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FTA에 진 뺄 때 아니다[이미숙의 시론]

2024. 6. 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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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한일중 정상 FTA 가속화 합의
中의 美 무역장벽 우회 노림수
한중 FTA타결 후 TPP 외면 朴
文도 日 주도 메가 FTA 거부감
尹은 전임 정부 오판 반복 말고
中과 FTA 대신 CPTPP 힘써야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공론화하는 기류다.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회담 때 한중 FTA 2단계 협상에 합의했고, 한일중 정상회의 후엔 3국 FTA 협상 가속화 방침이 발표됐다. FTA에 적극적인 쪽은 중국이다. 리 총리는 역내 산업망·공급망 협력 강화와 함께 3국 FTA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협력 방안 중의 하나’로 언급한 윤 대통령이나 ‘진솔한 의견 교환’이라고 표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보다 톤이 강하다.

미국 대선을 5개월여 앞둔 상태에서 중국이 한일과 FTA를 하자고 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되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하든 워싱턴의 대중 무역장벽은 높아질 것인 만큼 한일과의 자유무역 확대로 이를 우회해 돌파하겠다는 뜻이다. 체제가 달라도 물자와 서비스 자유화로 무역장벽을 없애는 FTA는 기본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유산이다. 한중 FTA가 타결된 2014년이나 한일중 FTA 협상이 진행됐던 2012∼2019년은 그 논리가 통했던 시대다.

지금은 경제안보 우선 시대다. 미중 공급망 분리도 뚜렷해졌다. 더구나 한일중의 제조업 수준이 비슷해져 FTA를 해도 실익이 없다. 한일중 FTA 협상의 수석대표였던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이 CNBC 인터뷰에서 “장기 프로젝트일 뿐”이라고 논평한 이유다.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다. 3국 정상회의 사흘 후 중국 상무부는 항공우주·조선 분야 소재·부품·장비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3국 FTA에 대한 중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한중 FTA는 개방 수준이 낮은 협정이다. 중국이 미국 동맹국인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맺은 FTA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쌀 등 민감 품목을 놓고 막판 신경전이 치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에는 2014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벌인 쌀 담판 대목이 있다. 리 총리가 농산물 개방을 압박하자 박 전 대통령은 “그러면 타결이 힘들다”고 강수를 뒀다. 협상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한국 요구를 수용하라”고 지침을 내린 뒤 타결됐다.

한국이 중국과 FTA 협상에 주력할 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집중했다. 박 정부는 한중 FTA 발효 후 “FTA는 이제 충분하다”고 자만하며 TPP의 지정학적 의미를 간과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TPP 탈퇴 후 일본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바꿔 추진할 때 반일(反日) 문재인 정부는 외면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임에도 G1, G2와 각각 FTA를 했다는 자족감에 젖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메가 FTA에 눈을 감았다.

박 전 대통령은 한중 FTA를 국정 성과로 내세우지만, 이어진 사드 보복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중국은 협정이나 규범보다 공산당의 ‘보이지 않는 손’을 앞세우는 나라다.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중국은 FTA 프레임으로 접근할 나라가 아니다. 특히, 미국이 첨단 테크놀로지 대중 수출규제 장벽을 견고하게 쌓는 시점에 중국과 FTA에 주력한다는 건 국정의 우선순위를 일탈시키는 결정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6월부터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윤 정부는 CPTPP부터 가입해야 한다.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은 신 통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가입했다. 중국도 CPTPP 가입 신청을 한 상태다. 윤 정부가 중국과의 FTA에 골몰해 CPTPP를 외면한다면 박 정부의 오판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나마 박 전 대통령은 미중 협력 시대에 ‘미중 양측에서 러브 콜을 받는다’며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미중 패권경쟁 시대다.

중국의 과잉생산 밀어내기 공세로 세계가 ‘차이나 쇼크 2.0’에 빠져 있다. 대중 최전선인 우리나라도 이커머스 등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싸구려 중국산 때문에 제조업이 고사 위기다. 중국과 FTA 2단계 협상을 하기 전에 한한령(限韓令) 완전 해제부터 요구하고, 자유 진영 국가들과 함께 중국의 공급망 교란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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