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무서웠나"…돌연 `오물풍선 중단` 北, 왜 확성기 겁내나
북, 군사회담서 줄곧 철거 요구
"재개 땐 접경지역 불안정성 증폭"
"협상 카드로 삼아야" 주장도
'오물 풍선'을 남한 지역으로 날려보내던 북한이 2일 돌연 이런 행동을 중단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강일 국방성 부상은 담화를 통해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강일은 오물 풍선 살포 중단 이유로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어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이유보다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는 한국 정부의 대응 방침이 북한의 도발을 중단시킨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란 게 대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의 도발에 대한 대응책으로 강력하게 검토 중인 대북 확성기 방송은 위력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에선 각종 정보 유입과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어, 주민들이 외부 세상의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단파 라디오와 이동식저장장치(USB) 등이 유용했지만, 심한 단속으로 요즘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확성기 방송은 전력망이 갖춰진 접경지역이라면 장소를 막론하고 시행할 수 있는 심리전 수단이다. 지상 고정 확성기 시설뿐 아니라 차량에 탑재된 이동식 확성기도 있어 접경지 이북의 목표지역을 골라 심리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남북군사회담 경력이 풍부한 한 예비역 장성은 3일 "북한군에게 있어 확성기는 목구멍에 박힌 가시와 같다"고 말했다. 남측 확성기 방송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귀를 막고 안 들을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군은 군사회담 때마다 확성기 철거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가 전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이 당일 밤 '오물풍선 살포 잠정 중단'을 발표하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러한 대북 확성기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고정식 확성기 방송은 출력을 최대로 높이면 야간에 약 24km, 주간에는 10여k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동식 확성기는 고정식보다 10km 이상 더 먼 거리까지 음향을 보낼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이는 개성지역을 비롯해 최전방에 배치된 북한군 부대 상당수가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성능이다.
밤에는 확성기 출력이 개성지역을 넘기도 한다. 이 때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와 뉴스, 날씨와 같은 정보는 북한군 MZ세대 병사들의 심리를 동요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이 예비역 장성은 전했다.
입대자 중 그나마 사상 무장이 됐다는 판단 아래 최전방에 배치된 병사들이 흔들린다면 북한군 입장에선 중대한 문제다. 북한군이 군사회담 때마다 확성기 철거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예비역 장성은 "남북군사회담 때 북한군 대표가 '전선 사령관과 전사들은 당장 때려 부수자고 한다. 저들이 들고 일어나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그들을 억누르고 있지만, 마냥 그러지 못한다'는 식으로 철거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에 심리적 타격을 준 사례도 있다. 지난 2004년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 당시 남측이 확성기 방송으로 이 소식을 북쪽으로 전했다. 이후 최전방에 근무한 북한군 병사들이 집에 안부 편지를 쓰면서 이 사고 소식을 편지에 담았고, 나중에 부대 검열에서 걸려 문제가 됐다고 한다.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북한군은 최전방 부대에 준전시 상황 근무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성사된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긴장완화 조치가 합의되자, 우리 군은 확성기 방송을 통해 합의사항을 전달하며 "이제, 준전시 상태도 해제된다"라고 알려줬다.
대북 확성기 방송 중 날씨 예보의 효력도 크다. 예컨대 "인민군 여러분, 내일 빨래하지 마세요", "오늘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래 걷으세요"라고 하면 실제로 북한군이 이런 예보에 맞춰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리전 수단으로 유효한 확성기 방송에 대해선 재개 여부를 놓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확성기 방송 재개로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접경지 주민의 불안감이 조성되고, 한반도 불안정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예비역 장성은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쪽으로 인구 유입이 많은 상황"이라며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소음 및 개발제한 피해 등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심리전 차원에서 매우 유용한 확성기 방송은 협상 카드로 삼아야 한다"며 "칼이 칼집에 들어 있을 때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듯이 유용한 협상 카드를 마구잡이 식으로 내던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 1963년 5월 1일, 서해 쪽 MDL 일대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1962년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 데 대한 대응 조치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천안함 피격 도발(2010년)과 지뢰 도발(2015년),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등의 대응 조치로 일시적으로 재개되기도 했다.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지역 10여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40여대가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인 지난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확성기는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다. 이동식 장비인 차량도 인근 부대에 주차돼 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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