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실패,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 답일까
2024년 5월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국회의원 당선자가 제22대 국회의 과제와 관련해 “개헌 논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단축도 포함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개헌 논의 때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 당선자는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상현 의원 등으로부터 강한 비판이 나오자 하루 만인 5월2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의 전날 발언을 뒤집었다. “탄핵 야욕을 개헌으로 교묘히 포장하는 일부 야당의 주장은 단호히 거부한다. 5년의 임기는 원칙이고 기본이며 국민 공동체의 약속이다.”
개헌안 모두 대통령 4년 연임제 제안
나 당선자의 애초 발언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023년 12월, 2024년 5월 두 차례 밝힌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개헌을 받아들인 것이다. 윤 대통령의 자발적 조기 퇴진이나 국회의 탄핵을 전제로 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뜨거운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에게 수모를 당한 여권 중진 정치인의 솔직한 속내를 슬쩍 내비친 발언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에게 임기 단축 개헌을 요구한 보수 인사는 또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4월15일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윤) 대통령 제안으로 금년 내에 개헌하고 헌법 부칙에 2026년 5월까지 현행 대통령의 임기를 명시(1년 단축)”하자고 제안했다. 또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균형적인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하여 국정을 이끌어간다면 단축된 1년의 임기를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앞이나 뒤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전연 듣지 않을 제안이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함께 개헌 논의의 또 다른 열쇳말은 ‘대통령 4년 중임제’다.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2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최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조국 대표,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 등이 모두 주장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한 뒤 많은 정치인이 주장해왔고, 여론조사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실패에 적절한 처방일까? 또는 1987년 이후 시행된 5년 단임제의 바람직한 대안일까? 개헌 논의가 본격화한 2007년 이후 대통령과 국회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개헌안은 5가지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시안, 2009년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 개헌안, 2014년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위원장 김철수) 개헌안, 2018년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위원장 김원기 김형오 김선욱) 개헌안,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헌안이다.
이 가운데 분권형 대통령제(이원 정부제)를 선택한 2014년 국회 개헌안을 제외한 4가지 개헌안이 모두 대통령 4년 중임제(또는 연임제)를 단수나 복수 방안 중 하나로 제안했다. 중임제는 대통령직을 2번 맡을 수 있다는 뜻이며, 연임제는 대통령직을 2번 맡을 수 있으나, 연속으로만 허용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책임을 촉구하는 제도적 방법
이들 개헌안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제안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책임성이다. 시민이 스스로 뽑은 대통령에게 4년 뒤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임제 대통령은 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둘째는 임기의 탄력성이다. 첫 임기에서 잘한 대통령은 8년까지 일할 수 있고, 첫 임기에서 잘못한 대통령은 4년으로 끝난다. 셋째는 민주성이다. 대통령이 재선하려면 시민의 의견과 지지를 중시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보면, 4년 중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대통령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4년 중임제만으로 대통령을 충분히 통제할 수 없다.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책임을 더 자주 묻기 위해서는 선거 주기를 활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방안이 2018년 문 전 대통령의 개헌안이다.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서 대통령선거(대선)와 국회의원선거(총선)를 2년마다 교차시키도록 했다. 예를 들어 2024년에 총선, 2026년에 대선, 2028년에 다시 총선을 치르는 것이다. 이렇게 잦고 정기적인 선거 주기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 다수당에도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조국 대표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제안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은 바로 이런 교차 선거 주기를 만들려는 것이다.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일치시키는 방안도 있었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시한과 2009년 국회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서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자고 제안했다. 되도록 대통령 소속 정당과 국회 다수당을 일치시켜 행정부와 국회의 협력을 원활히 하자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잦은 분점정부(여소야대)의 출현으로 대통령-국회 사이에 만성적인 교착이 일어난 데 따른 대안이었다. 이것은 의회 다수당이 행정부를 구성하는 의회중심제(의원내각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에 대해선 윤 대통령 같은 권위주의적 대통령이 당선되는 경우 집권당의 독주를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임제나 교차 선거 외에 다른 통제 방안으로는 3권분립의 강화가 꼽힌다. 여전히 한국의 대통령제는 반민주주의 헌법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유신헌법(제4공화국)에 뿌리를 둔 내용이 많다.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유신의 잔재는 헌법 제66조 1항의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 헌법에도 없었던 내용이다. 3공화국 헌법 제63조 2항은 ‘대통령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만 돼 있었다.
이에 따라 2018년 국회 개헌안과 2018년 문 전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일하도록 했다. 대통령이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위에 군림하지 말고 입법부, 사법부와 평등한 관계에서 일하라는 뜻이다.
대통령 권한 정상화하는 실질적 권력 분립 방안
입법부의 본질적 권한인 입법권과 예산권을 국회에 돌려주는 것도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을 정상화하는 핵심이다. 2009년과 2018년 국회 개헌안에선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폐지하고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함으로써 국회의 입법권과 예산 통제권을 강화했다. 2018년 문 전 대통령의 개헌안도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하고,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제한했다. 이와 관련해 2024년 3월 조국 대표는 총선 공약에서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를 폐지하고,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재부를 과거처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할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행정부에 대한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맡는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 기관인 것도 대통령의 비정상적 권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감사를 하거나 하지 않는 행태를 보여왔다. 2009년 국회 개헌안은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고 직무감찰만 행정부에 남겨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2018년 국회와 문 전 대통령의 개헌안은 감사원을 행정부 소속이 아닌 독립기관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가장 강하게 미치는 영역은 행정부 다음으로 사법부다. 사법부의 지휘부 다수를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법관은 전원을 대법원장이 제청, 국회가 동의, 대통령이 임명한다. 또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하거나 선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 전원, 헌법재판관 다수를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한다.
이와 관련해 2009년 국회 개헌안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전원을 국회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은 임명만 하도록 했다. 2018년 국회 개헌안은 대법관을 사법평의회가 선출, 국회가 동의,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헌법재판관은 국회가 선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사법권과 관련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중 하나로 꼽히는 특별사면권도 폐지하거나 제한해야 한다. 특별사면권은 대통령의 대표적 특권으로 자신과 가까운 범죄자들을 사면하는 편법으로 활용돼왔다. 물론 부당하거나 과도한 수사나 재판에 따라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2009년 국회 개헌안은 특별사면도 일반사면처럼 국회의 동의를 얻어 시행하도록 했다. 2018년 국회 개헌안과 2018년 문 전 대통령 개헌안은 특별사면은 사면위원회의 동의나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그런데 과연 헌법을 개정해 이렇게 통제받는 대통령제를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까? 윤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남용해 자신과 가족의 범죄 혐의를 덮는 일을 개헌으로 막을 수 있을까? 검경의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남용해 정치적 경쟁자들을 공격하는 일을 개헌으로 막을 수 있을까?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법과 제도로는 모든 빈틈을 틀어막을 수 없다. 최선의 법과 제도라도 그 입법자의 취지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까지 따르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끝없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려는 권력자를 통제하는 마지막 수단은 시민의 정치적 행동이다. 선거나 운동, 시위로 그를 멈추게 하거나 교체하는 일이다. 그것은 건강한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일부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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