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 운주사 탄생 미스터리…“부처의 천상 집회 재현한 것”
세계문화유산 추진하며 탄생 배경에 관심 집중
와불은 아직도 누워 있었다. 29일 오후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 계곡 서쪽 산 정상에서 ‘와형석조여래불’을 만났다. 안내판엔 “도선국사가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적혀 있었다. 와불 밑 7층석탑은 경사진 암반 위에 기반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어 대조를 이뤘다. 절 주변 산과 들에 석불과 석탑이 수십기씩 흩어져 있는 사찰은 국내에서 운주사가 유일하다.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었다는 운주사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돌부처는 100여구, 석탑은 21기다. 대표적 유물은 국가유산 보물 3점(9층석탑, 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과 국가유산 사적(운주사 공간)이 있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는 와불을 포함해 12건이 있다. 운주사 건립 배경과 관련해선 도선국사 비보사찰설과 칠성신앙설 등이 경합했다. 운주사 들머리엔 “전남대박물관이 1984년부터 네차례나 발굴·학술조사를 했지만, 운주사의 창건 시대와 창건 세력, 조성 배경 등을 확증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이 운주사의 창건 배경과 관련해 석가모니 부처의 천상법회를 지상에 재현한 것이란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은다. 운주사 일대에 무리로 들어선 석탑과 석불들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제작한 ‘무위의 예술’로 보던 것과는 다른 해석이다. 화순군이 운주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창건 배경과 관련해 민간 연구자 등 다양한 시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정호 전 진도문화원장(향토사학자)은 지난 22일 한겨레와 만나 “운주사는 석가모니 부처가 하늘로 모든 부처를 모이게 한 후 천상 법회를 여는 법화경의 구절을 지상에 재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법화경은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불교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모두 28개의 품(장)으로 구성돼 있다.
김 전 원장이 ‘천상법회 재현설’의 근거로 내세운 것 중에 하나가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797호·보배탑)이다. 김 전 원장은 “그간 보배탑에 다보불(과거의 부처)이 석가모니와 등을 대고 석실에 앉아 있는 이유를 학계에선 해석하지 못했다”며 “그런데 법화경을 보면서 궁금증이 풀렸다”고 했다. 법화경엔 ‘그때 다보불이 앉은 자리의 반을 나누어 석가모니불께 앉으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 전 원장은 “운주사는 여섯 부처님이 시종들을 데리고 석가모니 천상설법을 들으려고 앉아 있는 현장을 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조불감의 기단부가 좁게 만들어진 것을 두고선 “기단이 길죽한 키다리 모양으로 다른 일반 석탑의 펑퍼짐한 형태와 뚜렷이 구분된다”며 “천상에 떠 있는 모양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운주사 연화탑(원형다층석탑)에 대해선 “연잎은 바다를 상징하는데, 법화경에선 연화탑이 바다에서 떠오른 탑”이라고 덧붙였다.
운주사 미스터리의 실타래를 법화경으로 처음 푼 이는 민간 연구자 박춘기 변호사다. 그는 2013년 ‘내가 보는 운주사―와불이 사라진다’라는 책에서 운주사의 공간 배치와 법화경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박 변호사를 인터뷰했던 동신여고 교사 박용수씨는 “법화경엔 또 운주(雲住)가 부처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 운주사 옆 세 봉우리인 천태산, 개천산(천태종을 연다는 뜻), 작약산(개천 소식을 듣고 환호작약한다는 뜻) 등의 지명도 천태종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천득염 전남대 명예교수(건축학)는 “그동안 사학계나 미술사학계 등에서 운주사의 공간적 특징을 법화경과 연결짓지 못했지만 경청할 만한 지적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앞서 민간 연구자 등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법인 한국문화유산보존연구원은 31일 오전 9시30분 화순문화원 2층 강당에서 ‘운주사 석불석탑군의 세계유산적 가치 규명’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2017년 1월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최종 등재된 뒤, 각 부문 연구자들이 참석해 처음 여는 토론회다.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은 “오는 9월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로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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