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부터 게임까지…UAE가 한국에 꽂힌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4. 6. 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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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중동의 금융·물류·교통 ‘허브’, 세계적인 산유국, 파격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나라, 한국이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한국형 원전을 처음 수입한 나라…

바로 아랍에미리트(UAE)다.

지난달 28~29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며 UAE는 큰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UAE 측의 300억 달러(약 40조 원) 투자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함마드 대통령 방한 중 한국과 UAE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했다. 한국이 아랍권 국가와 처음 맺은 CEPA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방한 공식 환영식에서 양국 깃발을 흔들고 있는 어린이들과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현준 회장, 구본상 LIG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도 무함마드 대통령을 만나며 UAE에 대한 큰 관심을 나타냈다.

하루 평균 약 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UAE는 글로벌 에너지 업계의 ‘큰 손’이다. 오일달러로 조성된 UAE의 국부펀드들도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언제든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중동 시장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온 한국 기업들이 UAE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그렇다면 UAE는 어떤 이유에서 한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 잠재적 안보 위협에 노출돼 있는 UAE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또 아부다비(UAE의 수도)와 두바이(UAE의 경제중심지)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모습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UAE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장 큰 문제는 없더라도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은 것.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UAE는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중동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영토 분쟁을 경험한 이란과 주변 나라들의 친이란 무장단체들로 인해 UAE를 둘러싼 안보 여건은 녹록치 않다. 화려한 마천루와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UAE 수도 아부다비의 도심. 동아일보 DB

먼저, UAE 동쪽에는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영토 분쟁을 경험했고, 왕정을 무너뜨리고 신정공화정을 수립한 이란이 자리 잡고 있다. 인구가 9000만여 명에 이르고, 석유, 천연가스, 대규모 농경지, 전쟁 경험 등을 갖춘 이란은 UAE의 우방이며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이다. 역시 UAE의 우방인 미국과도 이란은 40년 넘게 갈등 중이다.

남쪽으로는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정부군과 내전 중인 예멘이 있다. 또 수단, 리비아, 레바논 등 정세가 불안정한 주변 나라에서는 왕정에 부정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정치세력과 무장단체들이 힘을 키우고 목소리를 높인다.

왕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석유 판매와 중동의 허브 역할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키워나가길 희망하는 UAE로서는 주변 나라와의 갈등과 정세 불안은 큰 부담이다. 군사 역량을 키우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아크부대’부터 ‘천궁-2’까지…확대되는 군사 협력

이런 UAE에게 한국은 ‘장기적인 군사 협력’을 추구하기 좋은 나라다.

북한과의 크고 작은 충돌을 겪으며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 온 노하우, 미국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 경험, 각종 첨단 무기 생산 능력 등이 UAE에게는 한국의 특별한 매력으로 여겨진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고, 평화유지군 활동 경험이 많다는 점도 한국의 장점이다.

한국 군대(아크부대)가 2011년부터 UAE에 주둔하며 다양한 군사 협력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UAE에 주둔 중인 아크부대가 현지에서 테러작전 훈련을 진행 중인 모습. 군사 역량 키우기에 관심이 많은 UAE는 한국을 좋은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최근 UAE에서는 한국산 무기 도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한국의 방공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UAE는 이란과 친이란 성향 무장단체들의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격을 가장 큰 안보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UAE가 2020년 8월 이스라엘과 외교 정상화에 합의했을 때도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방공시스템) 기술 도입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란 관영 매체 IRNA가 4월14일(현지 시간) 보도한 이란의 미사일 발사 모습.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로 300기가 넘는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이란과 영토 분쟁을 경험한 UAE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여긴다. UAE가 2022년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천궁-2를 도입했고, 한국의 방공시스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IRNA 홈페이지 캡처

이미 UAE는 2022년 1월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천궁-2를 35억 달러(약 4조6000억 원) 규모로 도입했다. 이번 무함마드 대통령의 방한 때도 국방과 방산 분야 관계자들이 동행했고, KAMD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산 무기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제승 주UAE 대사도 육군 중장 출신이다. UAE와의 군사 협력을 한국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콘텐츠 산업 육성에서도 한국과의 협력에 관심

UAE도 최근 국가 차원에서 ‘탈석유’를 외치는 사우디처럼 비석유 분야 육성에 관심이 많다.

특히 UAE는 중동의 허브란 명성답게 콘텐츠 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무함마드 대통령이 방한 중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K콘텐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만났다는 게 UAE의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K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 최근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도 ‘후발 주자’인 UAE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로 꼽힌다.

UAE는 특히 게임 산업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2021년에는 ‘아부다비 게이밍 이니셔티브’란 전략도 발표했다. 국가 차원의 게임 산업 육성 전략으로 중동의 게임산업 중심지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 UAE는 아부다비 인근 알 라하 해변 지역에 약 1조 원을 투자해 ‘e스포츠섬’을 개발하고, 콘텐츠 제작 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이슬람 교인)이 다수인 중동에서 게임은 가장 인기 있는 여가활동 중 하나다. 그만큼 중동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으로 여겨진다.

UAE가 아부다비 인근에 개발하려고 하는 ‘e스포츠섬’의 조감도. UAE는 중동의 게임산업 중심지가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와이어드미들이스트 홈페이지 캡처

UAE는 유명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자국에서 제작할 경우에도 다양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스타트렉’과 ‘미션 임파서블’ 등이 UAE에서 제작된 이유다. 이는 사우디도 공을 들이고 있는 관광 산업 육성과 연관 있다. 자국에서 유명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이 제작될 경우 그 장소는 관광지가 될 수 있고, 자국 내 콘텐츠 기업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스마트팜, 인공지능(AI), 우주산업, 정보기술(IT) 같은 분야에서도 UAE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풍부한 오일달러와 중동의 허브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있고, 자국 기업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도 스마트팜과 클라우드 등의 분야에서 UAE에 진출해 성과를 낸 스타트업들이 있다.

● 더 많은 중동 산유국과 관계 강화해야

중동 산유국 중에는 UAE와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나라들이 많다.

‘네옴 프로젝트’로 전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사우디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중재를 담당하며 중동의 외교 중심지로도 떠오르고 있는 카타르가 좋은 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한국경제에 중동 산유국은 다시 한 번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또 중동 산유국들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는 또하나의 이유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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