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익선동에서 ‘익선동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도시를 살리는 건 결국 ‘도시다움’을 유지‧발전시키는 것
(시사저널=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한옥이 힙해졌다.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라거나 보존이 필요한 역사 유산으로서가 아니다. 카페,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한옥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이 새로운 한옥들은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필수 방문지로 손꼽힌다.
서울을 비롯해 우리나라에는 많은 한옥마을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이슈가 됐던 곳은 단연 익선동일 것이다. 익선동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단지'다. 조선인을 위해 조선인 건설업자들이 개발한 주거지로, 부자들이 살던 넓은 땅을 작게 쪼개고 일부 신식 시설을 도입하기도 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게 지금의 좁은 골목 안 오밀조밀하게 집들이 모여 있는 한옥마을이 탄생했다. 북촌이나 서촌보다 오래됐고, 밀도도 더 높다.
익선동을 살린 한옥의 매력은 지금 사라지는 중
서울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옥단지는 고층 빌딩으로 재개발하기보다 보존돼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행정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낡아가기만 하던 익선동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개인 창업자들이었다. 근대 한옥이 가진 매력을 일찌감치 캐치한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카페나 레스토랑, 주점으로 공간을 바꿔나갔다. 어떠한 규제나 가이드라인도 없었지만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한옥의 경계를 애매하게 왔다갔다 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가게들이 탄생했고, 2030의 취향에 제대로 적중했다. 익선동 특유의 밀집도 높은 골목 환경은 이들 가게를 찾는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지금 익선동을 비롯해 화제가 되고 있는 '한옥 핫플레이스' 중 전통 한옥을 그대로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입식 가구로 채워놓고 벽면 전체를 통유리로 바꾸는 정도는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익선동 골목 안 눈높이에서 보이는 쇼윈도에 한옥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것도 '전통의 힙한 변신'이란 해석으로 용납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풍경이었다. 죽어가던 동네에 돈이 돌고 유명세를 얻었으니 도시가 재생, 즉 다시 살아났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서울의 브루클린' 성수가 힙함을 유지하는 법
서울에서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꼽히는 또 다른 지역으로 성수동이 있다. 익선동과 유사하게 2000년대 재개발 이슈가 있었지만 지지부진했고, 그 공백을 창의적인 콘셉트의 카페와 갤러리 등이 메웠다. 익선동이 한옥을 활용했다면 성수동을 변화시킨 공간적 기반은 80년대 유행했던 붉은 벽돌 주택과 폐공장, 폐창고들이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뉴욕 브루클린을 닮았던지,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성수동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블루보틀, 디올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의 선택을 받는 한편, 높은 임대료에 기존 주민이나 상인들이 이탈해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완화하고자 여러 가지 노력을 하기도 했다. 공공에서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추고 성수동을 성수동답게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성수동이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이유가 단지 낡은 산업시설에 힙한 가게들이 들어와 있는 겉모습만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결국 동네를 되살리는 것은 2030의 취향이나 니즈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지속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생명력이다. 지역을 꿰뚫는 철학과 비전이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도시는 비로소 살아 숨 쉴 수 있다. 성수동 공동체는 낡은 과거의 흔적을 독창적인 문화로 포장하는 능력이 있는 이들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그를 위한 조율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익선동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익선동다움'이란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익선동 붐을 일으키며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이라 박수 받은 지 수년, 익선동에서 '재생'된 것이 과연 무엇인지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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