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81> 54세 생일에 SK텔레콤 오픈서 KPGA 최고령 우승한 최경주] “술·탄산음료·커피 끊고 운동하니 놀라운 기적… 한번 해보세요”
대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골프 경기에서 가끔 초현실적인 현상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5월 19일 제주 핀크스 골프클럽(파71·7326야드)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총상금 13억원) 최종 라운드도 그랬다.
이날은 한국 선수로는 처음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개척한 최경주의 54세 생일이었다. 최경주는 4라운드를 5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 하지만 버디 2개, 보기 5개로 3타를 잃은 그는 최종 합계 3언더파 281타로 박상현(41)과 동률을 이뤘다.
18번 홀(파4)에서 열린 연장 1차전에서 최경주는 두 번째 샷을 그린 옆 개울로 보냈다. 티샷이 너무 짧아 우드로 샷을 했는데 그만 뒤땅을 쳐 제대로 날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공은 개울에 빠지지 않고 작은 섬 같은 곳에 떨어졌다. 섬의 크기는 잔디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가로 2m, 세로 1.5m 정도.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던 곳이었다. 이 자리에서 샷을 홀 가까이 붙여 파를 기록하며 박상현과 비겼다. 연장 2차전에 들어갔다.
최경주는 온몸의 힘을 짜내 드라이버를 30야드 더 보냈다.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려 2퍼트로 파를 기록했다. 박상현은 보기를 했다. 결국 최경주는 박상현을 꺾고 KPGA투어 통산 1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 5월 19일생인 최경주는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19년 만에 새로 썼다. 종전 기록은 2005년 매경오픈에서 최상호(69)가 세운 50세 4개월 25일이었다. 최경주가 KPGA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11년 7개월전인 CJ인비테이셔널이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선 2002~2011년 통산 8승을 거뒀는데 마지막 우승이 2011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었다. 최경주는 2020년부터 만 50세 이상 골퍼가 참가하는 미국 PGA챔피언스(시니어)투어에서 뛰기 시작해 2021년 1승을 올렸다.
최경주는 우승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미국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5월 23일(현지시각)부터 나흘간 미국 미시간주 벤튼 하버의 하버 쇼어스 리조트 코스에서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챔피언스투어 메이저 대회인 키친에이드 시니어 PGA챔피언십에 나섰다.
"햄버거 먹어야 할 때도 콜라 대신 생수 마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들뻘 20~30대 선수들과 겨뤄도 손색없는 최경주가 술, 탄산음료, 커피 세 가지를 끊었다고 해 화제가 됐다. 최경주는 “젊을 때만큼 말술은 아니지만 지인을 만나면 소폭(소주 폭탄주)으로 열 잔, 스무 잔은 너끈히 마셨다. 하지만 3년 전부터 공도 잘 못 치면서 몸에 해로운 술을 먹는 게 잘하는 짓인가 싶어서 입에 한 방울도 안 대고 있다. 행사 때 주는 와인도 입에 안 댄다. 탄산음료도 딱 끊었다. 햄버거를 먹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때도 콜라 대신 생수를 마신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건강에 더 신경 쓰게 된 게 사실 6년 전부터 척추관 협착증에 시달리면서”라고 털어놓았다. 4번과 5번 디스크가 붙어 무리하면 진통이 심하고 근육통을 느낀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는 자생한방병원에서 꾸준히 약침을 맞고 있고 몸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침마다 40분가량 스트레칭과 테라피, 마사지를 한다. 그리고 덤벨 등을 이용한 근력 운동, 플랭크 등 다양한 코어 강화 운동을 1시간에서 1시간 반씩 한다. ‘체력 관리의 달인’으로 통하는 베른하르트 랑거(67·독일)를 본받아 몸에 좋은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2년 전부터 미국 집 근처에 있는 트레이닝 전문 센터에서 몸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어와 하체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전문가의 검사 결과를 듣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한다. 무거운 기구를 들기보다는 현재 자기 힘으로 들 수 있는 무게에서 조금씩 올려간다. 스트레칭을 통한 유연성 훈련도 많이 한다.
"새로운 루틴을 개발해서 꾸준히 연습"
프로 골퍼로 큰돈도 벌었고 자기 이름을 건 재단도 운영하는 최경주가 고달픈 현역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얼까.
“최경주 재단 골프 꿈나무들을 비롯해 어린 친구들에게 늘 롱런하는 선수가 되라고 강조한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되지 말고 오래 참고 견디다 보면 좌절도 딛고 일어서서 우승도 하게 되고, 인생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값진 선수가 되라고 이야기해 놓고 싹 은퇴해버리면 뭐가 되겠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번 우승처럼 내게 주어진 골프라는 재능을 통해 하나님 은혜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그는 지금도 하루에 500개씩 샷을 연습한다. “경기할 때 힘이 빠진 상태에서 샷을 하려면 평소 연습을 충분히 해둬야 한다. 젊었을 때는 하루 1000개씩은 쳤을 거다. 벙커샷부터 아이언샷, 어프로치 샷까지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근육이 빠진다.” 그는 드라이버 거리가 260~270야드 정도로, 젊었을 때보다 20~30야드 줄었다. 하지만 정확한 아이언에 퍼팅 능력을 높여 짧아진 거리를 극복하고 있다. “새로운 루틴을 개발해서 연습하고 있다. 라운드 한 시간 전에 40분가량 빠짐없이 한다. 우선 10분간 1m짜리 쇠자 위에 공을 올려놓고 퍼팅을 반복하는데, 이때 공이 똑바로 옆으로 흐르지 않고 끝까지 굴러가면 자신감이 생긴다. 경기 중에도 쇠자 위에서 공이 똑바로 굴러가던 장면을 떠올리면 집중력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10분간 홀 컵 사방에서 1m 거리를 시작으로 30㎝씩 뒤로 물러나며 2m 거리까지 퍼팅을 한다. 세 번 성공하면 끝낸다. 짧은 거리 퍼팅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준다. 그다음은 거리감 훈련으로 6m, 8m, 10m, 12m 거리에서 2m 간격으로 퍼팅 거리를 맞춰보는 연습을 20분가량 한다.”
그는 “막내아들 강준(20)이가 미국 듀크대 골프부인데 친구들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경기 소식을 접하고는 ‘너희 아빠 정말 대단하다’고 한다고 전하더라”며 “골프를 통해 아직도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축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두 경기를 남겨 놓은 PGA투어 500경기 출전 기록과 PGA챔피언스투어 상금 랭킹 10위 이내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적어도 환갑 넘어까지는 현역으로 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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