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스토리텔링 하는 법] <1> 깨달음의 순간을 찾아라
소설이든 영화든 게임이든, 영웅은 범속한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험'의 소명을 받는다. 영웅이 되는 첫 관문인 깨달음의 '결정적 순간'(Moment Of Truth)이다. 보통 사람들은 '모험'의 소명을 한가로운 공상이나 잠깐의 헛발질로 날려 버리지만, 영웅은 소명으로 가슴이 북받쳐 담대한 비전을 꿈꾸기 시작한다.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결정적 순간'은 항상 엄숙하게 다가오는 걸까? 가난한 소년 조지 이스트먼은 화려한 휴가를 포기하고 발명한 카메라로 '코닥'을 세웠다. 육군 장교 일라이 릴리는 아내를 말라리아로 잃고 나서 치료제 '퀴닌'을 개발하고 '일라이릴리'를 창업했다.
이러한 순간은 대개 몰락한 가문의 부흥이나 파괴된 가족의 복수를 목적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정적 순간'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 '소명의 순간'처럼 비장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역사 속의 '거룩한' 소명과 달리, 50년 안팎의 최근 사례는 그리 엄숙하거나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 헤지펀드 회사에서 데이터를 관리하다가 인터넷 사용량이 연간 2300%나 증가했는데 인터넷 사용자는 고작 16%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를 보고 인터넷 장터 '아마존'(Amazon)을 창업했다.
필리핀에서 의료봉사 하다가 모기에 물려 뎅기열에 걸렸는데 약이 없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는 '길리어드'(Gilead)를 창업했다.
가문의 부흥이나 가족의 복수가 목적이 아니다. 거룩한 인류애의 소산도 아니다. 실제로, 최근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창업을 결심한 '소명의 순간'은 알고 보면 정말 실망스러울 정도로 사소하다 못해 찌질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뭔가 생각한 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아 짜증이 나거나, 알량한 재주를 자랑질할 방법을 찾거나, 이성에게 잘 보이려 애쓰다가 갑자기 '소명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위대한 창업자는 참을성이 부족한 걸까? 박사논문 주제를 찾다가 쓸모없는 검색 결과에 짜증 나서 검색엔진(Google)을 개발하고, 빌린 비디오테이프를 늦게 반납했다가 비싼 연체료 때문에 우편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보내는 방식(Netflix)을 떠올린다. 휴대용 메모리(USB)를 깜박하는 바람에 파일공유 시스템(Dropbox)을 만들고, 택시를 잡지 못해 차량공유서비스(Uber)를 개발하고, 월세를 내지 못해 숙박공유서비스(Air B&B)를 꾸리는 식이다.
자랑질에 방해가 되는 것도 바로 해결해야 하는가 보다. 자신이 만든 영상을 친구에게 뽐내기 위해 동영상 공유사이트(Youtube)를 만들고, 먹통 결제기 때문에 자신의 멋진 유리공예품을 팔지 못해 모바일결제 방식(Square)을 시도했다.
멋진 이성을 찾거나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구애의 순간도 수두룩하다. 명문대 학생끼리의 멋진 만남을 목적으로 기숙사 명단을 뒤지다가 인맥 공유사이트(Facebook)를 개발하고, 여자 친구에게서 사진을 못 찍는다고 핀잔을 듣는 바람에 위치기반 사진 공유 방식(Instagram)을 만들었다. 만나려면 기차로 10시간이나 가야 하는 여자 친구가 보고 싶어 영상회의시스템(Zoom)을 떠올리고, 취미로 사탕 통을 수집하는 여자 친구를 도우려 만든 사이트를 키우다 보니 전자상거래 사이트(eBay)가 됐다.
'소명의 순간'은 어쩌면 깃털처럼 가볍고 하찮아 보인다. 위대한 창업자는 바로 그 순간을 붙잡고 번개처럼 빠르게 일을 진행한다. 깨닫는 순간, 모든 배경이 바뀌면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영웅이 탄생하는 카이로스적인 시간이다.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슬로비디오의 시간이다.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테크 창업의 스토리텔링은 창업자가 영웅으로 첫 관문을 통과하는 '깨달음의 순간'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때의 느낌을 풀어 서정(敍情)을 꾸미고, 그때의 사건을 펼쳐 서사(敍事)를 구성하는 것이다. 창업자의 생생한 스토리가 필요하다. 어차피 창업자는 신화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신화를 만들어가는 사람 아니던가!
◇이정규 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은 IBM, 보안회사, 테크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재단, 감리법인에서 중간관리자, 임원,대표이사, 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지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벤처창업을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프로세스/프로젝트/IT컨설팅을 강의하고 있다. 또 프로보노 홈피에 지적 자산을 널어 놓는다.
◇허두영 라이방 대표는 전자신문, 서울경제, 소프트뱅크미디어, CNET, 동아사이언스 등등에서 기자와 PD로 일하며 테크가 '떼돈'으로 바뀌는 놀라운 프로세스들을 30년 넘게 지켜봤다. 첨단테크와 스타트업 관련 온갖 심사에 '깍두기'로 끼어든 경험을 무기로 뭐든 아는 체 하는 게 단점이다. 테크를 콘텐츠로 꾸며 미디어로 퍼뜨리는 비즈니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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