레인지처럼 집에 두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걸 만들어야 한다. 가정용으로 안전해지려면 압력도 온도도 낮아야 한다. 한쪽에선 수소가 나오고 부산물은 건축자재용 머티리얼(재료)로 나와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아직 상용화를 못 했다. 기술을 만든 건 화학공학이지만 전자레인지 같은 도구를 만드는 건 또 기계공학 분야다. 그런 공정은 기업에서 더 잘하니까 앞으로 잘 이어갈 것이다.”
박 학장은 나아가 해조류와 미역으로 바이오 에너지를 만드는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이나 멕시코처럼 땅이 넓은 나라는 옥수수로 에탄올을 만들어 쓸 수 있지만, 땅이 좁은 한국은 불가하기에 땅 대신 바다로 눈을 돌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버려진 미역에서 수소를 뽑아내다니, 그 또한 생활적인 발상이다.
“수소와 암모니아는 탄소가 없는 에너지 그릇이다. 콩이나 옥수수나 혹은 나무토막이 바이오 에너지가 되는 건 그 안에 탄소, 수소, 산소가 다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물질에는 탄소, 수소, 산소가 있고, 거기에 에너지도 고여 있다. 나무를 태우면 따뜻해지는 건 그 안에 에너지가 있다는 증거다. 해조류도 나무랑 똑같다. 버려진 미역 안에서 수소만 뽑아서 에너지로 몰아주고, 탄소는 따로 끄집어내서 저장한 후 건축자재 같은 걸 만드는 거다.”
탄소 얘기를 해보자. 최근에 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쓴 엘리자베스 콜버트를 인터뷰하면서 공기 중 탄소를 포집해 지하의 암석에 묻는 아이슬란드 기업 '클라임웍스'를 알게 됐다. 이미 루프트한자, 레고 등 많은 기업과 계약했고, (이 기업들의) 탄소를 제거해 주면서 기후 산업의 최전선에 섰더라.
“그렇다. 그런데 그게 비용과 스케일 면에서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 어렵나.
“일단 기술은 충분하다.”
기술이 충분하다면 한국이 반도체를 치고 나가서 주도권을 잡았던 것처럼 수소 경제, 저탄소 공법 기술 반야에서도 그럴 수 있지 않나.
“암석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탄소 저장소다. 지구는 수백·수천 년에 걸쳐 이산화탄소(CO2)를 돌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 공정을 단기간에 하려는 거다. 문제는 한국에는 탄소 없는 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많이 있는 석회암은 이미 탄소를 머금은 돌이다. 한국은 탄소 포집 기술이 있어도 저장 공간이 없다는 거다. 우리가 CO2를 땅에 묻으려면 구멍을 뚫어야 하고 광산 개발을 해야 한다. 광물을 채집해서 반응을 봐야 하는데, 한국은 그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SK이노베이션의 그룹 리더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 우리 회사는 글로벌 회사다. (장소의) 범위가 달라지면 대답이 달라질까?’라고 말이다.”
대답이 달라지나.
“달라진다. 탄소를 한국에 못 묻으면 미국이나 중국에 묻을 수도 있다. 물론 협상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에너지를 수입할 때 애초에 탄소 없는 연료를 수입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테면 천연가스는 탄소가 많은 에너지원이다. 그런데 천연가스를 수소로 전환하고 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한 상태로 수입하면? 암모니아는 탄소가 안 나온다. 탄소는 미국에 두고 에너지만 수입하는 것이다. 한국전력에서 지금 그 고민을 하고 있다.”
탄소를 미국에 버려두고 온다고?
“그렇다. 우리가 수입하고 싶은 게 에너지라면, 굳이 탄소 있는 에너지를 수입할 필요가 없는 거다. 우리는 탄소는 말고 에너지만달라고 하는 거다. 상상력을 펼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을 떠났다.
“부모님께서 나를 잘 관찰한 후에 떠나라고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4당5락’이라고,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잠도 못 자고 멍하니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 입시에 떨어졌다. 나는 화학을 좋아해서 화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영어, 프랑스어, 한자를 너무 못했다. 영어를 못하니 좋은 대학 가기는 글렀고, 이참에 한국을 떠나서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한 번은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이다.”
미국보다 싸고 덜 무섭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캐나다로 떠난 때가 1992년. 유학원의 도움을 받아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 정착했다. 영어를 못해서 유학을 갔는데, 못하던 영어가 6개월 만에 트였다고 했다. 대체 그의 뇌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 걸까.
영어 못하던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거죠.
“그곳에서는 나를 꾸밀 필요가 없었고, 정직해질 수 있었다. 잘해야지, 잘 보여야지, 창피하다⋯, 이런 마음 없이 부딪쳤다. 아기처럼 영어를 배우다 보니까, 확확 늘었다. 6개월 만에 듣는 게 되고, 1년 되니까 지금 정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가령 자전거를 매일 5분씩 타면 평생 못 배울 수도 있다. 매일 리셋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일주일을 내리 넘어져도 계속 타면 ‘이거 뭐지?’ 하고 확 실력이 늘어난다. 언어도 그런 것 같다. 영어를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완벽해지려는 고민보다, 내가 왜 영어를 배우고 싶은지를 고민했다. 결국 소통을 하고 싶은 것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걸 저 친구한테 알려주고, 교수님께 얘기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계속 시도했다. 이렇게 하면 알아듣나, 저렇게 하면 알아듣나. 그러다 보니 눈뜨게 된 건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였다.
발음이 아무리 완벽하고 문법이 정확해도 문화를 모르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문화가 궁금해서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소통도 빨리할 수 있게 됐다.”
상대를 궁금해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나.
“그렇다. 영어를 잘해야 인정을 받고 좋은 직장도 얻는다? 이런 마음이 앞서면 오히려 잘 안 들리는 것 같다. 언어를 공부로만 접근하면 꼬이는 거다. 생각해 보면 사회 나와도 공부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힘든 상황에서 추스르고 일어나는 힘, 생활력의 중요성을 나는 부모님께 배웠다.
‘저 사람은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있나. 난관에 부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고, 주변 사람과 협력해서 풀어가고. 그게 전부 같다.”
어디에 에너지를 쓸 때 가장 행복한가.
“(미소 지으며) 세상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다. 부모님은 내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다. 고소득의 안정된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가 기후변화 연구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진짜 세상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나를 만병통치약으로 아셔서, 막 던지시는 것 같다. 이런 거 네가 좀 해결해 봐라, 저것도 고민해 보라고 말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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