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아할 방법이 없어" 정려원 고백, 알고보니 쌍방구원 '졸업'의 첫사랑
[엔터미디어=정덕현] "너 걔 봤지? 준호를 안 좋아할 수가 있냐? 방법 있으면 알려주라." 드디어 혜진(정려원)은 꼭꼭 감춰두고 부정했던 준호(위하준)에 대한 마음을 친구 소영(황은후)에게 털어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소영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술 기운 때문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아마도 소영은 혜진이 그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가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 눈물은 이러한 사랑 고백이 친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가를 알기 때문에 흘린 눈물일 게다.
tvN 토일드라마 <졸업>에서 이 장면은 그간 사제지간이라는 관계의 틀 때문에 꾹꾹 눌러왔던 혜진의 감정이 드디어 드러나는 순간이다. 대치동 학원가의 일타강사로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것처럼 단단한 껍질을 만들며 살아온 혜진이 그것과는 사뭇 다른 말랑한 속내를 꺼내 보이는 순간이랄까. 그런데 그녀가 너무나 소녀 같은 모습을 드러낼수록 그걸 오래도록 바라봐왔던 친구의 마음은 울컥해진다. "아니 걔가 내가 첫사랑이래잖아." 이러며 설레하는 친구라니.
다음 날 하루 종일 수업이 있어 술은 마시지 않겠다던 혜진은 아마도 그 단단해 보였던 모습 이면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술을 마시고 잔뜩 취했던 것 역시 그 누구에게도 꺼내 보일 수 없었던 속내를 꺼내고픈 마음이 있었을 테다. 이렇게 드디어 껍질을 벗고 나와 무장해제된 혜진에게, 이런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는 준호가 문득 짐정리를 하다 발견한 쪽지들을 보고는 그걸 찍은 사진과 문자를 보낸다.
'선생님이 나한테 준 쪽지들이에요. 집념의 서혜진. 이준호 하나 공부시켜 보겠다고 정말 애 많이 썼어요. 공부를 열심히 한 날, 땡땡이 치고 PC방으로 튄 날, 시험을 잘 본 날 못 본 날, 날씨가 더웠던 날 추웠던 날, 도서관에서 재밌는 책을 발견한 날, 같이 만화책을 빌려본 날, 같이 수학문제를 풀어본 날, 수능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날, 수능 보기 전날, 수능 보고 온 날, 합격증을 받은 날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날에도 선생님은 나한테 할 얘기가 정말 많았나봐요.'
수북하게 쌓여 있는 쪽지들. 거기에는 서혜진이 꾹꾹 눌러 써서 준호에게 건넸던 마음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건 어찌 보면 선생으로서 어려운 입시의 문턱을 지나고 있는 제자에게 보내는 덕담처럼 보이지만, 그 많은 쪽지의 양은 그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걸 감지하게 만든다. 또한 그 쪽지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작은 상자에 고이 간직해왔던 준호의 마음 또한 엿보인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말해주는 친구에게 혜진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다른 친구한텐 그렇게 안해줬어. 준호한테만 해줬어." 그것 역시 고백이다. 준호가 제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는 고백. 그러면서 의외의 이야기를 꺼낸다. "나 휴학계 내고 나서 진짜 살기 싫었어. 니들 MT가고 공부하고 연애하고 이럴 때 나 아침에 전단지 돌리고 나는 청소하고 밤에 수업하고 진짜 사는 게 구질구질해져서 미칠 것 같았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안들더라. 살만해진 게 아니라 그냥 어떤 날은 기분이 되게 좋기도 했었어. 돈 벌어서가 아니고 그냥 눈앞이 어두컴컴할 때 얘가 있어서 버텼나 봐."
혜진의 이 고백으로 인해 <졸업>은 이제 선생님에 의해 어려운 시기를 넘기며 그를 짝사랑했던 제자의 첫사랑 서사가 아니라, 그 선생님 역시 어려운 시기를 제자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던 쌍방 구원 서사로 바뀌었다. '졸업'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여러 의미를 더하게 됐다.
준호에게 있어서 그것은 사제관계를 끝내고 동료 선생님 관계로 바뀐다는 의미이고, 부모님이 바라던 대기업 직장인의 삶을 끝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혜진에게 그것은 그저 수강생 늘리고 점수 높여주는 학원강사의 삶을 끝내고 진짜 교육의 보람을 찾아간다는 의미와 더불어 치열했던 청춘의 나날들 때문에 그때도 지금도 누리지 못하는 삶으로부터의 졸업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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