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위 “유죄 존중”… 트럼프 진영 분노, 선거 가시밭길 되나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6. 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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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
11월 상원 선거 출마… 反트럼프 소신파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가 지난달 14일 아나폴리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당신은 방금 스스로 선거를 끝장냈다. (You just ended your campaign)”

‘성추문 입막음’ 사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받은 지난달 31일. 트럼프 재선 캠프를 총괄하고 있는 크리스 라시비타가 X(옛 트위터)에서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의 글을 공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호건은 지난 2004년 한국계 미국인 화가 유미씨와 결혼, 이른바 ‘한국 사위’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두 차례 주지사 경력을 바탕으로 11월 있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상태인데, 순항하던 캠페인이 암초를 만났다. 트럼프 진영과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이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호건은 공화당 내 이름난 소신파 정치인이자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다. 이른바 ‘레이건 보수’를 자처하는 그는 2020년 대선 직후 트럼프의 ‘부정 선거’ 주장과 1·6 의회 습격 사태 등에 쓴소리를 해왔고, 올해 3월에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호건이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민주당 초강세 지역인 메릴랜드에서 공화당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두 차례(2015~2019년, 2019~2023년)나 주지사를 지낸 정치적 자산 덕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월에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해 순항중이었다.

그런데 호건이 트럼프에 대한 유죄 평결 직후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결과에 관계없이 모든 미국인들은 평결과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입장을 낸 것이 화근이 됐다. 보수 진영에서 재판부와 조 바이든 대통령 측의 ‘정치 보복’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민주당도 아닌 공화당 인사가 이런 입장을 내면서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을 총괄하고 있는 라시비타는 언론에 “그냥 ‘미국에 슬픈 날’이라고 했으면 됐을 걸 정치적으로 말도 안되는 아주 멍청한 비판이었다”고 했다. 이어 “당신이 그렇게 때리겠다면 우리도 맞설 수 밖에 없다”며 “그게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라고 복수를 다짐했다.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오른쪽)과 그의 배우자 유미 호건 여사. /조선일보DB

공화당 내 선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국위원회(RNC)의 공동 의장이자 트럼프 일가 둘째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는 2일 CNN에 “우스꽝스러운 짓이었고 그가 말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호건의 상원 출마를 지지하지 않고 민주당에 양보할 것인가’하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당연히 당은 승리를 원하지만 수치스러운 일”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진영 논객인 마크 레빈 역시 X에서 “내가 메릴랜드에 살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호건에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칙도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메릴랜드주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고 신망이 두터운 호건이 11월 상원 선거 레이스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RNC가 지원을 끊고 매가 지지자들의 ‘방해 공작’이 있을 경우 바이든 지지율이 트럼프의 두 배가 넘는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민주당 우세주)’에서 승리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미 호건의 X에는 “당신이 11월에 꼭 패배하길 바란다” “정치적 커리어를 끝내야 한다”는 악플이 2만개가 넘게 달렸다. 다만 호건의 당선 여부가 공화당이 11월 선거에서 상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는 것과도 직결돼 있기 때문에 복수와 묵인 사이에서 트럼프 측의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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