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초콜릿… 원가율 떨어졌는데 가격 올리는 기업들 [視리즈]
고약한 인플레 세가지 시각➋
정부, 물가 안정 릴레이 현장 방문
1년간 식품 · 외식업체 31차례 만나
기업 애로사항 들어 부가세 철폐
실효성 의문, 물가 여전히 고공행진
보여주기식 가격 유예 소비자 분통
BBQ 치킨 가격 인상 12일 미뤄
제품의 원가율이 하락했다. 할당관세, 부가세 면제 등 정부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원재룟값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식품·외식업체들이 숱하다. 기후 변화로 일부 원재료의 가격 불안정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불편한 소식임에 틀림없다. 視리즈 '인플레 세가지 시각' 두번째 편 '탐욕의 경제학'이다.
장관 2회, 차관 6회, 실국장 23회.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별다른 게 아니다. 정부가 "높은 식품·외식 물가를 잡겠다"며 진행한 '릴레이 현장 방문' 횟수다. 지난해 2월 전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CJ제일제당·오뚜기·농심 등 12개 식품업체 대표들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1회에 걸쳐 정부 당국자와 업계 관계자가 얼굴을 맞댔다.
하지만 만남 횟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물가 안정 효과가 있었냐를 따져봐야 한다. 일부 효과는 있었다. 정부가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하면서 일부 식품·외식업체가 가격 인상 유예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여주기식'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치킨 프랜차이즈 'BBQ(제너시스BBQ)'다. BBQ는 지난 5월 21일 "황금올리브치킨 등 23개 제품 가격을 평균 6.3% 인상한다"고 밝혔다. 황금올리브치킨 후라이드 가격은 2만원에서 2만3000원으로, 자메이카 통다리구이는 2만1500원에서 2만4000원 등으로 올린다는 게 골자였다.
인상한 가격은 23일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압박 탓인지 BBQ는 이를 8일간(5월 31일) 유예했다. 이어 가격 인상 유예 기간을 4일(6월 4일) 더 연장했다. BBQ 측은 "원부자재 가격, 최저임금, 임차료 상승 등으로 가맹점의 수익성이 악화해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면서도 "물가 안정에 보탬을 주기 위해 가격 인상을 유예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고작 10여일 유예한다고 물가 안정에 보탬이 되겠나" "생색내기식 유예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담했던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BBQ는 지난해 10월 "국제 올리브유 가격이 올랐다"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치킨 튀김유를 교체했다. 100% 올리브유에서 해바라기유 50%를 섞은 'BBQ블렌딩 오일'을 도입했던 거다. 원가 절감을 위해 튀김유를 교체한 지 7개월여 만에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더욱이 BBQ 본사는 원가 절감 효과도 일부 누리고 있다. BBQ 운영사인 제너시스BBQ의 지난해 매출 원가율은 61.8%로 전년(62.2%) 대비 소폭 하락했다. "본사 차원에서 가맹점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비슷한 비판을 받는 기업은 또 있다. 지난 4월 코코아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 인상 카드를 꺼냈던 '롯데웰푸드'다. 롯데웰푸드는 5월 1일부터 코코아를 원료로 만든 제품 17종의 가격을 평균 12% 인상할 계획이었다.
정부의 요청에 가격 인상을 한달간 미뤘던 롯데웰푸드는 지난 1일부터 가나마일드(34g) 가격은 1200원에서 1400원으로, 초코빼빼로(54g) 가격은 1700원에서 1800원으로, ABC초코(187g) 가격은 6000원에서 6600원으로 올렸다. 회사 측은 "엘니뇨와 병해 등으로 초콜릿 주원료인 코코아 생산량이 급감했다"면서 "코코아 가격 상승세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코코아 가격은 유례없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코아 선물 가격은 지난 4월 19일 1만1416달러(이하 1톤당)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년 새 283.4%(2023년 4월 19일 2977달러) 폭등했다. 코코아 선물 가격이 1977년(7월 20일) 4663달러를 기록한 후 줄곧 2000~3000달러 선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상승폭이다.
그럼에도 롯데웰푸드가 국내 제과업계 1위에 걸맞은 상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롯데웰푸드의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은 1년 전보다 되레 떨어졌다"면서 "정부가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고, 코코아 선물 가격이 4월 대비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변수가 있는 만큼 가격 인상 결정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롯데웰푸드의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은 70.8%로 전년 동기(75.0%) 대비 4.2%포인트 하락했다. 1년 전보다 코코아류(37.6%) 가격은 올랐지만 유제품류(-25.1%), 원지원유(-29.8%) 등 다른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의 지원 정책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코코아(생두)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롯데웰푸드를 방문한 후 회사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겠다며 내린 결정이다. 여기에 더해 2022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코코아 수입 부가가치세(10%) 면제 기간도 2025년 12월로 연장했다.
이같은 정부의 '당근'과 '채찍'이 통하지 않으면서 업체의 '웃픈 가격 인상 유예'가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치솟은 물가에 가계 실질소득이 감소한 건 단적인 예다.
올해 1분기 가구 월평균 소득은 1.4%(이하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지만 실질소득은 –1.6% 감소했다. 1분기 실질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21년 1분기(-1.0%) 이후 3년 만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정부의 목표치(2%대)를 웃돈 3.0%(올해 1분기)를 기록하는 등 고물가가 잡히지 않은 탓이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학) 교수는 "정부가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물가를 관리하는 건 높이 살 만하지만 중요한 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물가가 급등하면서 소비가 위축하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는 만큼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가격 이상을 자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해온 할당관세 정책 등이 물가안정에 효과가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원재료 수급 문제가 반복하는 만큼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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