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환경까지 포용하는 ESG 공시기준 곧 의무화한다

박은경 기자 2024. 6. 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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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회개발연구소 지속가능평가 워크숍】

내년 EU 4만여 기업, ESG 공시 의무화
미국서도 2026년부터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별 ESG 목표치, 공시 적용 요구
사회적 경제 ESG 성과 측정 제안도

다양한 이해관계자 목소리 담는
ESG 공시 거버넌스 구축 필요
지난달 23~24일(현지 시각) 이틀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 콘코디아대에서 유엔사회개발연구소가 개최한 ‘지속가능성 평가 이니셔티브’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에스지(ESG) 공시 기준 법제화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 영향권 아래 놓이고 있다.

2년 뒤인 2026년부터 미국 내 모든 상장기업은 기후 리스크 관련 재무적 영향과 기후 관련 정보를 재무제표에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객과 기업 정보를 보관하는 데이터 센터를 가진 아이티(IT, 정보기술) 기업이라면, 전력 수급 문제로 전력 비용이 늘어났을 때 사용 전력량과 함께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재무제표에 반영해 공개하는 식이다.

대서양 건너편 유럽연합(EU)은 한발 더 나아갔다. 내년부터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이에스지 전 영역에 대한 기업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스지 이슈가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을 고려하는 ‘단일 중대성 원칙’(Materiality)에서 나아가, 기업 활동이 재무적 영향을 넘어서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보고하는 ‘이중 중대성 원칙’을 도입했다. 이를테면 미국의 상장된 아이티 기업은 전력 수급 문제에 따른 환경 정보와 영업이익에 끼치는 영향만 공개해도 되지만, 유럽에서는 기업의 증가한 전력 사용량이 지역의 에너지 상황과 탄소 중립 목표에 미치는 영향까지 보고해야 한다. 유럽의 기준이 더 엄격하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이 채택한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 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은 기업의 가치사슬 전체를 포괄하는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도 포함했다. ‘스코프 3’은 온실가스 배출 산정 범위 중 가장 포괄적인 기준으로, 도입 여부에 대한 전 세계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업 제품의 생산에서부터 소비와 폐기되는 과정을 포함해 협력업체와 유통망까지 아울러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와 지난 4월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발표한 국내 이에스지 공시 기준 초안에는 산업계 반발로 스코프 3은 빠졌다. 하지만 내년부터 의무화하는 유럽연합의 이에스지 공시 기준이 역내 약 4만9천 개 기업에 적용되며, 이는 전체 EU 기업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 기업 데이터는 관리, 통제되지 않는다는 경영의 기본을 강조했다. 이에스지 공시 기준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공시 기준은 사업보고서, 지속가능 보고서, 누리집 등 공시 방식과 형태가 각양각색이었다. 따라서 이에스지 정보 수집은 물론, 측정과 평가도 쉽지 않았다. 이에스지 공시가 그린 워싱(환경을 고려하는 경영활동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의 도구로서 악용되거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공시의 문제점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최근 국제사회는 다양한 공시 기준들을 반영한 ’통합공시’를 속속 내놓고 있다.

이런 흐름 가운데 주목할만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3~24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콘코디아대에서 ‘지속가능성 평가 이니셔티브’를 주제로 한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의 워크숍이 열렸다. 이에스지 공시 기준을 비교 분석하고, 지속가능목표 달성을 위한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오운더메트릭스 캠페인, 몬드라곤 그룹, 사전분배 이니셔티브, 칼 폴라니 연구소, 콘코디아 대학, 사회적가치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미국, 독일, 한국, 일본 등 각국에서 온 글로벌 이에스지 전문가와 기업가, 사회연대경제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공동개최기관인 오운더메트릭스(Own the Metrics) 캠페인은 자본과 주주 가치 중심의 이에스지 공시에서 벗어나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25만 개 기업회원을 둔 미국지속가능기업협의회(ASBN)와 유럽 사회적경제조직협의체인 유럽사회연대경제(SEE) 등이 함께하고 있다. 사전분배 이니셔티브는(Predistribution Initiative)는 기업과 투자자에 초점을 맞춘 이에스지 투자 구조와 관행을 바꿔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부와 영향력을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기구다. 몬드라곤 그룹은 스페인 협동조합으로 약 257개 기업과 약 7만 명의 조합원이 일하는 세계 최대 협동조합 그룹으로 사회연대경제조직을 대변해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 참석자들은 이에스지 공시 기준이 기업의 지속가능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마크 맥엘로이 ‘지속가능한 조직을 위한 센터’ 설립자는 “기존 이에스지 공시 기준은 전년 대비 성과의 차이에만 집중해, 지속가능성을 향한 장기적 성과 측정은 어렵다. 지속가능성 성과지표(SDPI)와 같이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달성해야 할 기준(지속가능발전 임계치)을 제시하고 데이터를 맥락적으로 측정, 공시해야 지속가능 달성 정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UNRISD는 영리 기업과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포함한 경제 주체의 지속가능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2021년 지속가능발전 성과지표(SDPI)를 개발했다. SDPI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해 기업이 직접 ESG 데이터를 입력해 성과를 측정•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는 2021년 이에스지 공시 기준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 임계치를 포함해 기업의 지속가능발전 성과를 맥락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성과지표(SDPI)를 개발했다. SDPI의 평가지표 중 이사회 여성 비율의 경우, 지속가능발전 임계치를 약 40% 비중으로 함께 제시해 기업 데이터에 따라 지속가능성 여부를 5단계 혹은 3단계로 평가한다. 이일청 유엔사회개발연구소 선임연구조정관은 “SDPI는 지구 환경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기업이 달성해야 할 기준을 제시하고,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해 기업이 실질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현재 발표된 국제 이에스지 공시 기준이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이에스지 성과를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엄형식 국제협동조합연맹(ICA) 학술국장은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발전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의 이에스지 성과를 측정,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금융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공시 기준은 노동자,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협동조합 가치가 반영되지 않아 이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스지 공시에 대한 부담이 큰 소규모 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외 산업 특히 기업 수와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의 이에스지 공시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이에스지 공시 교육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이에스지 공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공시 주체인 기업은 물론이고, 투자자 외에 공시의 ’독자’인 사회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해 9월, 유엔 사무총장은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달성하기로 약속한 유엔의 17개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율이 1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사람과 환경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 정부, 기업, 민간 시민사회 등 사회 각계각층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에스지 공시 기준은 국제회계기준원(ISSB),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글로벌 표준 기관들이 주도하고 있다. 워크숍 참석자들은 이에스지 공시 기준이 기업의 SDGs 실천을 끌어내려면 노조, 협동조합 등을 대변하는 사회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공시 기준에 담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본 즈윅 독일지속가능발전기업 협회장은 “기업이 지속가능목표 달성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일부 선진국과 대기업의 참여로는 한계가 있다. 각국 정부와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지속가능 실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역적 환경과 협동조합 등 중소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공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일청 선임조정관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에스지 공시 기준이 민간 영리기업을 넘어 사회연대경제조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면서 “글로벌 표준 기관들의 이에스지 공시 논의에 전문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이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몬트리올/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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