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 하루살이는 왜 좀비가 되었나
저는 22세기의 서울에서 사는 도라에몽이에요. 하루가 멀다하고 대량으로 출몰하는 동양하루살이로 지금 이곳은 엉망진창이에요.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마치 모래폭풍이 부는 것처럼 하루살이가 휘몰아쳐요. 시야를 가려 전철과 버스가 멈추고 수돗물에서 하루살이의 사체가 나옵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피터팬과 팅커벨이 철없이 장난을 치다가 동양하루살이가 많아졌다고 믿고 있거든요. 이 문제를 조사해주세요. 그리고 필요할지 모르니 제 4차원 주머니에서 꺼낸 도구를 동봉합니다. – 미래에서 제보자 도라에몽
“홈스 반장님, 한강 하루살이 뉴스 보셨어요? 온몸에 화장을 한듯 수천 마리의 하루살이를 붙인 기자가 한강에서 리포팅을 하더군요. 저는 벌집 인간인 줄 알았어요.”
“나도 봤네, 왓슨. 나도 어제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하루살이 열 마리는 먹은 거 같아. 그나저나 제보자가 도라에몽이라면, 그 머리 큰 너구리 아닌가?”
“너구리가 아니라 미래에 사는 고양이형 돌봄 로봇이죠. 1970년대 ‘진구’라는 말썽구러기 녀석을 돌보다 미래로 돌아갔죠. 진구는 이슬이랑 결혼해서 잘살고 있고요.”
‘압구정 팅커벨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우선 피터팬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조사반의 유일한 요원 왓슨이 말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동화 이야기만 뜰 뿐, 피터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네요.”
“옛날 전화번호부를 찾아보면 어떨까? 거기에 나올 수도 있으니.”
홈스 반장의 아이디어를 듣고, 왓슨은 며칠 뒤 이삽십년 전 전화번호부 한 보따리를 가져왔습니다.
“성이 피씨인 사람을 검색해볼게요. 피가로, 피노키오, 피만두, 피천득… 오! 피터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02-1904-1911이네요.”
둘은 서둘러 번호를 눌렀습니다. 휴대전화 너머로 늙수레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제가 피터팬입니다만.”
“저희는 하루살이 대발생 사태를 조사하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입니다. 혹시 팅커벨을 아시나요?”
“내 이름이 피터팬이 맞긴 한데. 당신네들이 찾는 피터팬은 성이 피터인 거 같은데. 나는 성이 피씨, 이름이 터팬이요. 그나저나 내가 동양하루살이를 연구하는 박사가 맞긴 하오. 어떻게 알았소?”
“아. 그게. 미래에서 도라에몽이…”
홈스 반장과 왓슨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피터팬 박사가 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거 같지만, 여하튼 이쪽으로 와보시죠.”
피터팬 박사의 연구실은 최근 하루살이 출몰로 골치를 앓고 있는 서울 성수동의 한 건물에 있었습니다. 피터팬 박사는 각지에서 채집해 온 하루살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리 와보라며 손짓했습니다.
“동양하루살이입니다. 2~3㎝ 정도 되는 크기에 예쁜 체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요정 ‘팅커벨’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날개를 등에 붙이지 않고 수직으로 세우고 있지 않소? 잠자리 같은 원시 곤충의 특성입니다.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전인 3억년 전부터 하루살이는 지구에 등장했죠. 원래 이 친구들은 강에 쭈욱 살아왔지만, 문제가 생긴 건 얼마 되지 않았서였죠.”
동양하루살이는 서울의 광진구, 성동구 그리고 경기 남양주시와 여주시 등 한강 주변에서 대발생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성충이 되는 순간부터 입이 퇴화해 모기처럼 물지 않지만(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인간이 사는 지역에서 대량 출현해 점령하면서 혐오감을 주고 있습니다.
동양하루살이 대발생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례는 2009년 서울 압구정동의 ‘압구정 팅커벨 사태’였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온듯 하루살이가 창궐해 로데오 거리의 쇼윈도를 덮었고, 처음 본 광경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죠. 남양주시 덕소에서도 매년 발생하면서 2010년대 내내 악명을 떨쳤고, 서울시 성동구와 광진구도 단골 대발생 장소가 되었습니다. 피터팬 박사가 설명했습니다.
“매년 4~6월 그리고 8~9월에 동양하루살이가 대발생합니다. 불빛이 있는 곳이면, 미친듯이 몰려들어 꼼짝 않고 버티죠. 우리 동네에서는 저녁마다 떨어지는 하루살이를 빗자루로 쓸어담는 게 일입니다. 날이 어두어졌으니 이제 인공 조명이 있는 곳에 하루살이들이 붙기 시작할 겁니다.” “왜 이렇게 많아진 거죠?”
“확실히 모릅니다. 하루살이한테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요.”
조사반과 피터팬 박사는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제과점과 편의점, 옷가게 등이 입주한 1층의 쇼윈도에는 이미 동양하루살이 수백 마리가 발 디딜 틈없이 붙어 있었어요.
“하루살이야, 하루살이야!”
피터팬 박사가 말을 걸었지만, 하루살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 보자.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날개를 조금 까닥이더니, 모기만 한 아니 하루살이만한 목소리로 말하네요.
“여기가 어디죠? 아… 어지럽다.”
하루살이는 날개를 까닥하더니 고개를 처박았습니다. 무엇인가에 홀려 집단 환각 상태에 빠진 듯 모두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좀비 같았죠. 좀비를 만드는 것은 쇼윈도 안의 하얀 불빛이었고요. 왓슨이 피터팬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하루살이는 부나방처럼 불빛에 빠져드는 걸까요?”
“유기체가 빛의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성향을 주광성(phototaxis)이라고 합니다. 빛의 방향으로 몰려드는 성향을 양주성(양의 주광성)이라고 하고, 빛으로부터 도망치는 성향을 음주성(음의 주광성)이라고 하죠. 나방과 바퀴벌레가 각각 대표적인 양주성, 음주성 곤충입니다.”
“바퀴벌레가 귀에 들어갔는데, 꺼낸다고 손전등을 비췄다가 더 깊숙이 들어간 적이 있죠. 동양하루살이는 양주성 곤충이겠죠? 그렇다고 왜 조명 앞에 붙어 꼼짝도 않고 있는 거죠?”
“잘 모릅니다. 하루살이한테 물어봐도, 이놈들이 넋이 나가 있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친구들은 무언가 큰 자극에 의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거예요. 혼란 그 자체의 상황인 거죠. 아니면 그저 이곳이 따뜻해서 꿈쩍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고요.”
좀비들의 집회 속으로 들어가다
양주성 곤충이 빛에 몰려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길찾기 가설입니다. 야행성 곤충은 달이나 별 같은 천체의 신호를 이용해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 진화의 역사에 없던, 초강력 인공 광원이 나타난 거예요. 하루살이는 아주 강력한 빛에 이끌려 좀비가 되고, 꿀단지에 빠진 개미처럼 쇼윈도에 붙은 채 생을 마감하는 거죠. 이밖에 밝은 색을 먹이와 연관지어 선호한다는 가설, 어둠 속의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으로 보는 가설, 짝짓기 신호로 착각한다는 가설 등이 있죠. 하지만 아직까지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쇼윈도에 붙은 하루살이를 보며 왓슨이 말했습니다.
“좀비들의 거대한 집회 같네요.”
“이 친구들은 동양하루살이 성충입니다. 어제나 그제 한강에서 성충이 되어 난생 처음 비행한 친구들이죠. 유충한테 물어보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동양하루살이 유충은 강바닥에 굴을 파고 살고 사는데, 우리가 강바닥에 갈 수 없는 게 문제죠.”
그때 왓슨이 손바닥을 치며 외쳤습니다.
“도라에몽이 보내준 도구가 있잖나!”
그 도구는 ‘스몰 라이트’였습니다. 사용설명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기능: 전원을 켠 뒤 동식물이나 사물에 비치면 부피가 작아진다.
주의사항: 빅라이트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자, 이제 동양하루살이 유충을 만나러 한강에 가보자고!”
홈스 반장과 왓슨 그리고 피터팬 박사는 한강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개미만 하게 작아진 몸인지라 ‘첨벙’하는 소리는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았지만요.
*6월10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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