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고뇌의 아이콘…카프카 100주기 맞아 신간 '봇물'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오늘(6월 3일)은 체코 태생으로 독일어로 작품을 쓴 유대인 작가 카프카가 폐결핵으로 40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독일의 문예용어사전에는 그의 이름에서 파생된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형용사도 등재돼 있다. 거처할 곳 없음, 실존적 상실, 관료주의와 고문, 비인간화, 부조리성이 징후로 보이는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등 수많은 후대 작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재해석되고 있는 카프카는 '여전히 살아 있는 작가'다.
카프카의 고향인 체코 프라하를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카프카의 문학을 되돌아보는 행사들이 열리는 가운데, 한국 출판계도 카프카 100주기를 기념하는 신간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먼저 카프카 문학이 지닌 의미를 오늘날 한국 문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단행본 '카프카, 카프카'(나남출판)가 눈에 띈다.
카프카의 문학에서 영감을 얻은 김혜순, 이기호, 김태환, 신형철 등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카프카적 상상력과 한국의 현실을 결합해 사유한 글들을 수록했다.
이기호 작가와 김행숙 시인은 카프카에 대한 오마주의 뜻으로 카프카적 상상력을 듬뿍 담아 각각 엽편 소설 '카프카의 유령'과 '심사'를 썼다. 지난 3월 한국 문인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의 시 '출근'과 '이름', 최승호 시인의 시 '질주'와 '넙치'도 수록됐다.
카프카풍의 환상적 상상력의 세계가 펼쳐진 김혜순의 시 '이름'(시집 '죽음의 자서전' 수록)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죽은 애인이 같이 차 마시자고 한다. 같이 밥 먹자고 한다. 같이 얼굴 씻자고 한다. (중략) 어떻게 하면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애인이 두 눈을 가린 손을 떼더니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냐고 묻는다. "
카프카의 아포리즘들에 대한 해설, 카프카 문학의 심연을 파헤친 비평문, 사진 자료 등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담았다.
카프카의 잠언과 일기를 모은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민음사)도 카프카 100주기에 맞춰 출간됐다.
카프카가 1909년부터 1922년까지 쓴 일기의 일부와 1920년에 친구 막스 브로트가 발간한 잠언집 '죄, 고뇌, 희망과 참된 길에 대한 성찰'에 수록한 잠언의 일부 등이 포함됐다. 일기에는 자전적 성찰, 글쓰기에 대한 카프카 자신의 견해뿐만 아니라 소설 초안과 단편들도 포함됐다. 특히 그의 일기를 통해 카프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다.
카프카가 남긴 일기의 키워드는 '불안'이다. 병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고향을 상실한 유대인으로서의 불안, 형이상학적인 삶의 불안 등이다.
"사방에서 견뎌 내야 하는 불안. 나를 향해 곧장 들이미는 듯한 의사의 진찰. 나는 내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나는 그의 공허한 말을 내 안에 간직하고, 경멸하지만 반박하지는 않는다."('일기'에서)
'우연한 불행'(위즈덤하우스)은 카프카의 단편과 초단편 55편 모음집이다.
카프카가 처음 출간한 소설집 '관찰'의 수록작을 비롯해 작가가 사후에 모두 불태워주기를 바랐던 유고 더미에서 발견된 단편과 초단편, 책을 만들고 번역한 일들의 글을 담아 카프카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이외도 지난 3월에는 카프카의 미완성 유작 장편 '실종자', 실종자의 결말을 예견케 하는 미완성 단편 세 편, 카프카가 연인, 친구, 가족 등에게 보낸 편지들을 담은 '디 에센셜 프란츠 카프카'(민음사)이 출간됐다.
민음사는 그에 앞서 2월엔 카프카의 시 116편과 드로잉 60개를 수록한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도 세계시인선 58번으로 내놨다.
"목표는 있으나, / 길은 없다. /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 망설임이다."라고 카프카는 표제시에서 썼다.
지난달 문학동네가 내놓은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은 카프카의 시각예술가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새롭게 공개된 그림들뿐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 오스트리아 빈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카프카의 소묘화 전작을 제작·시기와 유형에 따라 정리해 최대한 원화 크기에 맞춰 컬러로 실었다. 카프카의 그림들은 몇 개의 간단한 선만으로 인체를 표현한 것이 특징인데, 그의 실존적 고뇌와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카프카 연구의 권위자인 안드레아스 킬허가 카프카의 그림과 글이 맺는 미학적 연관성에 관해 쓴 글과, 카프카의 그림에서 인간의 몸이 예술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고찰한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글도 함께 실어 이해를 돕는다.
카프카의 작품들이 계속 읽히며 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연한 불행'의 역자 박종대는 "카프카는 지상에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면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에 처절히 맞서 싸우고, 문학 속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며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카프카의 작품들은 20세기 현대 문학이 인류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썼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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