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급발진이 우주방사선 탓?"…경주 양성자가속기 가보니

박주영 2024. 6.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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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번째로 구축…반도체 기업이 40% 이용
하반기부터 24시간 운영…2030년 200MeV급으로 확장 계획
양성자가속기 현황 설명하는 이재상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장 [촬영 박주영]

(경주=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우주방사선의 영향으로 차량 급발진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전자투표의 결과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내 양성자 가속기 시설을 찾았다.

2.5m 두께의 콘크리트에 양쪽 1m 두께의 철판을 덧댄 방사선 차폐벽을 열고 들어가니 양성자를 만드는 이온원에서부터 본격 가속을 시작하는 고주파 4극 가속장치(RFQ), 11개의 선형 가속장치(DTL)와 빔라인·표적실까지 전체 75m 길이의 선형 가속기 장치가 터널 내부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현재는 가속관 재정렬 작업을 위해 전원이 꺼진 상태다.

양성자 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양성자를 강력한 전기장을 사용해 빛의 속도(초당 30만㎞)에 가깝게 가속시킬 수 있는 장치다.

가속된 양성자가 물질에 부딪힐 때 그 속도에 따라 물질의 성질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원리를 이용해 암 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하거나 방사선 육종에 활용한다.

원자력연구원은 2012년 세계 3번째로 100MeV(메가전자볼트)의 국내 최대 전류인 20mA급 양성자 가속기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경주 양성자가속기 시설 내 가속관 [촬영 박주영]

최근에는 반도체 오류를 잡는데 원자력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연간 양성자 빔라인 서비스 일수(120일)의 40%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자동차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인공위성, 항공기, 드론 등 모든 첨단기기에 탑재되는 핵심 부품이다.

반도체가 10nm(나노미터·1nm = 10억분의 1m)를 넘어 3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반도체의 초고집적화로 인한 '소프트 에러'(soft error)를 잡기 위해 양성자가속기 시설을 찾고 있다.

소프트 에러란 지구에 유입된 대기·우주방사선에 의해 반도체에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하거나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현상을 말한다.

2009년 미국 내 토요타 자동차 급발진 사고 당시 소프트 에러가 추정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되면서 자동차업계가 우주방사선에 의한 반도체 오류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주방사선은 태양과 외부 은하 등에서 발생해 지구로 향하는, 에너지가 높은 방사선을 뜻한다. 이 고에너지의 우주방사선이 대기 중 원자핵과 반응해 발생하는 2차 방사선이 대기방사선이다.

지상 12㎞ 상공에서는 시간당 1㎠ 면적에 6천개의 중성자가 쏟아져 비행기 고도에서의 반도체·센서에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우주로 쏘아 올리는 인공위성에 들어가는 모든 반도체 부품은 필수적으로 방사선 영향 평가를 받아야 한다.

양성자 빔 이용 현황 설명하는 하준목 선임연구원 [촬영 박주영]

이재상 단장은 "기업이 수출용 반도체를 이송할 때 북극 항로가 가장 가까움에도 쓰지 않는 이유"라면서 "위도 영향으로 불량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방사선의 영향이 가장 적은 항로를 선택해 취항한다"고 설명했다.

지상에서도 시간당 1㎠ 면적에 도달하는 13개의 대기방사선(10MeV 이상)이 반도체에 영향을 준다.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해 1초 동안 10년간의 방사선량을 조사함으로써 최대 10만년의 반도체 내 소프트 에러 발생률(SER)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원자력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가 2021년 9월 국제표준 시험시설로 등재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방사선 영향평가 수요가 급증하면서 2015년 1대 1이었던 가속기 시설 사용 경쟁률이 현재 3.24대 1에 이른다.

이 단장은 "2003년 벨기에의 전자투표 결과가 우주방사선의 영향으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면서 "자동차의 전장화 비중이 높아질수록 급발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자동차업계가 반도체 오류를 막기 위해 반도체 회사에 영향 평가를 권고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원자력연구원은 늘어나는 기업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는 24시간 빔 서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30년 말까지 6세대 이동통신, 자율주행차 등에 쓰이는 반도체 영향 평가가 가능한 200MeV급으로 성능을 확장할 방침이다.

연간 100억원의 검사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최종 반도체 실증 시험을 국내에서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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