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업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죽으라는 것”

이석 기자 2024. 6. 3. 10: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  “22대 국회가 해결해 달라”
“사고 막으라는 중처법,  사업주 구속에 직장 폐쇄만  늘어날 것”
“올해도 건설·부동산 경기 최악…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감 커”

(시사저널=이석 기자)

대한전문건설협회는 한국 건설공사 실적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의 현장 근로자 200만 명을 직접 채용하고, 자재나 장비들도 운용한다. 현재 협회에 가입한 업체만 5만여 곳. 주로 대기업 계열 종합건설업체가 회원사로 가입한 대한건설협회와 차별화되고 있다.

윤학수 회장은 2022년 12월부터 대한전문건설협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그 역시 중견 건설업체를 창업해 운영하는 오너다. 건설 현장의 생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지난 1년 반 동안 업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시사저널 임준선

취임 이후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무엇인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이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수주 격차 해소다. 종합건설업체는 현장에서 계획·조정·관리를 맡는다. 직접 시공을 하지 않고, 분야별 또는 업종별로 하도급만 준다. 그 하도급을 받아 현장에서 직접 시공하는 곳이 전문건설업체다. 정부는 2020년 이 벽을 없앴다. 전문건설업체도 종합시공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수주 격차가 여전히 심한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국회와 세종시 정부부처를 쉴 새 없이 방문했다. 법률 개정안 발의와 대정부 및 국회 건의뿐 아니라 대규모 집회도 여러 차례 가졌다. 그 결과 소규모 전문공사 원도급 보호구간을 2억원에서 4억3000만원으로 확대하는 건설산업기본법(이하 건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전문건설업체에 부당하게 전가되던 하자담보책임 부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도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하도급 공사의 하자책임 기산을 명확하게 설정(2021년 12월)했고, 발주자 제공 재료로 인한 하자는 면책하고, 하자책임기간 상한선(콘크리트 등 주요 내력 구조물 10년, 그 외 구조물 5년)도 명확히 하는 건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외국인 고용제한 전면 해제를 통해 건설현장의 인력난을 해결했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 건설현장은 이제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일례로 아파트 공사의 경우 하루에 수백, 수천 명의 근로자가 한 현장에 동시에 투입되는데 내국인만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외국인 고용제한 전면 해제를 건의했고, 정부가 수용하면서 건설현장 인력 수급의 선순환 구조가 마련됐다."

종합-전문건설업 시공 격차 해소에 성과 거둬

윤 회장은 그동안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적용 유예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뜻을 같이하는 경제·건설 관련 단체들과도 손을 잡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와 경기도, 광주, 부산 등 지역별 결의대회도 여러 차례 가졌다. 하지만 중처법 유예법안이 지난 2월 국회 본회의 안건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21대 국회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대상 중처법 적용 유예를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건설현장의 사고 발생 원인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발주자의 공사비 부족과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 근로자의 안전수칙 미준수 등 여러 원인이 있다. 하지만 현행 중처법은 모든 사고의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해 탄생한 중처법이 오히려 범법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중소 전문건설업체의 경우 대표의 구속이 사업장 폐쇄와 소속 근로자들의 실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협회도 이 매듭을 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2022년 1월에는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에게 50인 미만 사업장 대상 중처법 시행의 부작용을 알리기도 했다. 당시 김 총리는 '일단 시행해 보고 부족한 부분은 그때 다시 애기하자'고 하더라. 말이 안 된다.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 강화와 함께 법을 준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중처법의 합리적인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중처법은 중소기업을 죽이는 법이다. 그저 죽으라는 얘기다.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며, 모호한 규정으로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1년 이상 징역은 형법상 고의범죄 행위에나 주어지는 과도한 처벌이다. 하지만 중처법에는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근거나 기준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 형평성도 결여돼 있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의 경우 공사현장만 전국에 수백 곳이다. 이 현장을 대표이사가 매번 나가 지켜볼 수도 없지 않나. 그럼에도 사고가 나면 대표이사만 처벌한다. 중소 건설사의 경우 문제가 더 크다. 사업주의 구속은 곧 기업의 부도를 초래한다. 현장의 안전예방조치를 위반한 사업주는 책임 비율만큼 처벌하되, 사고 작업자도 안전수칙 준수 여부에 따라 책임을 지는 규정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최근 중처법의 위헌성을 지적한 헌법소원심판도 청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협회는 4월초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중처법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처벌의 합리화와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규정의 명확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절박한 상황을 헌재가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회는 향후 헌법소원심판 진행 상황과 22대 국회 동향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중처법 적용 유예를 위해 강력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2023년 9월12일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앞에서 열린 전문건설 생존권 보장 촉구대회에서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전문건설협회 제공

"시장에선 제2의 태영건설이 누가 될지 촉각"

윤 회장은 올해도 건설이나 부동산 경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 관련 투자와 설계 물량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으로 원도급 종합건설업체의 부도나 폐업이 늘어나고 있다. 2023년 기준 시공능력평가(도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이미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시장에서는 '제2의 태영건설'이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서 "부동산 PF 부실 정리를 계속 미룬다면 규모가 큰 건설사조차 감당하기 곤란할 수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후폭풍이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로 전이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의 대책 마련과 함께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윤 회장은 강조한다.

건설현장에서 느끼는 경기 상황은 어떤가.

"걱정이 많다. 후행적으로 수주에 타격을 받게 되는 전문건설업체의 특성상 향후 2~3년은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위축된 기업활동을 지원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지원책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전문건설업계를 이끄는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떤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설경기 회복지원 방안에 PF 유동성 지원 확대와 조정위원회 운영 등이 포함된 만큼 업계의 유동성 문제는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우선 공사원가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하도급 건설업체가 적정한 간접비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원도급사가 유보금을 설정해 하도급 공사대금 지급이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협회 역시 건설 경기 변동성을 예의주시하면서 유관기관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전문건설공제조합뿐 아니라 다른 건설사업자단체와도 긴밀히 협조해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 예방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올해는 전문건설 혁신 시즌 2의 원년"

5월30일 22대 국회가 출범했다. 협회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국토위, 정무위 등 협회 소관 상임위를 중심으로 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발굴·제시할 계획이라고 윤 회장은 설명한다.

"지난 1년 반은 '전문건설 혁신 시즌 1'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소규모 전문건설의 보호구간을 확대 연장하고 하자 부담을 개선하는 등 업계가 처한 '급한 불'을 끄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22대 국회 출범을 계기로 '전문건설 혁신 시즌 2'를 발동하려 한다. 좀 더 폭넓게, 먼 곳을 바라보면서 회원사뿐 아니라 K건설의 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윤 회장은 '전문공사는 전문업체가, 종합공사는 종합업체가' 시공한다는 기본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반세기 동안 전문건설업계에 부여돼온 '직접 시공'이라는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보다 명확히 살리는 데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제 값 받아 안전하고 품질 좋게 시공하는 발주 환경을 마련하는 정책 행보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서울시를 중심으로 원도급자 직접 시공 확대 이슈가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회원사를 보호하고, 직접 시공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촘촘한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협회는 오늘도 중처법 등 안전 관련 규제의 합리적 개선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발주 단계에서부터 저가 경쟁을 낳는 대한민국 건설산업의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조달청장과의 간담회에서 공공공사 낙찰률을 전향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