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담심리학회] 심리상담 서비스 제도화의 선결조건
나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심리학을 공부할 당시 한국에는 상담이나 심리치료라는 용어는 있었지만 심리상담이라는 용어는 없었고 심리상담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후 사회가 발전하면서 심리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특히 세월호 사건 등을 계기로 국민들이 심리상담 서비스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법률상담 할 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의뢰인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아볼 것을 권유한다. 가사사건은 물론이고 민·형사사건 모두 의뢰인에게는 엄청난 심적 부담을 주는데 그 과정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의뢰인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의뢰인들이 심리상담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또 수임한 사건의 종류에 따라 의뢰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보고서 등을 법원·검찰 등 관계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에 의뢰인에게 심리상담 등을 받고 그 보고서를 제출해줄 것을 요청한다. 어떤 의뢰인들은 변호사인 나에게 어떤 심리상담센터가 좋은지에 대해 물어보기도 한다. 심리상담센터가 모두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 상담 혹은 심리 관련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 또는 개인이 수천 개가 넘고 민간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한 조건이 너무도 간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심지어 성범죄자의 양형에서 감형을 받기 위한 편법으로 심리상담 패키지를 제공하는 유령 심리상담센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방법으로 감형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읽은 기사에 따르면 이런 심리상담센터에서 성범죄 사범들에게 심리상담 보고서를 일명 선처세트로 55만원에 판매하고 있고 이 세트는 심리상담 수료증, 상담 결과에 대한 의견서, 소감문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실제로 심리상담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5~10분만 통화를 하면 초고속으로 작성돼 판매되고 있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는 심리상담 서비스에 대한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성범죄자라 할지라도 심리상담센터를 열 수 있고, 이를 막는 어떠한 제도도 없다. 즉 심리상담 분야에는 기본법이 없는 것이다. 누구나 이것이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음에도 왜 아직까지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심리상담 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4가지의 선결조건을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조건은 심리상담 제도화에 대한 수요자인 국민들의 요구가 있느냐는 것이다. 법이 필요할 정도로 국민들이 심리상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가이다. 국민 4명 중 1명은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응답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 조건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첫 번째 조건은 충족된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공급자인 심리상담사들이 제도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가이다. 심리상담사들 역시 제도권에 들어가고자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제도권에 들어가게 되면 국가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업에 있는 심리상담사들에게 설문한 결과 이 역시 98% 이상의 심리상담사들이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사이비 심리상담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심리상담사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제도화를 위해 중요한 세 번째 조건은 입법부인 국회와 행정부인 보건복지부에서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있는가이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총 5개의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고 보건복지부 역시 심리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제도화 연구를 수행했던 점을 고려할 때,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가 심리상담 제도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 시작된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과 같은 민간심리상담센터와 연계된 사업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욱 더 보건복지부는 심리상담 분야의 제도화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선결조건은 이해당사자인 심리상담 단체와 이해관계자인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같은 직역과 이해충돌이 없어야 한다. 특히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이해당사자의 대표적인 단체인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학회, 그리고 한국임상심리학회 간에 자격의 명칭과 응시기준에 대한 의견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필자가 찾아본 국회 상임위 회의록과 보건복지부의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들 단체 간의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수요자인 국민, 공급자인 심리상담 실무자, 그리고 법안을 만드는 국회와 법안을 집행하는 보건복지부가 모두 원하는 제도화이지만 정작 이해당사자인 심리상담 단체들 간의 불협화음으로 대한민국의 심리상담 분야가 제도권에 들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 간의 의견조율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된 후에 보건복지부가 대화를 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조율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의견조율은 외부의 힘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제는 대표적인 국내 심리상담 단체인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학회, 그리고 한국임상심리학회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심리상담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과 심리상담 서비스의 공급자인 심리상담 실무자를 위한 우리 현실을 반영한 심리상담 제도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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